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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배 Jan 22. 2024

소장분관과 수령분관 사이

마치 신입사원으로 돌아간 것처럼

긴장된 마음으로 도서관 문을 열었다. 으레 보았던 도서관 풍경이 펼쳐졌다. 구석에서 금방이라도 책 안으로 들어갈 듯 집중하는 고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두꺼운 뿔테 안경의 여학생, 도서관을 놀이터 삼아 좁은 책장 사이를 뛰어다니는 아이들, 새하얀 머리카락의 나이 지긋한 어르신까지 각양각색의 모습으로 공간을 빛내고 있었다.


크게 한숨을 쉬고, 안내 데스크로 향했다.


"책 빌리러 오셨어요?"


짙은 노란색 테두리가 알록달록한 안의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중년의 분이 사무적으로 물었다.


"아...... 아뇨. 오늘부터 자원봉사를 시작하는 실배라고 합니다."

"우와. 이분이 그분이시구나. 제가 도서관 봉사 10년째인데 남자분은 처음이에요. 반가워요. 호호호."


그 뒤로 우르르 몰려오는 선배 봉사자님들 사이에서 내 얼굴은 잘 익은 사과빛이 되었다. '어버버, 어리숙, 극적극적' 삼종세트로 어찌어찌 넘기던 중 나와 같은 시간대의 봉사자 두 분이 와서야 상황이 종료되었다. 휴, 내향적 성향은 이러 땐 더욱 짙어진다.


자리에 앉아 인사를 나누자마자 책을 빌리러 오는 사람, 반납하는 사람이 쉴 새 없이 오갔고, 난 그저 옆에 앉아 상황을 지켜보았다. 폭풍 같은 10여분이 지나고 나서야 물결은 잠잠해졌다. 공부하라고 준 책자를 읽고 있다가 한 분을 따라 책 정리에 나섰다.


"여기 100번대는 신간이고, 200번대는 청소년 문학이고, 300번대는 사회과학이고.... 400번대는..... 500번대는...."

구획마다 책 종류가 구분되어 있는 책장

마치 생활의 달인 속 주인공처럼 수학기호 보다도 복잡한 책의 라벨을 구별하여 제자리에 쏙쏙 넣는 모습에 입이 절로 벌어졌다. 선배의 말은 왼쪽 귀로 들어오자마자 바로 오른쪽으로 빠져나갔다. 한번 정리해 보라고 책을 서너 권 주었는데, 계속 버벅대며 오랜 시간이 걸려서야 겨우 마무리했다. 솔직히 제대로 꽂았는지도 모르겠다.


나름 회사에서 연식도 되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어떤 일이든 능숙하게 처리한다 자부했건만, 여기선 이제 갓 입사한 신입사원 마냥 한껏 쪼그라들었다. 책 정리를 마치고 자리에 앉자마자 교육이 시작되었다.


"이제 분관상호대차 소장분관과 수령분관에 대해서 배워볼게요."

"네?"

"쉽게 생각해서 저희 도서관에 있는 책을 다른 도서관에 보내는 걸 '소장분관'이라 생각하면 되고 저희 도서관에 없는 책을 다른 도서관에서 받는 걸 '수령분관'이라 이해하면 돼요. 그래도 다행인 건 저희는 마지막 타임이라 소장분관만 처리하면 돼요."

"아...."

"그럼 시스템에서 신청관리에서 소장분관을 클릭하고 조회한 다음에 책을 찾아야 해요. 제가 여기 리스트를 만들어 놓았으니 책을 찾아오세요."

배워야하는 내용이 담겨있는 책자

쑥 하고 내민 종이 안에는 책이름과 분류기호가 빼곡히 적혀있었다. 미지의 벌판에서 혼자 낑낑대고 있는데, 다행히 다른 봉사자 선생님이 도와주어 간신 후 모두 찾았다. 찾은 책이 시스템 기록과 일치하는지 일일이 대조해서 확인한 후 책마다 신청 도서관을 종이에 수기로 표기해서 붙인 후 보낼 책가방 안에 넣었다. 그리곤 다시 시스템에 접속해서 요청수락과 최종 발송을 하며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반납한 책을 원위치시킨 후에야 드디어 봉사가 종료되었다. '휴'하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뒷정리를 마치고 퇴실하려는데, 옆에 선생님이 잠시 불러 세웠다.


"아참, 다음 주에는 봉사 마치고 월례회의가 있을 거예요. 모든 봉사자가 모여서 도서관 중요한 안건에 관해서 의견을 나눌 예정이에요. 그리고 신규 자원봉사자 소개도 있을 테니깐 미리 준비하세요."


'월례회의?, 자기소개?'정말 산 넘어 산이구만.  것  참.

푹풍같은 시간 지난 후 평온한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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