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북토크에서 받은 질문이 뇌리에 박혀 떠나지 않았다. 책을 내고 내 삶이 변했냐 하면 '그렇다'와 '그렇지 않다'란 두 가지 모순적 답변을 할 수밖에 없을 듯하다. 책을 낸 후에 여전히 난 회사를 다니며 쏟아지는 업무를 처리하느라 바쁘고, 집에 선 사춘기를 이제 막 지나는 첫째와 돌입한 둘째 사이에서 냉가슴을 앓고, 사소한 일로 투닥거리다 화해를 반복하는 아내가 있다.
책을 내고 들어오는 엄청난 인세로 그저 글을 쓰는 것만으로도 먹고살 수 있을 정도가 된다는 건 몇 안 되는 유명 작가들의 이야기이다. 가족들과의 맛있는 식사와 그간 못한 선물을 하고 지인들에게 한턱 쏘고 나면 금세 사라져 버린다. 지금까지도 친구들 모임에 가면 인세가 얼마냐, 부자 되었겠다, 부럽다 등등 말을 하는데 이럴 땐 통장을 까보일 수도 없고 그저 "허허"하는 헛웃음만 짓고 만다.
출간이 경제적 이익으로 이어지지 않아도 그 자체만으로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애초에 돈을 버는 목적이 아니었기에 그 이상의 값어치를 다른 곳에서 발견한다. 그래서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한 번은 그 시작부터 끝까지를 꼭 해보았으면 좋겠다.
첫 출간은 글쓰기 합평회에서 선생님의 권유로 회원들과 공저로 두 편의 글을 골라 실었다. 글을 처음 써보고, 그 글들에 스스로 치유받고 힘을 얻으며 무섭도록 빠져들던 시절이었다. 며칠 씩 고민해서 글을 써가면 합평회를 통해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삶까지 나누었다. 그렇게 나온 글이 모여 '일상애쓰다'란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처음 글을 쓰면 그 안에 나의 모든 것을 담아낸다. 이 책이 그랬다. 온라인 서점을 통해 책이 판매되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그저 신기하기만 했지 출간을 했다는 것이 와닿진 않았다. 글이 모이면 책이 될 수 있구나를 알게 된 정도랄까.
그러다 브런치란 플랫폼을 알게 되었다. 처음 매거진에 '마흔의 웃픈 삶'이란 주제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썼던 글 중 반응이 괜찮아서 전략적으로 접근해 보자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10여 편 정도 발행을 했을 때 덜컥 출간 제안을 받았다. 몇 번의 메일이 오가고 드디어 편집자와 연락이 되었을 땐 '기쁨', '환희', '걱정', '두려움'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글을 쓰는 것보다 고치고 수정하는 퇴고의 과정이 훨씬 고통스럽다는 걸 그때 처음 깨달았다.
그래도 좋았던 건 편집자의 말을 통해 전해지는 '작가'란 호칭이었다. 전화통화를 하면 "작가님!"이라며 시작되는 첫마디가 몹시 쑥스러우면서도 마치 내가 진짜 작가가 된 거처럼 설렜었다. 그렇게 '로또에 당첨되어도 회사는 잘 다닐 거지란' 제목으로 첫 단독 출간을 하였다. 매일 온라인 서점에 들어가 지수를 확인하고, 어떻게든 알려야겠다는 마음에 서툴지만 홍보도 많이 했었다. 아내와 인근 서점에 가서 매대에 놓인 책을 보고는 울컥하기도 했다.
책을 내었다는 흥분도 잠시, 한동안은 글태기가 찾아와 한 글자 적는 것도 어려웠다. 그건 아마도 출간 이후 변함없는 일상의 영향도 있는 듯했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단독으로 출간했던 경험이 이후에 커다란 자영분이 되어 돌아왔다.
그 시기쯤 해서 독서모임을 함께 해왔던 회원들과 독서모임의 이로움을 널리 알리고픈 마음을 모아 '모든 것은 독서모임에서 시작되었다'란 책을 공저로 출간 계약을 맺었다. 두 가지 책을 동시에 작업하느라 정신없었지만 모두 의미 있는 일이었기에 포기할 수 없었다. 결국 한 달 간격으로 연달아 출간하게 되었다. 솔직히 이 책은 나에게 선물과도 같았다. 어릴 때부터 책을 참 좋아했지만, 한동안 멀리했다가 우연히 독서모임에 참여하게 되어 다시 책과 함께 하는 삶을 살게 된 경험의 기록은 출간을 넘어 내 정체성을 다시금 확인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1년이 지났다. 평소 친분이 있던 출판사 대표님이 가족 독서모임 글을 모아 출간하면 어떠냐는 제안을 해주셨다. 그 시기 일로 한창 바쁜 시기였지만 대표님은 출간 시기를 넉넉하게 1년 정도로 잡아 주셨다. 독서모임을 할 때마다 꾸준히 기록하였고, 언젠가는 한데 묶어 책으로 나왔으면 하는 소망이 있었는데 적절한 시기에 기회가 찾아왔다. 4년 간 해왔던 독서모임의 기록은 활짝 꽃을 피웠다. 독서모임의 구성하는 방법이라든지, 운영하면서 웃고 울었던 순간순간을 가감 없이 담았다. 솔직히 예쁘게 포장하고픈 유혹이 찾아오기도 했지만 대표님도 그렇고 나의 방향도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자였다.
책이 나오고 2년이 지난 지금, 난 꾸준히 독서모임 강의를 나가고 있다. 별다른 홍보 없이 신기하게도 연락이 다양한 통로를 통해 왔다. 무엇보다 책을 읽고 강의를 의뢰하게 되었단 말이 난 참 좋다. 그건 담은 내용이 그리고 방향이 틀리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반증이기 때문이다. 한 때 전문강사가 되고픈 꿈을 꾼 적이 있는데, 책을 출간한 덕분에 강의도 하고 가족 독서모임도 널리 알릴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책이 출간을 넘어 강의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았다.
그리고 작년 초에 브런치를 통해 깊이 교류하던 작가님이 '글쓰기를 통해 삶이 바뀐 경험'을 주제로 책을 내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해주었다. 그렇게 8명의 작가가 모였고, 그분이 직접 제안서를 작성해서 출판사 계약까지 확정해 주었다. 세편의 글만 실으면 되는 작업이었지만 만만치 않았다. 꼼꼼한 편집자를 만나 수없이 퇴고의 과정을 거쳤다. 글을 쓰며 외형적으로는 삶의 변화가 없었지만, 내면엔 거대한 회오리바람이 불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은 무엇보다 다른 작가님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어서 동질감도 느끼고 공감도 많이 되었다. 출판사에서 주관한 대형 북콘서트도 참여해 보는 경험도 가져 보았다.
작년 말에 버킷리스트에 출간을 넣었다. 어떤 책을 내겠다는 마음보다는 꾸준히 글을 쓰겠다는 일종의 다짐과도 같았다. 그러던 중 '라라크루'란 글쓰기 모임을 만났다. 한창 글태기도 있었던 차에 모임에 참여하면서 새로운 활력을 얻었다. 비슷한 결과 같은 방향을 보는 이들과의 만남은 글을 다시 쓰고픈 열망을 느끼게 해 주었다. 그때 모임 리더의 권유로 잔가지 프로젝트란 출간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로 인해 처음으로 투고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다행히 출판사와 계약을 하게 되었다. 사실 어느 매체에서 '사춘기와 갱년기'라 주제로 기사를 써 왔었다. 그 글을 그냥 묻어두기 아쉬운 마음이 있던 차에 시기적으로 딱 맞았다. 새롭게 글을 추가하느라 고생을 좀 했지만, 그 과정을 즐기는 나를 만나게 되었다. 이미 출간 후 구름을 걷는 듯한 기분은 사라지고, 그 자리는 다시 회색빛이지만 또 다른 글을 준비하는 건 보면 나도 참 그렇다. 글벗들과 함께 한 북토크는 평생 남을 추억이 되었다.
그 간 참 꾸준히도 글을 쓰고 책을 내왔다. 결국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건 출간에 목적을 두기보다 그저 쓰는 것이 즐거웠기 때문이다.
겉으로의 나의 삶은 그대로지만 '글을 쓰는 행위'가 있기에 그 어느 때보다 충만하다. 과거부터 나를 속박하던 외로움이란 존재는 글을 통해 자유로움을 찾았다. 나도 내가 앞으로 어떻게 나아갈지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글을 쓰고 있다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