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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배 Jan 29. 2024

도서관 자원봉사자 회의에서는 이런 것도 됩니다

초보 자원봉사자가 처음 월례회에 참석한 후기

태생적으로 회의를 좋아하지 않는다. 회의란 모름지기 자유롭게 의견을 주고받아야 하거늘 내가 경험한 건 이미 답을 정해놓고 일방적으로 따라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더구나 공식적으로 목소리 내는 것도 몹시 불편한 내형인이기에. 그래서 때론 회의를 주관해야 하는 입장이 된 지금도 내용을 요약해서 팀원들과 카톡으로 나누길 선호한다.


그러니 월례회를 가는 발걸음이 한없이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도서관에 도착하자마자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민원을 처리했다. 도서 대출과 반납은 기본이요, 회원증을 새롭게 발급하고, 상호대차 소장분관 발송에 책을 찾아달라는 꼬마 천사들의 요청도 심심치 않게 들어왔다. 거의 엉덩이를 의자에 붙일 새 없이 뛰어다니던 중 예사롭지 않은 포스의 인물들이 하나 둘 도서관 안으로 들어왔다. 한눈에 보아도 일반 이용객이 아닌 선배 자원 봉사자 들임을 알 수 있었다.


도서관이 문을 닫을 시점까지 봉사를 마무리하고 자리에 착석했다. 기존 요일별 봉사자뿐 아니라 그림책, 역사책, 영어책 읽어주는 선생님들까지 해서 서른 명이 넘었다. 회의를 주관하는 총무님은 온화하면서도 카리스마가 넘쳤다. 늦게 가서인지 구석자리는 모두 찼고, 하필 맨 앞에 총무님과 마주 보면 앉게 되었다. 신입 봉사자답게 노트와 펜을 들고 열심히 받아 적을 준비를 했다.


먼저 요일별로 봉사자들의 인사가 있었다. 걱정과 달리 짤막한 소개에 안도했다. 나는 맨 마지막에 일어났고, 앞으로 열심히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우레와 같은 박수에 얼굴이 후끈 달아올랐다. 아마도 유일한 청일점을 격려하기 위한 선배들의 배려였다.


소개를 마치고 본격적으로 월례회가 시작되었는데, 불쑥 총무님이 나에게 물었다.


"실배 봉사자님, 혹시 여기 있는 책이 몇 권인지 아시나요?"

"네? 아.... 한 오천 권 정도 되지 않을까요. 잘 모르겠네요."

"호호. 틀렸어요. 만오천 권 정도 돼요. 원래는 이만 권이 넘었는데 작년 말에 정리를 좀 했지요. 거기다 회원은 천오백 명이 넘고요. 이렇게 작은 도서관인데 생각보다 많은 숫자죠."


정말 그랬다. 단층에 작은 구석에 위치한 동네 도서관이 이 정도일지 상상하지 못했다. 그 뒤로 총무님은 A4용지 빼곡히 적어온 내용을 공유했다. 작년 회계결산을 시작으로 올해 봉사자들이 맡은 개별 역할이 적힌 종이를 나누어 주었다. 그 안에 나는 문화행사 안에 이름이 들어가 있는 것이 아닌가.

"이미 실배 봉사자님이 작가님인 걸 모두 알고 있지요. 이번에 도서관에 희망도서로도 신청했습니다. 그래서 말인데요. 하반기에 지역 주민을 모시고 가족 독서모임 강의를 맡아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가능하지요?"


이룬. 카톡 프로필에 올렸던 책들을 본 것이 분명했다. 뜻하지 않은 제안이었지만 흔쾌히 하겠다고 했다. 어찌 보면 감사한 일이었다. 일종의 재능기부로 생각해 달라는 총무님의 말에 큰소리로 알겠다고 답했다. 그리곤 서가 정리 담당표도 공유했다. 책 정리는 공통사항이지만 담당 구역이 있어서 봉사 시간 틈틈이 맡은 곳을 정리해야 했다.

총무님의 '1인 1 역할'이란 선언처럼 모두가 기존 봉사 외에 별도로 맡은 임무가 있었다. 심지어 화분에 물 주는 담당도 있었다. 비록 자원봉사이지만 상당히 체계적이고 치밀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어서 도서관 방문 신청, 빔프로젝트 사용 신청, 희망도서 신청 등 필수적으로 알아야 되는 내용들을 전달받았다. 그 안에서 민원인을 대처하는 방법까지 세심하게 설명해 주었다.


중간에 궁금한 점은 주저 없이 물었고,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바로바로 제시했다. 나에겐 상당히 신선한 경험이었다. 일방적이 아닌 쌍방이 소통하는 분위기가 회의에서도 가능함을 눈앞에서 목도했다. 분위기가 화끈 달아올랐다. 말 그대로 자원봉사로 모인 사람들임에도 월급 받고 일하는 사람이상으로 도서관 발전에 열정적이었다. 그러면서도 웃음이 끊이지 않고, 밝고 맑았다. 진정한 의미의 회의를 처음 맛보았다.


1시간의 시간이 훌쩍 지나갔고, 마지막으로 총무님은 신규 봉사자들에게 소감을 물었다.


"실배 봉사자님, 월례회를 참여해 보니 어떤가요?"

"자원 봉사자로서 꼭 알아야 할 내용들을 배울 수 있어서 좋았고, 도서관 안에서 이렇게나 다양한 일들이 이루어지는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야 저도 진짜 자원 봉사자가 된 것 같습니다."


빈 말이 아닌 실제 그랬다. 단어나 문장으로 다 표현 못할 가슴 안에 차오르는 무언가가 있었다. 부끄럽지만 봉사 의식이 투철해서 지원한 것이 아님에도 이곳에서 봉사하면서 무언가 거대한 의미를 찾을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진짜 봉사자로서 시작은 이제부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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