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홀 지워서 통화도 못 눌러

by 리정



살아있다는 것을 너로 인해 깨닫는다.

일상을 파고드는 너의 작은 기억들 때문에

나는 온종일 신경이 날카롭게 곤두서있다.


나를 설레게 했던 목소리는 그리움이 되었고

그 발신자의 이름은 오래도록 통화목록 부재중이다.


나는 그곳의 주소를 알고 있지만.

너의 문은 열리지 않을 것이다.


마음에도 없던 말들로 우리의 마음은 갈라져 버렸다

기다리기 지쳐 이렇게 해 버리면

너에게로 달려가기만 하는 마음을

쉬이 접을 수 있을 줄 알았던 치기 어린 자존심.

아 나는 여태껏 어른인 척하는 사춘기였던가.

버릴 수 있을 줄 알았으나

여전히 그것을 붙들고 있는 나는,

모든 감정이 침전물처럼 가라앉은 이 와중에도

너에 대한 미련만은 선연하게 날이 곤두서있다.


신경이 날카로운 시절.

나는 살아있다는 것을 너로 인해

이렇게 또 깨닫는 밤.




분명 당신이 맡겼던 마음인데

내 아량의 평수라는 것이

본디 비좁고 시간이 흐를수록

새로 들어앉는 것들이 늘어만 가니

당신이 가져가 놓은 맘은 저만치

구석에 처박혀 간다.


그러니 어서 찾아가시게 아무 일 없던 것처럼.

들여다뵈지 않는 주인 탓에 그 예뻤던 맘은

짐이 되고 허연 먼지 더미까지 쌓인다면

난 조금 많이 쓸쓸할 테니.




keyword
이전 09화서로를 가장 잘 아는 남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