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 위에 행복 한 스푼> 8화
우리 집에는 밥솥이 두 개 있다. 3~4인용 밥솥 하나와 1인용 밥솥 하나.
식구가 많아서가 아니다. 아빠가 원하는 밥과 엄마가 원하는 밥이 다르기 때문이다.
아빠는 현미를 듬뿍 넣은 밥을 좋아하고, 엄마는 콩과 팥, 불그스름한 잡곡이 들어간 밥을 즐긴다.
그래서 주로 3~4인용 밥솥은 아빠를 제외한 우리 가족이, 1인용 밥솥은 아빠가 쓴다.
밥솥이 두 개다 보니 밥을 짓는 사람도 둘이다. 예전엔 엄마가 두 가지 종류의 밥을 다 지었지만 어느 날 선언했다. 현미밥 짓는 것을 까먹은 엄마에게 아빠가 투정을 부린 뒤였다.
“당신이 먹을 건 이제 당신이 하쇼.”
너무나 확실한 선 긋기였다. 아빠는 이렇다 할 반박을 못 하고, 결국 1인용 밥솥에 스스로 밥을 지어 먹기 시작했다. 지금도 본가에 가면, 아빠가 애용하는 현미와 엄마가 좋아하는 잡곡이 나란히 놓여 있다.
아빠의 취향을 찾아 볼 수 있는 곳은 밥 말고도 또 있다. 그건 바로 아빠가 좋아하는 반찬들이다. 집에 반찬이 부족한 것도 아닌데, 아빠는 좋아하는 건 직접 해먹는 쪽을 택했다. 수육은 물론이고, 낚시를 다녀온 뒤엔 직접 잡은 생선으로 매운탕을 끓인다. 엄마가 몸이 안 좋을 때는 괴상한 죽을 만들어 놓기도 한다. 나름대로 정성을 들였지만, 솔직히 내 입맛엔 그저 그런 것들이 많았다.
아빠의 트레이드마크를 하나 꼽으라면, '가자미식해'를 이야기할 수 있다. 아빠 덕분에 처음 알게 된 음식이다. 가자미에 갖은 양념을 더하고 숙성시킨 음식. 얼핏 보면 김치나 무생채 같은 비주얼의 음식이다. 이 음식은 주로 강원도 지역에서 먹는 음식이라고 하는데, 강원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아빠에게는 추억의 맛인 셈이다.
추억의 음식인 가자미식해를 반찬 가게에서 찾아 몇 번 사 먹던 아빠는 이내 직접 도전해보기로 마음먹는다.
좁쌀과 무, 가자미, 각종 야채를 준비하고 '판을 벌린'(엄마의 표현이다) 아빠는 외할머니에게 도움을 청한다. 강원도가 고향인 외할머니는 아빠와 같은 동네에 살았더랬다. 잘 나가는 집안의 성실한 아들(할머니의 표현이다)인 아빠를 자신의 딸에게 소개시킨 것도 바로 외할머니였다.
할머니의 조언을 받은 아빠는 본격적으로 음식 준비에 들어간다. 바닥엔 젓갈과 각종 양념과 생선, 온갖 재료들이 흩뿌려진다. 그 광경을 본 '깔끔쟁이' 엄마는 인상을 쓰고 자리를 뜬다. 아빠는 그 모습을 모른 척, 묵묵히 손을 놀린다. 오랫동안 엄마와 함께 살며 터득한 아빠의 노하우다.
몇 번의 통화 끝에 가자미식해는 마침내 완성된다. 아빠는 잘 버무려진 식해를 김치통에 담아 소중히 안고, 김치냉장고에 넣는다. 얼굴에는 뿌듯함이 가득하다. 바닥에 떨어진 식재료들을 주워담고, 바닥을 행주로 슥 훑으며 정리를 시작하지만, 아빠의 뒷처리 실력을 전혀 믿지 못하는 엄마가 한 마디 한다.
“어휴, 어지르는 사람 따로 있고 치우는 사람 따로 있제이… 비키봐라.”
아빠는 또 그 특유의 노하우를 발휘해 그 말을 들은 체 만체 하며 자리에서 슥 물러난다.
그로부터 일주일쯤 지나면, 식탁 위에 불그스름한 가자미식해가 오른다. 아빠가 비닐장갑을 끼고 조심스레 건져올린 것들이다. 인고의 시간을 거쳐 식탁에 올랐지만 솔직히 비주얼은 예쁘지 않다. 노란 좁쌀이 덕지덕지 붙은 그 음식에 젓가락이 쉽게 가지 않는다. 아빠가 맛만 보라며 밥 위에 한 점씩 올려주고 나서야, 우리는 맛을 본다.
생긴 건 좀 이상하지만 맛은 좋다. 부드러운 가자미살에 단맛과 새콤한 맛이 어우러진다. 가자미가 낯설면, 양념에 절인 무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맛이다.
처음엔 우리 식탁에서 ‘무명가수’ 같던 가자미식해는 시간이 지나면서 팬층을 넓혀갔다. 식해의 활약을 기대하는 '러브콜'도 많아졌다. 아빠는 기대에 부응하듯 꾸준히 새 앨범(?)을 발매했다. 요리사이자 제작자인 아빠의 뿌듯함은 말할 것도 없다.
지금도 명절에 본가를 찾으면 아빠는 가자미식해를 꺼낸다. 서울에 사는 형은 이미 그 맛에 매료돼 몇 번이나 택배를 요청했다. 나는 본가에 갈 때 가끔 맛보는 정도로 팬심을 유지한다.
아빠의 도전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는 오이소박이 같은 다른 반찬들도 만들기 시작했다. 명절을 맞아 온 가족이 모일 때면 어김없이 묻는다.
“좀 가져갈래?”
아빠의 영향 덕인지, 나도 무엇인가를 만드는 것이 어색하지 않다. 맛있는 걸 만들고, 그것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먹는 일에 즐거움을 느낀다. 또 그 과정 자체가 소중하다는 걸 안다. 맛이 있든 없든, 무엇인가를 나누는 경험이, 그 마음이 값지다.
나는 바란다. 가자미식해가 우리의 식탁에서 앵콜을 받는 날이 더 많이 찾아오길. 다른 신인 그룹들이 데뷔하길. 나도 그런 사람이 될 수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