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yemi Lee Jan 03. 2019

아빠의 국밥 한 그릇

 혼자 밥 먹기 싫다. 삼시 세 끼를 혼자 먹은 날은 더욱 그렇다. 혼자 산 지 벌써 15년째다. 어릴 적엔 혼자 밥 먹으러 다니는 것이 그렇게 부끄럽지 않았고 오히려 당당했는데 점점 나이가 들수록 모르는 친구도 가족도 없는 사람 같이 보여 식당에 앉은 엉덩이가 들썩거린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나와 전혀 상관없는 사람일 테지만 혼자 식당에 들어가서는 아무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스마트폰을 만지작 거리거나 눈을 내리깔고 한 그릇을 겨우 비운다. 오히려 혼밥이 더욱 유행하는 시대가 왔음에도 나이가 들 수록 혼자 밥 먹는 것이 덜 익숙하다. 시대의 유행을 반영하듯 독서실 칸막이처럼 사방을 가려 혼자 먹는 불편함을 덜어주려는 식당도 있는데 오히려 그런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가기가 더 서러운 것은 나만 그런가.


 식당에 가서 밥을 먹다 보면 혼자 앉아 뚝배기 그릇을 비우는 아저씨들이 뒷모습을 볼 때가 있다. 혼자 밥 먹는 사람 중 아빠 또래의 아저씨들이 가장 마음 쓰인다. 저 아저씨의 가족들은 무얼 하고 있을까. 혼자 먹는 밥이 맛있을까? 아마 그 아저씨는 혼자 맛있게 식사를 하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았을 텐데 나 혼자 오지랖이다.


 내가 중학생 때부터 우리 집은 동네 슈퍼를 운영했다. 그 시절의 우리 가족은 힘을 합쳐 열심히 일해서 우리도 한 번 잘 살아 보자고 의기투합을 했다. 하루 12시간 넘는 노동을 하고, 집안에 먼지 한 톨 날리지 않게 가사까지 완벽히 해내는 엄마도 그랬지만, 아침 7시에 출근해서 저녁 7시에 퇴근하고 근처 밥집에서 돼지국밥 한 그릇 비우고 와서 엄마와 교대를 해준 후 밤 11시까지 가게를 봐주는 아빠도 그랬다. 나도 주말이며 방학이면 내내 슈퍼에 붙어 있어서 동네 친구들이 나를 찾으려면 으레 슈퍼로 찾아와서 얼굴을 드 밀곤 했다. 슈퍼는 문을 닫는 날도 없었다. 매년 명절마다 나는 할머니 집 가는 것을 포기하고 가게를 봤다. 명절에는 동네에 문 여는 슈퍼가 없어, 선물세트를 팔 수 있는 나름의 대목이었기 때문이다. 아빠가 투잡을 한다는 것은 취미처럼 돈을 벌면 좋고 아니면 마는 호락호락한 투잡이 아니었다. 피와 살을 깎는 매우 오랫동안의 끈질긴 노력이 필수였다. 뭘 하든 일단 손을 대었다 하면 제대로 해내고 마는 것이 우리 아빠였다.


 그래서 아주 오랫동안 아빠는 혼자 저녁밥을 드셨다. 물론 우리도 매한가지였다. 집에서 엄마가 끓여놓은 국과 밑반찬을 꺼내 보온밥솥에 있는 쌀밥을 퍼 먹는 것이 저녁식사의 의식이었다. 엄마는 아빠가 늦는 날이면 혼자 가게 한 켠에 자리를 잡고 밥을 먹다가, 손님이 오시면 밥 먹다 말고 계산을 한 후 다시 식사를 하곤 했는데, 희한하게 밥만 먹으면 손님이 많이 와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는 날이 많았다. 식사시간은 늘 전쟁 같았고 어서 한 끼 해치워야 하는 것이었다. ‘식사시간을 여유 있게’라는 말은 진짜 여유 있는 집의 일이었던 것이다. 

 아빠는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에 들어가는 길에 근처 선술집에 들려 맥주 한 잔을 더 하고 들어오곤 했다. 엄마는 빨리 들어가서 쉬라고 교대를 해 주었더니 술 마시러 가냐며 핀잔을 하셨지만, 고단했던 아빠가 하루 한 시간 채 되지 않은 혼자만의 토막 시간을 가지고 알코올에 의지해 좀 더 깊은 잠을 자려는 것도 이해가 된다. 맥주마저 서둘러 마시지 않으면 잠자는 시간을 양보해야 하는 무척 강도 높은 하루하루를 보내며 십여 년을 보냈다.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다. 노력해도 안 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노력한 만큼의 결과가 정직하게 주어졌으니 나만큼 운이 좋은 사람이 어딨을까. 그런데 나의 이 운의 밑천은 바로 아빠 혼자 쓸쓸히 먹었던 10년간의 국밥 한 그릇이었다고 믿는다. 부모님의 노력과 정성이 나와 동생이 겪어야 했던 힘듦을 대신한 밑바닥이 되어주었다. 그랬기에 학비 걱정 없이 하고 싶은 공부에 전념했고 엄마 카드를 쓰면 되었기에 돈보다는 꿈을 좇아 '적성에 맞는 일'을 찾아 나설 수 있었다. 그런데 아빠는 과연 적성에 맞아 회사를 다녔던가... 슈퍼가 아빠의 적성이었던가...


 혼자 사는 나를 보러 엄마가 서울에 올라오려고 하면 그냥 만류한다. 아빠가 집에 돌아왔을 때 더 이상 아무도 없는 집에서 썰렁하게 혼자 반찬을 꺼내서 밥을 먹거나 또 근처 국밥 집에 들어가 혼자 밥 먹는 모습이 무척 싫기 때문이다. 가게를 그만둔 후 엄마가 집에 있게 되어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이제는 나와 동생이 다 안정적이게 일을 하고 먹고 살 걱정을 덜었으니 밤잠 못 이루는 일이 줄어들었다는 아빠. 국밥의 투가리를 비우며 한 끼 때우던 아빠가 이제는 매일같이 엄마가 차려주는 따뜻한 밥상에서 편안한 식사를 하면 좋겠다.

이전 02화 어느 날, 예고 없이 부모님이 집에 쳐들어왔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