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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mi Lee Jul 07. 2022

부모님 용돈이 고민될 땐 최선을 다해보는 거다

 엄마가 서울행을 결심했다. 엄마가 집 밖을 나서는 건 연례행사다. 친구네 엄마들은 종종 자식 집에 놀러 와서 겸사겸사 다른 동네 구경도 많이 한다는데. 우리 가족은 온 가족이 집에서 같은 루틴으로 일상을 즐기기를 좋아하는 집순이들이다. 물론 여행도 좋아하지 않는다. 부모님이 큰맘 먹고 딸들 집을 방문할 때는 딱 한 가지. 우리가 이사를 했을 때다. 새 집과 새 동네가 어떤가 염려되고 걱정되어 단 한 번 행차를 하고 그 후에는 웬만해선 움직이지 않는다. 이번엔 동생이 이사를 했다. 일하는 아빠를 집에 남겨 두고 엄마 혼자 서울행을 했다. 충북에 사는 나도 꾸역꾸역 서울로 올라갔다. 코로나를 핑계로 일 년이 넘도록 엄마 얼굴을 못 봤다. 세 모녀가 서울에서 상봉을 했다. 오랜만에 서울로 놀러 간 나도 신이 났다. 사 먹고 싶은 것도, 가고 싶은 곳도 많았다. 엄마가 평소 먹어보지 못한 것들을 잔뜩 사 먹고 예쁜 카페 투어도 했다. 아빠 없이 여자들끼리 다니는 나들이가 사뭇 새롭기도 했다. 

 마침 날도 참 좋을 5월이라, 동생은 해 질 녘 한강에서 치킨을 먹자고 했다. 그건 나도 많이 해 본 적이 없던 낭만이었다. 엄마와는 처음 해 보는 한강 나들이었다. 우리는 돗자리를 싸들고 한강공원을 찾았다. 차박을 하거나 캠핑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늘 자리를 골라 앉았는데 바람이 꽤 불어 머리가 날렸다. 오랜만에 보는 복잡한 한강이 나쁘지 않았지만 시골에서 상경한 나는 서울이 정신없긴 했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도 많았고 산책 나온 강아지도 많았다. 둘러보고 있는데 선상 레스토랑이 눈에 들어왔다. 검색을 해보니 선상에서 조개구이를 먹을 수 있었다. 가격 정보도 나와 있었다. 3인에 11만 원. 2만 원짜리 치킨 먹자고 온 한강이었다. 잠시 고민했다. 11만 원. 한 끼 식사에 11만 원. 한강에서 지는 해를 바라보며 치킨을 뜯는 것도 재미있겠지만 한강변에서 엄마와 조개를 구워 먹으면 얼마나 더 낭만적이겠는가. 자주 오지 않는 엄마와 자주 만나지 못하는 식구들과 함께 이 정도도 못 먹으랴 싶어 이야기했더니 다들 반응이 시큰둥하다.

 "얼마야?"

 "안 비싸?"

 우리 집이 이리 가성비 따지는 집이다. 내가 사겠다고 해도 그런다. 일 년에 한 번 쏘는 건데 좋은 거 먹자며 졸라서 배 위로 올랐다. 확실히 돗자리 깔고 앉아 있는 것보다 바람은 덜 불고 아무리 몇십 미터 차이라고 해도 공원에 앉아 즐기는 것과, 강 위에 떠서 해가 지는 강변을 바라보는 느낌은 또 다른 것이었다. 조개가 구워지고 엄마는 맥주 한 병을 시켰다. 생각보다 조개 퀄리티는 훌륭했고 양도 많았으며 맛있어서 몹시 만족했다. 나는 나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다. 시원하게 카드를 긁었다. 이러려고 돈 버는 것 아닐까.


 부모님에게 용돈을 드릴 때 금액이 고민될 때면 늘 많은 쪽으로 택했다. 10만 원 드릴까 20만 원 드릴까 고민되면 20만 원을 드리는 것이다. 그때뿐이다. 뒤돌아서면 잊게 되고 10만 원 아낀다고 특별히 내 생활에 변화가 생기는 것도 없다. 내 것을 사며 엄마 꺼 하나 더 살까 말까 고민될 때는 그냥 과감하게 샀다. 엄마가 쓸까 안 쓸까 고민하지도 않았다. 분명 미리 물어보면 마다할 것이기 때문에. 일단 질러놓고 엄마가 안 쓰면 내가 쓰면 된다. 그래서 나는 돈을 벌기 시작했을 때부터 내 기준으로는 결코 박하지 않는, 선물과 용돈을 많이 드렸다. 이게 내가 아직도 시집을 못 가서 유감이긴 한데 사실, 언젠가 내가 결혼하고 내 가족이 생기면 아마 부모님에게 소홀해질 지 몰라서 미리미리 효도하고 다짐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미리미리'가 한정 없이 길어지고 있다.


 얼마 전 부모님이 돌아가시는 꿈을 꿨다. 부모님 돌아가시는 꿈이 꿈 중에 제일 좋은 꿈이라고 하지만 나는 어릴 적부터 가족들이 꿈에서 자주 죽었고 그럴 때마다 울거나 끙끙 앓으며 잠에서 깼다. 그러면 며칠간 기분도 꿀꿀하고 괜히 부모님 생각이 더 많이 나고 보고 싶고 그랬다. 그런데 최근에도 부모님이 돌아가신 꿈을 꿨는데 꿈속에서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뭐 그간 나는 아빠 엄마에게 해드릴 수 있는 최선을 다했고 더 잘하라고 해도 못 했을 것이다. 부모님이 더 살아계셔서 내가 잘하는 걸 볼 수 있으면 좋겠지만 인연이 여기 까지면 나는 기껍게 받아들이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보내드려야겠다."

 꿈을 깨고 나니 참 묘했다. 소리 지르거나 베갯잇을 적시며 일어나야 정상인데 의연하게 꿈에서 깬 것이다. 내가 이렇게 성숙하게 아빠 엄마와 헤어질 준비를 하고 있다니, 아닌데. 현실의 나는 전혀 그렇지 않은데. 아빠 엄마 없으면 하루도 못 살 것 같은데. 그런데 생각과 행동은 또 다른 것이었던지 좋은 꿈 꿨다고 읍내에 들러 로또를 사고 있더라. 

 로또 당첨되면 더 좋은 거 많이 사드리려고 했는데 개꿈인지 당첨번호는 맞질 않았다. 그 대신 나는 다시 내 지갑을 털어 여름인데 몸보신하라고 삼계탕 밀키트나 보내드렸다. 

 영문도 모른 채 엄청 잘 드셨다고 한다.


 




동생입니다.. 네 이사 때문에 나 돈 많이 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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