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이사 온 말우물의 우리 집.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왼편으로 작은 화단이 있었고,
그 옆에는 물을 퍼올리는 작은 샘이 있었다.
방은 ㄱ(기역) 자로 왼쪽부터 작은 1개의 방과 부엌,
안방과 대청마루, 그리고 마지막 방이 이어졌다.
중간에는 큰 대청마루가 있었는데,
여름에는 그보다 시원한 곳이 없었다.
대청마루에 누우면 파란 하늘이 그대로 보였고,
밤이면 밤하늘의 별 빛을 누워서 감상할 수 있었다.
마루 뒤편에는 뒤란(뒤뜰)으로 이어지는 탁 트인 문이 있었는데, 그곳으로 나가면 장독대와 할머니가 애지중지하는 텃밭이 있었다.
예전 살았던 역말의 대궐 같은 큰 집은 아니었지만
우리 가족이 함께 살기에는 아늑함이 가득한 충청도의 전형적인 가옥이었다.
조금 아쉬운 것이 있다면 바로 식수였다.
샘이 깊지가 않아서 수량도 적었고 그리 맑지가 않았다.
때문에 아버지는 이사를 온 후에 가장 먼저 사람을 불러서 수도를 만들었다. 깊은 지하로 식수관을 파서 새로 지하수를 개발하여 수도꼭지로 연결하였다. 그 덕분에 우리 집은 사시사철 차가운 지하수를 언제나 이용할 수 있었다. 한 여름에도 손발이 시릴 정도로 우리 집의 물은 차가웠다. 다만 추운 겨울에는 살짝 수도꼭지가 얼어서 물이 나오는데 시간이 걸렸지만 불편한 것은 그뿐일 뿐,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이렇게 새롭게 우리 집이 만들어졌고, 이곳이 내 삶의 진정한 터전이 되었다.
무엇보다 그 집이 좋았던 것은 우리 집을 지켜주는 수호신이 있었다는 것.
우리 집 뒤에는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뒤틀을 바라보면서 누워있으며 집 뒤에서 나를 바라봐주는 어머니 같은 나무.
바로 나의 친구 팽나무였다.
어르신들은 그 나무를 '500년 나무'라고 불렀다.
조선 초기부터 말우물 중심을 지켰던 수호신 같은 나무로, 그 팽나무는 우리 또래들의 놀이터였다.
높지 않아서 오르기 쉬었고 여기저기 작은 구멍들이 많아서 우리들의 보물들을 숨기기 좋았다.
여름이면 큰 그늘이 있어서 더위를 피하기 좋았고,
가을에는 푹신한 나뭇잎 침대를 마련해 주었다.
집보다 편안했던 나와 우리 친구들의 공간이었다.
정말 내게 없어서는 안 될 정말 소중한 나무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나무에 벌들이 살기 시작했다.
무시무시한 말벌의 벌집이 그곳에 생긴 것이었다.
부모님은 벌에 쏘이면 위험하다며 집 뒤의 팽나무에 가지 말라고 했다. 며칠 후에 동네 어르신들이 와서 말벌 집 퇴치가 시작되었다.
나무 구멍 여기저기가 불로 까맣게 변해 버렸다.
말벌은 결국 사라졌지만 그 나무도 예전 같은 푸르름은 사라져 버렸다. 큰 상처가 생긴 듯했다.
그날 이후 사람들은 혹시 말벌이 다시 나올 줄 모른다며 아무도 그 팽나무 근처에 가지 않았다.
나도 그렇게 500년 된 팽나무와 나는 멀어지게 되었다.
그렇지만 팽나무는 내가 국민학교를 가고, 중학교와 고등학교, 대학과 군대를 갈 때까지 그곳에서 자리를 지키며 나를 지켜봐 주었다. 항상 우리 집 뒤에서 내가 커가는 것을 바라봐준 정말 오래된 친구였다.
그 나무는 아직도 살아있다.
나와 함께 시간을 보냈던 그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
그 500여 년 된 팽나무는 2001년 4월 4일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했다. 마을 개발이 시작되면서 보호수로 지정되면서 천안시청이 있는 종합운동장 광장의 연못 옆으로 이사가게 되었다.
지금은 내가 아닌 천안시민들의 벗이 되어서
긴 생명력을 이어나가고 있다. 가끔 답답하고 힘들 때 그곳을 찾는다. 오래된 친구를 만나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