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머니의 순대트럭

<식탁 위에 행복 한 스푼> 9화

by 스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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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과 목요일이면 기다려지는 사람이 있다. 택배 아저씨도, 친구도 아니다.
바로 집 앞 골목에 찾아오는 순대트럭 아주머니다.


작은 트럭 위에는 ‘순대마당’이라는 간판이 걸려 있다. 옆에는 조그마한 간이의자와 거대한 가마솥이 보인다. 가마솥 나무 뚜껑 아래서는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가까이 다가가면 뜨거운 수증기가 얼굴을 덮칠 것 같다.


아주머니는 늘 한쪽 귀에 하얀 무선 이어폰을 끼고 작은 선풍기에 의지한 채 자리를 지킨다. 불볕더위가 가시지 않은 날에도 꿋꿋이.


순대를 주문하면, 아주머니는 가마솥 뚜껑을 열어 김이 폴폴 나는 순대를 꺼낸다. 잘 갈린 큼지막한 칼이 순대를 슥슥 썰어내는 소리가 경쾌하다. 칼을 쥔 아주머니의 손길에는 망설임이 없다.


“내장 좋아해요?”

순대를 썰던 아주머니가 묻는다. 중국이나 북한 쪽 사투리가 살짝 섞인 말투다. 좋아하는 부위까지 친절하게 물어봐 주고, 기다림이 길지면 순대 한 조각을 댕강 썰어 내고는 맛보라며 건넨다.


그녀의 섬세함은 도마에서 드러난다. 평범해 보이는 나무도마는 수많은 순대를 거치면서도 언제나 깨끗하다. 순대를 썰면서도 도마 위를 수시로 닦는 모습에서, 순대가 어떻게 관리되는지 짐작할 수 있다.


포장 용기는 언제나 가득 찬다. 인심이 얼마나 넉넉한지 고무줄로 묶지 않으면 뚜껑이 닫히지 않을 정도로 순대를 쌓아준다. 맞춤 서비스에 인심까지 좋은 이 푸드트럭을 싫어하기란 어렵다. 그래서인지 트럭 앞은 늘 사람들의 발길로 붐빈다. 하나같이 들뜬 표정이다.


아주머니표 순대는 특유의 잡내가 없다. 일반 분식집이나 마트 순대와 비교하면 그 차이가 확연하다. 쫄깃한 식감도 다른 순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집에 돌아와 순대를 한 점 베어 물면 절로 행복해진다. 양이 얼마나 많은지 혼자서는 도저히 다 먹지 못한다. 8천 원 어치면 두세 번은 먹을 수 있다.


남은 순대는 냉장고에 고이 둔다. 먹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순대볶음을 만들기로 한다.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는 것보다 새로 요리해 먹는 편이 이 순대에 대한 예의처럼 느껴진다.


순대볶음은 어남선생 레시피를 따른다. 핵심은 양파를 캐러멜라이징하는 것. 대파와 양파를 볶아 갈색이 돌면 간장, 고추장, 고춧가루, 물을 넣고 양배추와 함께 볶는다. 야채의 숨이 죽으면 잘라둔 순대를 넣고, 깻잎도 잘라 함께 볶는다. 파릇한 깻잎이 순대에 향을 입히고, 그 향이 잘 볶은 양파와 어우러지면 달큰한 순대볶음이 완성된다.


순대볶음을 한 입 먹으면, 놀랍게도 처음 순대를 샀던 그 맛이 느껴진다. 전자레인지로는 절대 되살릴 수 없는 맛이다. 차가워진 순대는 따뜻한 순대볶음으로 환생한다. 그 본연의 맛을 그대로 유지한 채로. 가마솥에서 갓 꺼낸 것이 아니어도 잡내가 전혀 없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 맛있게 완성된 순대볶음을 먹으며, 그 공을 순대 아주머니에게 돌린다.


사실 나는 순대볶음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학교 급식실에서 접하던 순대볶음은 늘 별로였다. 빨갛게 범벅된 양념은 짜고 맵기만 했고, 순대는 찰기 없이 퍽퍽했다. 야채는 본연의 식감과 맛을 잃은 지 오래였다. 대량 조리의 한계일 수 있겠지만, ‘맛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아주머니의 순대로 만든 순대볶음은 달랐다. 재료에 이야기가 담기자 음식의 맛도 살아났다. 좋아하는 부위를 물어봐 주는 친절, 기다리는 손님에게 건네는 한 조각의 배려가 순대 안에 스며 있었다. 그 정성이 담겨서인지 다른 재료와 섞여도 순대는 본연의 맛을 잃지 않았다. 내가 순대볶음을 좋아하게 된 데에는 아주머니의 몫이 크다.


음식의 맛 중에는 이야기가 주는 맛도 있다. 음식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알고 먹는 것과 모르고 먹는 것은 천지 차이다. 누가 만들었는지, 어떤 마음으로 만들었는지, 그리고 누구와 나누었는지에 따라 그 음식은 전혀 다른 의미를 띤다.


그릇을 비우며 문득 재미난 생각이 스쳤다. 언제, 어디서든 제 맛을 잃지 않는 ‘바른 순대’처럼 살고 싶다고. 나라는 사람이 고스란히 담긴 요리를 하고 싶다고. 아주머니는 한 끼의 음식이 어떻게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 기억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어남선생 순대볶음 레시피


1)재료 손질

순대는 한입 크기로 썰고 채소(양파, 대파, 양배추, 깻잎)는 먹기 좋은 크기로 큼직하게 썰어 준비

2)양파, 대파 캐러멜라이징

강불에 마른 팬에서 양파와 대파를 2~3분 볶아 수분을 날린다.

3)양념 시작

식용유 3바퀴 두른 뒤, 소금 3꼬집과 설탕 1T 넣고 중불에서 2~3분 볶는다.

4)간장 넣기

팬 한쪽에 재료를 몰고 빈 곳에 진간장 4T를 넣어 보글보글 끓인 뒤 섞는다(간장을 많이 넣지 않도록 주의).

5)고추기름 만들기

약불로 줄이고 고추장 1T, 고춧가루 3T 넣고 잘 볶아서 고추기름을 만든다(고춧가루가 타지 않게).

6)수분 추가 및 야채 볶기

물 100ml와 양배추를 넣고 양배추 숨이 죽을 때까지 볶는다.

7)순대 넣기

썰어둔 순대 투입, 중불에서 양념이 잘 스며들게 볶는다.

8)마무리

깻잎, 참기름(0.5T), 후추를 넉넉히 뿌려 향을 살리고, 불을 끈 다음 잔열로 숨을 살짝 죽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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