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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mi Lee Aug 18. 2019

아빠의 기대를 먹고 자란 아이


 첫 책을 낸 후 가장 기뻐했던 사람이 아빠다. 완성된 원고가 책으로 출판되기도 전,  A4용지에 제본된 원고를 아빠에게 보여드렸다. 내가 책을 낸다고 하니, 왜 사서 고생을 하냐며, 일하는 것만으로도 벅찰 텐데 괜한 수고 하지 말라던 아빠였다. 하지만 빼곡하게 글만 쓰여져, 읽기도 불편한 그 원고를 아빠는 네 번이나 읽었다고 한다. 연신 감탄을 하며 말이다. 다른 고슴도치 아빠들처럼, 우리 아빠도 내가 최고인 줄 안다.

 첫 책을 낸 후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회사도 많이 커졌고, 강의도 많아졌으며, 회사 이전을 두 번이나 하고, 새 창고를 계약하고 집 이사를 하고…. 이 모든 것이 휘몰아치듯 일어난 일이라 하루하루 전쟁 같이 살았다. 그런데 아빠가 자꾸만 묻는다.

 “다음 책 언제 나오니.”

 다음 책에는 아빠 이야기를 많이 쓰고 싶다는 나의 말에 아빠가 은근히 기대를 하셨던 걸까. 그다음에 만날 때도

 “책 준비하고 있다는 건 어떻게 되어가고 있니.”

 ‘회사 일이 바빠서요’ 하는 나의 대답에도, 또 다음에 만날 때 어김없이

 “책 곧 나오니?”

 덕분에 잠시 느슨해졌던 마음을 다잡고, 다음 책을 기다리는 나의 첫 번째 독자를 위해서 빈둥거리는 대신 노트북을 싸매고 카페로 향하는 주말이 많아졌다.


 첫 책을 낸 것도 아빠 덕분이다. 사회 초년생 시절, 첫 1억을 만들었던 이야기인데, 나는 내가 1억이라는 돈을 모은다는 것이 현실에서 가능한 것인지도 잘 몰랐다. 장사가 자리를 조금 잡은 후에 아빠에게 희망사항처럼 ‘1억 한 번 모아 볼게요’ 한 것이 화근이었다.

 아빠의 인생에 낙이 몇 개 있다면, 메이저리그 야구 시즌 기다리는 것, 낚시철에 물고기 한가득 잡아 오는 것 그리고 딸들에게 희소식을 듣는 것이다. 당시 나는 북경 체육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에 와서 딱히 할 일도 없었고, 들어갈 만한 회사도 마땅치 않아 미래가 굉장히 불안하던 시기였다. 하지만 비상한 재주가 한 가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근검절약하기’. 혼자 서울에 나와 사는 내가 불안하실까 하여 ‘2천만 원 모았어요’ 하는 순간부터 아빠는 내 통장 잔고를 무척 궁금해하셨다.

 “3천만 원 모았니.”

 “네 3천만 원 넘었어요.”

 그러면 아빠가 기뻐하셨다.

 “4천만 원은 모았니.”

 “네 4천만 원 모았어요.”

 그러면 아빠가 더욱 기뻐하셨다. 돈을 모으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천만 원을 만든 것과 똑같이 몇 번을 하니, 통장의 잔액은 더도 덜도 말고 딱 정직하게 불어났다. 그리고 단 3년 만에 1억을 만들 수 있었다. 창업 강의에 나갈 때마다 이 이야기를 에피소드처럼 들려주었더니, 수강생들은 ‘온라인에서 판매하기’와 같은 소프트웨어적인 강의대신, 이런 비하인드 스토리를 더 좋아했다. 수업이 끝난 후에도 ‘그래서 어떻게 되셨어요?’ 라며 따라오며 묻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급기야 책 출판까지 구상하게 된 것이다.


 아빠는 평소에 나에게 절대 ‘사랑한다’, ‘좋아한다’ 고 표현할 줄 모르는 경상도 아빠다. 하지만 내가 칭찬받을만한 일을 하면 격하게 기뻐해 주셨고, 어디 가서 딸 자랑도 많이 하는 편이라, 나는 그럴 때마다 내가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더욱 칭찬받고 싶었고, 이렇게 아빠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는 것 자체가 나의 큰 낙이기도 했다. 이런 아빠의 기대를 먹고살았기 때문에 어릴 적부터 부모님과 오래 떨어져 살았어도 스스로 마음을 다잡고 느슨해지지 않게 열심히 살 수 있었다.


 어쩌면 아빠의 지나친 관심과 기대로 비뚤어질 수도 있었을 텐데.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아빠는 단 한 번도 아빠의 욕심을 나에게 강요한 적이 없고, 마치 아무 기대도 하지 않은 듯 나의 목표를 물어보았고, 내가 내 목표를 설정하고 삶의 방향을 잡아갈 수 있도록 질문과 응원을 무한 반복해주었다. 다독여주고 채찍질해주고 기대해주는 아빠 덕분에, ‘올해는 어떤 새로운 일을 해 볼까’, ‘이걸 성공시키면 아빠가 참 좋아하겠다.’ 생각하며 스스로 삶의 방향을 잡아간 것이다. 나에게 자식이 있으면 이렇게 무조건적으로 믿어주고 응원해주고 격려해줄 수 있을까? 내가 살아가는 방향의 팔 할은, 아빠의 힘이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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