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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mi Lee Jun 04. 2020

우리 아빠도 나를 이렇게 키우셨을까

 아빠 생각이 특히 많이 나는 요즘이다.


 중학생 딸을 키우는 대학교 때 선배가 있는데 아빠 딸 관계에 푸념할 곳이 없으면 나를 찾는다. 선배 입장에서 위로를 해 주어야 하는데 아직 내가 아이가 없어 그런지 어른이 아닌 아이 입장에 감정이 이입되어 마치 선배의 딸이 된 마냥 선배에게 딸 입장을 대변한다.

 선배는 딸 앞에서는 표현도 못 하면서 딸이 눈에 안 보일 때에서야 뒤에 와서 끙끙 앓는다. 선배가 큰 맘 먹고 인터넷으로 립밤을 주문해 깜짝 선물로 보낸 적이 있다. 딸이 초등학생 때였으니 화장품 류를 사 준다는 것 자체가 자칭 옛날 사람이라는 선배 입장에서는 큰 결심이었던 것이다. 생전 없던 깜짝선물 까지 했던 걸 보니 딸과 친해지고 싶어서 남모르게 고민을 많이 했던 모양이다. 그리고 다음 날, 또 다음 날, "얘가 내 선물을 받은 것 같은데 왜 고맙다는 문자가 없지?" 이 얘기를 몇 번 한 지 모르겠다.   

 출장을 다녀오며, 딸이 갖고 싶어 하던 스피커를 사주었다고 한다. 캐리어에 선물을 넣어 오며, 혹여나 포장재의 모퉁이가 찌그러지면 선물 받는 기분이 상하지는 않을까 하여 자신의 옷으로 선물을 꽁꽁 싸서 상자가 눌려 찌그러질까봐 조심스레 들고와 전달했더니 선머슴아처럼 포장지를 북북 찢어서 "와 좋네요" 하고선 한 번 듣고 내팽개쳐 버렸단다. 이야기를 하는 선배의 말투가 점점 빨라지는 것으로 봐선 꽤 상처를 받은 모양이었다.

 딸을 차에 태웠더니 조수석이 아닌 뒷좌석에 올라 타서 대화도 없이 핸드폰만 만지작 거린다며, 자기 방에서 문 닫고 지내는 시간이 많아 대화를 나누기 힘들다며 푸념이다. 어릴 적엔 그렇게 아빠 아빠 찾았던 아이가 많이 변했다며 서운해 하는 이야기 하나하나에 다 내 모습이 담긴 것 같아서 괜히 얼굴이 발개진다. 


 우리 아빠도 나를 이렇게 키우셨을까? 한 해 한 해 변해가는 내 모습에 적응을 못 하고, 어릴 적 아빠를 목마타고 아빠 입에 약 봉지 털어 넣어주던 시절을 떠올리며 서운하셨을까. 고등학생 때 아빠가 매일 차로 나를 학교에 바래다 주었는데, 뒷 자리에서 귀에 이어폰을 꽂고 말없이 있는 나를 보고 섭섭해 하셨겠지. 지금은 옆자리에서 종알종알 하루종일 이야기 할 수 있었는데. 그 땐 왜 그리 할 말이 없었을까. 무엇 때문에 아빠 앞에서 심통난 표정을 하고 얼음처럼 차가운 척을 했을까. 무뚝뚝한 옛날 아빠였던 것 같지만 돌이켜보면 아빠는 나에게 정말 노력을 많이 했다. '시내'라는 번화가도 일 하는 엄마 대신 아빠랑 처음 가 보았다. 분위기 좋은 우동 집에서 밥을 사 먹이고, 91년 당시, 쌍쌍바 100원 하던 시절이었는데 한 스쿱에 1,100원 하던 배스킨라빈스를 처음 사 준 것도 우리 아빠.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일을하고 일요일은 필사적인 힘을 내어 수영장이며 놀이공원에 데려가 대신 줄 서주고 수영장에서 안전사고가 날까 싶어 내 튜브와 동생 튜브를 번갈아 잡아주던 아빠. 하릴 없이 재래시장에 데리고 나가 여기 저기 돌아다니며 먹고 싶은 것을 고르라고 하던 아빠. 딸들을 위한 모든 계획은 며칠 전부터 뭘 할까, 어떻게 할까 고민하고 준비했던 것들임을. 그것이 얼마나 큰 일임을 그 때의 아빠의 나이가 지나고서야 알 것 같다. 하루는 아빠 혼자 나랑 동생 손을 잡고 시장을 나갔는데 시장 아주머니가 우리에게 '아빠가 참 자상하시네. 아빠가 자상하신 편이지?'라고 물었는데 나랑 동생이 둘 다 아무 대답을 못한 적이 있다. 다음 날, 엄마가 왜 아빠가 자상하냐고 묻는 말에 대답을 안 했냐며, 아무도 대답을 하지 않아서 아빠가 서운했다고 했다. 그 날 나는 엄마의 물음에도 묵묵부답이었다. 커서 생각해보니 그 때 내가 왜 그랬는지 이해가 된다. 나는 겨우 일곱 살이었는데 자상하다는 말뜻을 이해하기 전이었던 것이다. 그냥 아빠가 좋냐고 물어보았으면 우리 아빠 최고라고 이야기 했을 텐데. 그 내막을 아빠가 지금도 아는지 모르겠다.

 선배에게 이렇게 이야기 해 주었다. 아빠가 자상하냐는 말에 대답을 못했던 것처럼 딸래미의 행동에 너무 의미를 부여하고 서운해 하지 말라고. 우리는 그래도 어른이라서 아이들 마음을 헤아릴 수 있지만, 아이는 어른보다 덜 살았고 이해력도 부족하니 아이 입장에서 이해 안 되고 서러운 상황이 더 많을 지도 모른다고.


 부모님의 애지중지는 당시에는 깨닫지 못하고 나중에는 잊어버린다.  한 발짝 물러선 제 삼자의 입장에서 선배를 보니 잊고 지냈던 젊었던 아빠가 새록새록 생각난다. 딸 둘 기분을 살피며 어떻게든 아이들이 웃는 모습 한 번 볼까 하는...... 

 세상의 아빠들이 다 이렇게 아이들을 키우고 계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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