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yemi Lee Apr 10. 2022

엄마가 유튜버가 되었다

 지난 시간 내가 써 놓은 글을 쭉 들여다보니, 육아일기와 같은 부모님 일기가 차곡히 모아져 있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나도 성장하고 부모님도 계속 성장해온 것이 시간별로 순서대로 저장되어 있던 것이다. 

 요 몇 년간 아빠는 30년 넘게 다니던 회사를 정년퇴직했고 엄마는 10년 넘게 하던 장사를 그만두었으며 동생은 직장을 찾아 무난하게 다니고 있고 나의 사업은 굴곡을 그리며 그래도 긍정적으로 잘해나가고 있다. 큰 탈 없이 잘 있어준 식구들에게 감사하고 이 평화를 지키기 위해 더욱 겸손하게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육아도 그런가? 사랑하는 가족이고 그런 나의 가족들을 챙기다가도 가끔 귀찮은 순간들이 문득문득 찾아오고 어떨 땐 의무감에 몸을 배배 꼬기도 하지만 그래도 식구들에 대한 의리로, 책임감으로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나에게 뿌듯함이 찾아오고. 반복되는 일상이 그러하다.


 엄마가 유튜브를 시작했다. 처음부터 엄마가 하겠다고 나선 것은 절대 아니다. 내가 부추겼다. 손맛이 남다르다며 자랑하는 다른 엄마들과는 조금 다르게 백종원 레시피를 참고하거나 밀키트로 요리하는 엄마의 일상이 웃기기도 하고, 기록에는 일가견이 있는 엄마가 카메라도 곧잘 만지니 영상을 만들어 보관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나는 엄마가 시대의 흐름을 잘 따라가는 것이 자랑스럽다. 앞서 인스타그램 계정을 개설해주고 엄마의 요리나 여행 등 일상 이야기를 올릴 수 있도록 바람을 넣은 것도 나다. 아빠 엄마가 유튜브를 아주 오래전부터 무척 즐겨보기도 했기 때문에 직접 영상을 만들어 보아도 좋을 것 같다고 단순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검색해 보니 60대, 70대 주부들도 자신의 끼를 발산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나는 엄마를 살살 꼬드기기 시작했다. '부담스러우면 얼굴 안 나와도 된다.' '30초만 찍어도 되니 부담 가지지 말라.' '혹시 잘돼서 빵 뜨면 엄마 인생이 얼마나 재미있어지겠나.' 등등 온갖 사탕발림을 늘어놓으며. 마치 자녀 교육에 열 올리는 극성 엄마와 같은 극성 딸이 되었다. 엄마는 꾸준히 촬영을 하고 말을 다듬고 연습하고 또 촬영을 하고 그리고 원본을 나에게 보내주었다. 나는 완성작을 맘 편히 감상하는 역할이 아니고 엄마의 원본을 받아서 편집이라는 또 다른 뒤치다꺼리에 맞닥뜨리게 되었다.

 처음에는 엄마도 편집까지 배워 보겠다고 열의를 불태웠으나 만류했다. 편집이 단순한 것도 아닌데 '편집이란 무엇인가'부터 배우자니 시간이 많이 걸리고, 또한 편집 센스랄까 자막 넣는 것부터 장면 전환까지 해야 하는 작업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 배우고 연습하다 엄마의 열정이 식어버릴까 우려되었다. 반면에 나는 회사에서도 종종 편집 프로그램을 써서 영상을 만들고 홍보에 활용도 하니 이 익숙한 작업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엄마의 영상은 보통 1분에서 3분 내외로 짧게 제작되는데 엄마가 영상을 전송해 주는 원본 영상은 2분에서 지금까지 가장 길었던 것이 12분이니 내가 손 빠르게 집중해서 편집하면 짧게는 10분 만에 영상 하나가 뚝딱 완성되는 것이다. 사실 내가 직접 편집을 하는 것보다 더 무서운 건 엄마가 편집하겠다고 나섰다가 중간에 뭐 하나 막히면 나를 호출하는 일인데, 진짜 가까이 있지도 않으면서 원격으로 엄마를 봐주는 것보다 내가 직접 하는 것이 훨씬 속편하다. 게다가 엄마한테 태그 쓰는 법, 썸네일 만드는 법... 설명할 방법이 없다...


 여튼 우리는 그렇게 일을 벌였고, 계정을 개설하고 컨셉을 이리저리 바꿔 보며 채널을 키우는 재미에 빠져있다. 

 엄마가 무얼 하나 시작하면 사실 나의 손발이 함께 바빠진다. 카드 결제하는 법을 배워 엄마가 인터넷 쇼핑을 직접 시작하였으나 판매자의 실수로 오배송이 되거나, 엄마 본인의 단순 변심으로 교환 반품이 필요할 때에는 어김없이 내 손이 필요했다. 인스타그램 같은 경우는, 초반에 새로 피드를 올릴 때마다 나에게 따로 카톡을 보내서 새로 올렸으니 확인하라는 인간 알람까지 자처하시는 바람에 봐주어야 하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문득 기억나는 어릴 적 장면이 있는데 내가 종이인형을 사달라고 조르면, '이걸 사주면 나만 귀찮지' 하던 것이다. 삐뚤 하게 자르는 내 종이인형을 다듬어주어야 하는 것은 엄마의 몫이었다. 그 인형을 잡고 놀아주어야 하는 것도 엄마였다. 어느 날은 내가 베이킹을 한 번 해 본답시고 온 부엌을 초토화시켜놓으면 그것을 처리해야 하는 것 또한 엄마였고 여행 가고 싶다는 나와 동생의 한 마디에 준비부터 다녀와서 산더미 같이 쌓이는 식구들의 빨랫감까지! 나의 긴 성장기간 동안 나는 엄마의 손발을 얼마나 많이 빌렸던가. 보통은 이렇게 엄마에게 받은 것들을 자식을 키우며 되갚지만 나는 되갚을 자식이 없으므로 아직까진 엄마에게 집중하기로 한다. 

 

 퇴근 후 집에 들어가 엄마의 영상을 편집하는 날들이 늘었다. 피곤하기도 하고 개수가 늘어날수록 귀찮은 것도 사실이다. 숙제처럼 엄마의 동영상을 미뤄두었다 하기도 했다. 엄마는 요즘 내 눈치를 진짜 많이 보는데 그래서 촬영한 것을 100% 다 주는 것 같지도 않고 영상 하나 줄 때마다 '바쁘니, 피곤하니' 물으며 굉장히 조심스럽다. 나는 늘 괜찮다고 말 하긴 하는데.. 귀찮음이 좀 티가 났나? 그래도 막상 영상 편집이 끝나고 결과물이 나오면 뿌듯하다. 영상 속에 아빠와 엄마가 대화하는 장면도 좋고, 엄마가 카메라 앞이라고 목소리를 가다듬고 고상한 척 이야기하는 것도 너무 웃겨서 가끔 혼자 낄낄대며 웃기도 한다. 아빠 엄마의 일상을 훔쳐보는 것도 즐겁다. 함께 있지 않아도 같이 살 때의 느낌이 새록하게 떠오르기도 한다.

 엄마의 유튜브 채널의 컨텐츠는 점점 쌓여갔다. 한 두 개 제작하고 그만두는 것이 아닐까 생각도 하였지만 편집의 고통이 없어서 그런가 엄마의 창작열은 꺼질 줄을 몰랐고 요리 영상 가짓수를 늘리더니 최근에는 진해 벚꽃의 절경을 담아 처음으로 조회수 1000회를 넘기고 아빠와 함께 기뻐하기도 했다. 큰 이벤트가 없는 아빠 엄마의 일상에 자꾸 들여봐 주어야 하는 무언가가 생긴 것이다. 아빠는 엄마 영상이 하나 올라오면 티비로 여러 번 재생해서 본다고 한다. 본인들이 여차저차 촬영한 것을 나의 자막이 더해져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편집되어 나온 것이 신기한 것이다. 사실 영상을 제작해 보면 알겠지만, 제작자만큼 그 영상을 재밌어하는 사람도 없다.


 다른 사람들이 볼 때에는 그저 평범하고 얼기설기한 영상이겠지만 이 영상으로 가장 득 보는 사람은 아빠도 엄마도 아닌 나다! 10년 후, 20년 후 예전 부모님 모습이 기억나지 않고 부모님의 목소리가 어렴풋할 때, 2022년의 꽃놀이 갔던 아빠 엄마의 대화 소리를 들으면 얼마나 아련해지겠는가.

 내가 쓴 글을 몇 년 모아도 자산이 되듯 아빠 엄마를 만날 때마다 나도 참여하고 촬영도 도우면서 꾸준하게 우리 가족 영상을 올려 보아야겠다. 아빠의 낚시 브이로그도, 산행도, 단풍구경도. 보는 사람을 위한 컨텐츠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가장 중요한 것이 컨텐츠 활동을 하면서 우리가 즐거워야 지치지 않고 오래 할 수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런 진솔한 일상들이 어떤 구독자들에게는 재미와 감동을 줄 수도 있을 테니까.


 엄마의 유튜브를 공개한다. 혹시 이 영상을 보고, 우리 부모님도? 하신다면 이 정도의 퀄리티도 가능하다는 자신감을 주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다. 카메라가 익숙지 않은 아빠 엄마의 영상은 영상미나 예술성보다 진짜 있는 그대로의 날것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여러 번 바꾸어 지금 정착한 채널명은 '집순이의 주부생활', 그 안의 재생목록은 '밀키순', '꽃순이'.

 엄마의 이름이 '김순이'인데, 그래서 엄마의 이름이 옛날 사람 이름 같다고 부끄러워하던 엄마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고 싶었다. 부를수록 듣기 좋은 대표적인 한국 이름 아닌가!


 나의 자랑스러운 엄마 순이 씨가 앞으로 한 60~70년은 더 자신 있게 하고 싶은 것 모조리 다 하고 살면 좋겠다. 그 때문에 내가 좀 더 바빠진대도, 기꺼울 것 같다.








https://www.youtube.com/watch?v=34u3Gz9Icg8



https://www.youtube.com/watch?v=PNh6rZJakDI




이전 04화 부모님 용돈이 고민될 땐 최선을 다해보는 거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