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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mi Lee May 26. 2021

엄마가 해준 건 못 버리지

 나는 쑥떡도 싫고 쑥국도 싫다. 쑥으로 만든 건 다 맛없다. 어릴 적 봄이면 엄마가 나를 데리고 쑥캐러 갔다. 난 쑥 캐는 게 그저 소꿉놀이하는 것처럼 재밌었던 건데 엄마는 가정 경제를 위해 진심으로 쑥을 캤다. 쑥을 캐면 공짜 반찬을 밥상에 올릴 수 있으니까. 쑥 한 바구니 가득 담아오면 그걸로 쑥국을 만들어서 몸에 좋은 거라고 우리에게 먹였다. 애들 입맛에 텁텁하고 쓴 쑥국이 맛있을 리가 있는가. 쑥떡도 쪄서 몸에 좋다고 먹였다. 난 원래 떡이 싫고 앙코가 없는 떡은 더 맛없다. 어릴 적 봄만 되면 달래니 두릅이니 약이 되라고 먹이는 엄마의 정성 때문에 나는 지금도 풀 반찬들이 싫다. 어른이 되고도 식당에서 주는 봄나물들은 쏙쏙 빼먹고 편식을 한다. 내가 기억하는 엄마의 밥상은 이렇다. 몸에 좋은 건 다 해다 먹였다. 애들 입맛이라고 봐주는 게 없었다. 엄마의 장기가 '요리'라고 하는 아이들이 부러웠다. 지금도 엄마 요리는 내 입맛에 맞지 않다.

 그런데 얼마 전 쑥떡 한 박스가 말없이 배달되어 왔다. 찹쌀로 떡을 지어 말랑말랑한 쑥떡을 한 입 크기로 먹기 좋게 썰어 콩고물 두 가지를 정성스럽게 묻혀 위생팩에 10개씩 나눠 담은 것이 50 봉지 즈음 왔다. 아침으로 한 봉지씩 먹어도 무려 50일을 먹어야 하는 양이다. 쑥떡을 받은 날 엄마에게 메시지가 왔다. 올봄에 엄마가 직접 캐서 떡을 해오고 일일이 썰고 콩고물 묻혀 소분하느라 힘들어 죽을 뻔했으니 맛있게 먹으라고. 내가 몸이 차가우니 쑥을 먹으면 좋다고 했다. 감사한 대신 탄식부터 나왔다. 내가 계획적으로 사는 게 좋으니 절대 서프라이즈 하지 말라고 했는데! 딸이 쑥떡 안 먹는 것도 모르고. 게다가 우리 집 냉동실에는 쑥떡 50 봉지가 들어갈 공간이 절대적으로 없었다. 밀키트와 식자재마트에서 대량으로 사 온 냉동식품들로 나름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먹는데 재미가 붙은 참이었다. 새로 이사 온 동네에 아직 사귄 친구가 없어 나눠줄 사람도 없었다. 그래도 그 쑥떡을 버릴 수가 없어서 냉동고에 욱여넣고 보관했다. 각얼음을 빼고, 떡볶이 재료들을 꺼내서 일부러 야식을 만들어 먹고. 덕분에 한동안 아이스커피를 만들어 마시지 못했다.

 냉동실이 가득 차있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아빠가 잡아온 갈치와 볼락 때문이었다. 나는 회나 생선류도 질려서 잘 못 먹는다. 어릴 적 아빠 취향대로 횟집을 너무 자주 갔고 우리 집은 육고기 반찬보다 물고기 반찬이 더 많았기에. 물컹하고 비린 생선회의 식감은 역시 어린이 입맛에 맞지 않았다. 커서도 내 돈 주고 생선이나 회 종류를 사 먹은 적이 없다. 그런데도 여전히 집에 내려가면 아빠는 해산물을 한가득 차려 너무 맛있지 않냐며 나에게 권한다. 그럼에도 종종 아빠가 낚시해서 잡아오는 건 특별하니까. 나도 맛을 보게 아주 조금만. 아주 조금만 보내 달라고 엄마한테 얘기했는데 엄마가 맥주캔 12개 들어가는 아이스박스에 생선을 가득 담아 보냈다. 그게 작년 일이다. 우리 엄마 예로부터 짠 소금으로 유명한데 딸들에게 뭘 보낼 때는 동네 큰 손이 따로 없다. 아빠가 잡은 생선을 엄마가 일일이 토막 내고 비늘까지 손질해서 손글씨 써붙여 보낸 냉동생선을 어떻게 버릴 수 있겠는가! 혼자 사는 집에 생선 구울 일이 일 년에 몇 번 있다고. 그래서 한 칸이 넘는 냉동고에는 생선 두 종류와 쑥떡이 고스란히 자리 잡게 되었다.

 엄마에겐 곧이곧대로 짜증을 낼 수 없어 동생에게 메시지를 잔뜩 보냈다. 안 먹는 걸 엄청 많이 보내줬는데 버릴 수도 없지 않냐고. 동생은 쑥떡을 좋아한다. 동생은 나를 달래며 그럴 거면 자신에게 보내라고 했다. 그렇잖아도 창원에 들르면 엄마 쑥떡을 많이 갖고 갈 거라며. 그런데 이걸 또 동생 집에 보내자니 귀찮기도 하고 아이스박스에 넣어 택배를 보내자니 택배비도 많이 들어가서 포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몇 주 후 동생에게 택배 보낼 일이 생겼다. 택배 한 박스를 싸고 나니 공간이 조금 비었다. 나는 옳다구나 남은 쑥떡 20봉을 끼워넣었다. 택배 마감 시간에 맞춰 부랴부랴 급하게 싸서 보냈다. 그리고 동생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쑥떡 네가 좋아하니까 함께 싸서 보냈다고. 동생이 질색을 했다. 동생도 엄마 집 다녀올 때 쑥떡을 이미 챙겨 왔다고. 택배 보내기 전에 뭘 보낼지 얘기를 하라고 하지 않았냐고. 냉동고가 꽉 차서 한 팩도 넣지 못하는 사정은 동생 집도 마찬가지였다. 난 동생이 좋아한다니까 엄마 집에서 챙겨 갔어도 어느 정도 먹어 없어졌을 줄 알았다. 안 좋아하는 내가 문제지, 좋아하는 거면 냉동이 아니라 냉장 보관하면서 한 팩씩 꺼내 먹으면 문제가 없잖아? 솔직히 말하자면 그 쑥떡을 처분할 생각에 다른 생각이 나지도 않았다. 택배 박스에 남은 공간이 생기자 그냥 넣어 보냈다. 엄마가 싸준 거 엄마의 다른 딸이 먹으면 미안하지 않으니까.


 그런데 택배가 웬일인지 이틀 만에 도착했다. 택배는 웬만하면 하루 만에 도착했고 식품이라 쓰여있으면 특히 신경 써서 배달하는데! 생난리가 났다. 아이스팩은 미지근하게 녹아 있고 떡은 딱딱하게 다 굳어 있다고. 엄마가 해준 거 속상하게 버리게 생겼다며 동생집은 빌라라 음식쓰레기 처리도 어려운데 자기한테 짐을 떠 안겼다며 엄청나게 짜증을 내는 거다. 우와, 내가 하소연 한 바가지 했을 때는 그렇게 이성적으로 나를 진정시키더니, 막상 자기가 같은 상황 되니까 똑같구먼. 아니, 내가 짜증 낸 거보다 한 다섯 배 더 구시렁거린 것 같다. 되로 주고 말로 받았다. 말 안하고 보낸 나보고 엄마랑 똑같단다. 그럼 똑같지, 엄마 딸인데.


 어릴 적 학종이를 접어 선물하던 시절이 있었다. 천 마리를 접어 선물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던 종이접기 회사의 상업적인 멘트를 어쩜 그리 많은 사람들이 잘도 믿었던지! 나의 성의가 받는 상대에게는 필요 없을 수도, 부담이 될 수도 있다. 가면 갈수록 누군가에게 선물을 하기가 어려워진다. 부모님도 마찬가지다, 요즘 유행하는 포토 케이크나 떡케이크 앙금 하나하나에 꽃무늬를 넣어 그토록 정성스럽게 만든 걸 5,6만 원 돈 주고 구매해서 드리면 돈 아깝다고 이게 다 무슨 소용이냐고 하면서. 우리가 종종 선물을 잘못 고르면 차라리 용돈을 달라던 부모님은 어쩜 이렇게 우리 마음을 모를까. 반찬 해 줄 필요 없다고 몇 번을 말해도 (아직도 엄마 음식 내 입에 안 맞아 미안...) 뭐라도 해주고픈 엄마의 마음은 번번이 똑같은 질문으로 돌아온다.


 엄마는 이 상황을 모른다. 엄마는 우리가 쑥떡을 맛있게 먹은 줄 안다. 나는 착한 딸이라(?) 커피와 쑥떡을 아침으로 먹는 인증샷을 보내며, 처음에 엄마한테 볼멘소리를 냈던 것에 대한 사죄로,

 '원래 내가 받을 땐 말이 많지만 주면 또 잘 먹잖아'

 라며 엄마를 기분 좋게 해 줬다. 혹시 내가 50 봉지 다 먹은 줄 아실까? (설마 또 해주시는 거 아니겠지)

 나중에 먼 훗날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면... 이 쑥떡이 생각날 것만 같다. 짜증이 났다가 그래서 더 미안해진 마음, 동생이랑 장문으로 주고받은 설전, 엄마가 쑥떡을 캐고 쪄서 우체국까지 무거운 거 이고 지고 가서 부쳤을 모습까지. 동생도 나도 쑥떡을 보면 눈물이 나겠지.

 그러니까 어머니. 다음부터 우리에게 해 주고 싶은 거 있으면 그냥 용돈으로 부쳐 주세요.





쑥밭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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