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아껴 사는 방법을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이 있다. 한 알만 먹으면 샤워하고 머리 감지 않아도 되는 약이 나오면 어떨까. 청소하는 로봇처럼 씻겨주는 로봇이 있어도 좋을 텐데 생각을 하며, 자투리 시간을 아껴 쓰고 이동 시간을 쪼개 쓰고. 그러는 과정 중 확실히 시간을 버는 방법을 찾았다. 바로 식사하는 시간을 줄이는 것이었다. 기본적으로 매일 해야 하는 일을 줄이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남는지 모른다.
하루에 세끼 먹던 식사를 두 끼로 줄인다면, 나아가 한 끼로 줄인다면? 하루에 먹는 시간을 한 시간밖에 쓰지 않는다면 얼마나 효율적일까? 식사를 하기 전후에 준비하는 시간과 정리하는 시간, 소화시키는 시간까지 합친다면 어마어마한 시간이 절약되는 것이다. 시간을 아끼기 위해 샌드위치를 먹었다는 샌드위치씨가 이해가 되는 포인트였다. 프랑스 사람들은 식사 시간 동안 오래 얘기하고 음미하며 즐긴다지만, 왠지 나와는 썩 맞지 않는 문화다. 더군다나 나는 적게 먹어서 아픈 적은 없는데 많이 먹으면 늘 위장 장애로 고생을 하곤 하지 않았던가.
나의 위가 불편한 것은 선천적인 부분도 있었지만 어릴 적 먹기 싫어도 꼬박꼬박 먹었던 삼시 세 끼가 원인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눈을 떠서 밥과 국을 먹는 것이 너무나 힘들었다. 그런데 장사를 해서 나보다 더 힘들었던 엄마는 아침마다 졸린 눈을 한쪽만 뜨고라도 따뜻한 국물을 먹여 나를 학교에 보내곤 했다. 엄마는 성장기에 혹시 나에게 영양이 부족할까 봐 그랬지만 돌아서면 배가 고프다는 학창 시절에도 나는 식탐이 별로 없었다. 아침에 빵과 우유로 간단히 때우고 싶었지만, 어른들은 그런 식으로 밥을 “때우면” 큰일 난다고 생각했다. 쌀밥은 보약이었고 한국인은 밥심으로 사는 시대였다. 강제 우유 급식의 횡포로 매일 생 흰 우유를 하나씩 받아먹어야 했다. 우유를 먹으면 키가 쑥쑥 큰다고 했지만 크기는 개뿔. 정해준 양의 급식을 먹다가 남기기라도 하면 체벌을 하는 학교 덕에 오히려 건강을 망친 꼴이었다.
스무 살에 중국으로 유학을 가게 되면서 나의 식습관은 확실히 바뀌었다. 유학생들이 귀찮다고 식사를 굶으면 내장이 곪고 몸 다 버린다는 말을 어디서 주워 들었기 때문에 절대 굶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엔빙(전병)부터 찐만두, 따뜻한 두부장까지 다양한 아침식사다운 간단한 요깃거리가 많았고, 면이나 만토우(앙코 없는 만두)로 쌀밥을 대신해도 죽지 않는다는 걸 배웠다. 당시 한국은 면으로 한 끼를 때우면 밥을 먹었다고 치지 않았기 때문에 이렇듯 간편하게 먹고사는 중국식 식사가 편했다.
중국에서 식습관이 바뀌었던 것인지 아니면 죽을 만큼 다니기 싫었던 한국의 초, 중, 고등학교의 주입식 교육과 시험에서 벗어난 탓인지 중국에서는 손에 꼽을 정도로 탈이 나지 않았고 오동통했던 젖살도 조금씩 빠지기 시작했다. 나는 늘 통통한 아이에서, 어느샌가 마른 아이로 불리기 시작했고 코끼리 같이 저주받은 하체 살도 조금씩 빠지기 시작했다. 몸이 가벼우니 활동하기도 편해졌고 속이 편하니 성격도 더 둥글둥글 해져갔다.
세월이 흘러 나는 더 큰 어른이 되었고 이런저런 식습관을 거쳐 나에게 딱 맞는 식사법을 찾게 되었다. 아침엔 미숫가루를 우유에 타서 한 잔 마신다. 아침마다 원두를 갈아 드립커피를 내려 마셨는데 그 때문인지 속이 쓰린 느낌이 들어 아침부터 커피를 마시는 습관은 버렸다. 위가 아파 며칠 고생했는데 이상하게 커피가 꼴도 보기 싫어진 탓이다. 내 몸이 말하는 것 같았다. 커피 때문에 아픈 거라고. 아침에 사과 한 알이 보약이라는 사람도 있는데 사과를 먹다가도 며칠 앓았다. 사과의 산 성분에 소화가 되지 않는 껍질까지 먹으니 또 탈이 났던 것 같다. 그래서 종합적으로 나는 아침엔 미숫가루를 탄 우유 한 잔으로 끝내고 점심은 찐 고구마, 삶은 계란, 떡, 바나나 중에 골라 먹고 가끔은 맛있는 케이크이나 빵을 먹는다. 커피 한 잔과 함께 식사를 하며 업무를 계속 본다. 그렇기 때문엔 점심시간 쉬는 타이밍이 없다. 업무가 워낙 외근도 많이 해야 하고 최근엔 체육관에 가서 몸으로 뛰어야 하는 작업도 많으므로 하루종일 앉아서 일을 하는 게 아니라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그리고 저녁 한 끼는 푸짐하게 먹는다. 하루종일 간소하게 먹으면 쌀밥과 국과 함께 반찬을 듬뿍 사놓고 먹는 것이 무척 입맛을 당긴다. 종종 특식도 많이 먹는다. 어차피 하루에 한 끼 먹는 처지에 식비가 많이 들지 않으니 고기구이, 보쌈, 한정식, 양갈비 등등 돈 생각을 크게 하지 않고 좋아하는 것도 실컷 먹는다. 한 끼 먹는다고 살이 아예 안 찌는 체질은 아니고 야식을 먹거나 식사량을 조절하지 못해서 살이 2~3kg만 찌면 얼굴과 다리에 살이 붙기 시작하는데, 그러면 그날로부터 일체 단 음식이나 야식을 끊고 티브이 볼 때도 몸을 움직거리며 수선을 피워 다시 그 2~3kg를 원래대로 돌려놓는다. 20대부터 내가 관리해 온 몸 관리법이다.
나는 나만의 루틴을 깨고 사람들과 밥을 함께 먹는 것이 그렇게 달갑지 않다. 점심 약속이 있어 억지로 밥을 먹고 난 후엔 하루 리듬이 깨져버리곤 했는데 그래도 나만 특이한 인간 취급을 받지 않으려고 위장장애를 극복하고 꾸역꾸역 사람들과 함께 억지로 식사를 했다. 그런데 어느 해엔가, ‘간헐적 단식’이라는 것이 몸에 엄청 좋은 것이라는 기사가 유행처럼 번졌다. 그 후로 좀 더 당당하게 사람들과 다른 나의 식습관을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며 함께 식사하는 시간을 줄여 나갔다. 배가 고파 간헐적 단식을 못 한다는 사람들은 나를 부러워했지만 나는 그저 내 몸이 원하는 대로 해 주었을 뿐이다. 그러고 보면 몸에 좋다는 것, 좋지 않다는 것이 이렇게 시대별로 다를 수가 있는지. 연구 결과에 따라 좋은 것 나쁜 것이 이리 달라질 수가 있는지 아이러니할 뿐이다. 어릴 적 보약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쌀밥은 탄수화물 중독이라는 이름으로 언젠가부터 과하게 섭취하면 안 된다고 하고, 칼슘을 듬뿍 보충해 준다는 우유는 ‘소젖’을 먹으면 안 되는 갖가지 이유를 들어 사람들을 헷갈리게 했다. 과연 우리는 누구를 믿고 어디까지 걸러 내서 들어야 하는 걸까. 어쩌면 내 몸이 원하는 대로 내 몸이 달라는 것을 좀 줘도 되지 않을까? 과하게 탐내지만 않는다면 초콜릿도, 과자도, 술도, 담배도 적정량을 지켜서 먹으면 그게 건강해지는 길이 아닐까 한다.
밥을 먹지 않고 살면 사는 것이 얼마나 편한지. 밥을 안 먹으면 안 된다는 강박은 얼마나 피곤하고 번거로운지 모른다. 신체에는 과량 섭취가 늘 문제가 되어 왔지, 요즘 세상에 영양부족이야 말로 정말 찾기 힘든 병이지 않은가.
어쩌면 한 끼 굶는다고 큰 일 나는 건 내 몸이 아니라 마음의 문제 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