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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모방시 / 한용운 - 꽃이 먼저 알아

책에 먼저 들켜

by 한 줄이라도 끄적

엄마의 모방시




꽃이 먼저 알아




한용운




옛 집을 떠나서 다른 시골의 봄을 만났습니다

꿈은 이따금 봄바람을 따라서 아득한 옛터에 이릅니다

지팡이는 푸르고 푸른 풀빛에 묻혀서,

그림자와 서로 다릅니다



길가에서 이름도 모르는 꽃을 보고서,

행여 근심을 잊을까 하고 앉아 보았습니다

꽃송이에는 아침이슬이 아직 마르지 아니한가

하였더니

아아, 나의 눈물이 떨어진 줄이야

꽃이 먼저 알았습니다








책에 먼저 들켜




첫 장의 페이지 들춰 그들의 삶에 스며듭니다

글은 불현듯 옛기억을 떠올려 머나먼 추억에 닿습니다

책표지는 바래고 낡은 헝겊에 싸여서

책내음과 서로 적십니다



서가에서 연도도 모르는 책을 꺼내서

애써 그리움 지울까 하고 필사 하였습니다

페이지마다 애처로움이 마냥 흐르지 아니한가

보았더니

아아, 나의 후회로 얼룩질 줄이야

책에 먼저 들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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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 보면 어느새 감정이입한 채 푹 빠지게 만드는 글이 있다.

글의 배경이나 일어난 사건으로 인해 뜻하지 않은 과거 여행을 할 때면 넋 놓고 멍할 때가 종종 있다.

잊고 있던 내 안의 그리움들이 용솟음친다고나 할까?

회한이 가득한 그리움들을 비로소 마주하게 되면 나도 모르게 얼굴을 감싸 쥐게 된다.

왜 그랬을까...

꼭 그래야만 했었나?

과연 최선의 방법이었을까?


시간을 되돌릴 수 없기에 과거의 선택을 곱씹는다 한들 의미가 있겠냐마는 최소한 앞으로 닥칠 수많은 선택 앞에서 신중에 또 신중을 기하겠지.

독서가 쌓일수록 느는 것은 살아온 발자취에 대한 부끄러움과 앞으로 어찌 살아야 할지 거듭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투성이 들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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