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하시고, 균형 있는 음식 섭취하시고, 잠은 충분히 주무세요” 어른이 되어서 병원에 가면, 의사선생님에게 꼭 듣는 말이다. 우리 신체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요소는 운동과 건강한 식단, 그리고 휴식. 결국 이게 전부이기 때문이다. 모든 생물은 에너지원을 섭취하고, 섭취한 에너지원을 활용해서 활동한다. 만약 활동하고 남은 에너지가 있다면 그것은 나중을 위해 축적하기도 한다. 생물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원이 바닥나기 전에 다시 에너지원을 섭취하고, 그렇게 섭취한 에너지원을 활용해서 다시 활동한다. 이 과정은 생물이 태어난 직후부터 죽을 때까지 계속 반복된다. 그래서 신체 건강은 운동과 식사, 휴식만 이야기하는 것이다. 알고 있지만 실천하지 않는 것은 실제로 아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앎은 실천으로 완성된다.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내몸을 움직이며 건강한 식사를 하게 되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우리의 몸은 단순히 신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어렵게 데카르트의 심신 이원론(육체와 정신은 따로 구분되어 있다는 주장)을 반박할 필요 없이 통증을 호소하는 사람을 알아보면 된다. 이 남자는 왼쪽 팔이 저려서 외과를 찾아갔지만, 어느 병원에서도 팔 저림 현상을 해결하지 못했다. 오히려 환자를 마주한 외과외사들은 하나 같이 그에게 감각이 느껴지는지 물어봤고, 그럴수록 남자는 더욱 답답해졌다. 외과에서는 도저히 해결책을 찾을 수 없게 되어 소개를 받아 정신과로 갔다. 정신과 의사는 그가 원하는 왼쪽 팔의 저림을 해결해주었다. 어떻게 외과 처방이 필요한 문제를, 외과에서는 해결하지 못하고 정신과에서 해결한 것일까? 놀랍게도 이 남자는 수 년 전, 사고로 왼쪽 팔을 절단해야만 했다. 그렇다. 그는 눈에 보이지 않고, 존재하지도 않는 왼쪽 팔이 저린 것이었다. 그래서 외과 의사들은 이 환자를 보고서 눈이 휘둥그레졌고, 정신과 의사가 그의 고통을 해결해줄 수 있던 것이다. 이처럼 육체와 정신은 서로 이어져 있고, 상호보완하면서 나라는 사람을 지탱하고 있는 것이지 않을까?
오늘 하루 동안 나는 어떤 장소에 있었는지 떠올려보자. 학교를 갔다가 집에 온 다음 학원을 다녀왔을 수도 있고, 직장으로 출근하고 점심 식사와 티타임을 한 다음 다시 일터에서 일을 한 뒤 퇴근해서 집에 왔을 수도 있다. 중간에 떡볶이를 사먹으러 가게에 갈 수도 있고, 집에서 요리를 하기 위해 마트에 들릴 수도 있다. 이처럼 우리는 각자의 목적에 따라 다양한 장소에서 해야할 일을 한다. 그런데, 만약 내가 갈 수 있는 곳이 하나씩 줄어들어서 아예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면 어떨까? 그런 일이 가능한지 직접 겪은 한 영국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벨라 마키가 처음부터 집에만 있던 것은 아니다. 갑자기 찾아온 불안증세가 심해져서 광장공포증을 겪었고, 공황발작, 침투적 사고(의지와 상관없이 자꾸 떠오르는 생각), 히스테리, 우울감에 시달렸다. 혼자만 아는 괴로움에 몸부림을 치며 미친듯이 울고 몇 시간씩 침대에 누워 있었다. 몇 날 며칠 잠만 자기도 했다. 그야말로 희망을 모두 잃어버린 상태였다. 그녀 나름대로 불안에 대한 대처법은 있었다. 문제는 그것이 일시적으로는 위안이 될지 몰라도 결국 쓸모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녀의 대처법 중 하나는 공황발작을 겪었던 곳에는 얼씬거리지도 않는 것이었다. 그녀 스스로는 이 대처법이 또다시 같은 일을 겪어도 되지 않으므로 현명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집 근처 번화가와 공원, 상점을 포함해 사실상 도시 전역에서 그녀가 갈 수 있는 곳이 사라졌다. 혼자서는 마트조차 갈 수 없는 사람과 누가 결혼생활을 지속할까? 마키는 남편과 결혼한 지 1년도 지나지 않아서 이혼에 이르게 된다. 희망은 온데간데 없고, 절망만이 남은 상황. 아무 것도 없는 그 상황에서 마키는 달리기 시작했다.
3분, 그녀의 첫 달리기 시간이다. 달리기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걷다가 뛰기를 반복했지만, 그래도 그녀는 달렸다. 왜 지금 달리기를 하는지, 앞으로 어떤 모습이 되고 싶은지 모른 채 그냥 달렸다. 그렇게 일주일, 한달을 넘어 두 달을 달렸다. 두 가지 사실이 그녀의 달리기 생활을 지탱했다. 먼저는 달리는 동안에는 별로 슬프지 않다는 것이다. 적어도 그 시간에는 울지 않았고, 돌싱이 된 자신에 대한 비하나 전남편에 대한 궁금증이 들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달릴 만 했다. 그리고, 달리는 동안에는 별로 불안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녀 자신이 갈 수 없는 곳으로 정해놓은 구역을 달리는 것도 가능했다. 그녀는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망가뜨린 불안을 달리기로 극복하고 있었다. 2018년, 그녀는 5년째 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마키는 지금도 달린다.
신체적 건강에 있어서 음식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현대인에게 빼놓을 수 없는 일과 중 하나는 다이어트다. 많은 사람들이 효과적으로 살을 빼는 방법을 찾아 다양한 방식을 시도한다. 최근에는 비만 치료제가 개발되어 각광받고 있지만, 그 역시 약을 먹는 시기에만 효과가 있다는 평이 많다. 다이어트 방식은 정말 수 백 가지에 달한다. 한 때 유행했던 것만 보더라도, 황제 다이어트, 원푸드 다이어트, 저탄고지 다이어트, 키토 다이어트 등 굉장히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왜 한 두 가지로 정리되지 않고 여러 가지 방법이 있는 것일까? 아마 다이어트에는 정답이 없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은 분명하다. “정크푸드를 많이 먹는 젊은 청년은 그렇게 먹어도 괜찮을까? 그 대답이 그리 반갑지는 못하다.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의 생물학자 나지프 알릭이 2017년에 수행한 연구를 보면 3주간 고설탕 식단을 먹인 어린 파리의 수명이 7퍼센트 정도 단축되었다. 안타깝게도 자당 성분이 많이 든 식단을 건강에 좋은 식단으로 바꾸고 난 후에도 수명은 줄었다. 그렇다. 젊을 때 설탕을 많이 먹은 파리는 성체가 되어 올바른 식습관으로 바꿔도 이른 나이에 사망한다. 인디애나 의과대학 교수인 빌 설리번은 책 <나를 나답게 만드는 것들>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런 연구들은 과도한 설탕 섭취가 노화를 가속시켜 말 그대로 달콤하지만 짧은 인생이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설탕 외에도 우리 삶을 병들게 하는 요소는 또 있다. 다이어트 과학자 최겸은 <다이어트 사이언스 2022>에서 밀가루, 나쁜 기름, 튀긴 음식을 같이 이야기한다. 이런 음식들은 우리 몸이 더 많은 에너지를 지방으로 축적하게 만든다.
같은 책에서 최겸은 해야할 행동으로 시간 제한 섭취와 30시간 이상의 단식을 제안한다. 시간 제한 섭취는 우리가 흔히 ‘간헐적 단식’이라고 알고 있는 방법으로 16시간에서 18시간 동안 물을 제외한 식음료를 먹지 않는 것이다. 12시에 점심을 먹고, 6~8시 사이에 저녁을 먹는 것 외에는 별도의 칼로리를 섭취하지 않는 것이다. 30시간 이상의 단식은 물과 소금 외에 아무 것도 먹지 않으면서 장을 깨끗하게 비우는 것이다. 몸이 건강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어느 정도 건강해졌다면 세 달에 한 번 정도로 하면 된다.
실제로 나는 이 다이어트 방법으로 8주 동안 8kg가 빠지는 것을 경험했다. 몸은 전보다 더 건강했고 가벼워졌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최소한 내 몸을 망치는 음식을 먹지 않는 것은 다이어트만이 아니라 건강을 위해 좋은 방법이다.
마지막으로, 사람들은 자신만의 수면 패턴에 맞게 충분히 자야 한다. 인류는 19세기에 전기와 조명을 발명하게 되면서 활동 시간이 더욱 늘어났다. 이전에는 밤이 되면 어두운 호롱불이나 촛불에 의지해야 했지만, 지금은 낮처럼 밝은 밤을 보낼 수 있다. 그로 인해 더 많은 시간을 공부하거나 일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짧게 자도 괜찮은 사람들에게는 큰 축복이지만, 길게 자야 하는 사람들은 게으른 사람으로 낙인 찍히는 일이었다. 지금은 거의 통용되지 않지만, 내가 공부하던 시기에만 하더라도 사당오락이라는 말이 있었다. 4시간 자면 붙고, 5시간 자면 떨어진다는 의미였다. 나도 고등학교 때 새벽 2~3시까지 공부하고, 아침 7시에 일어나서 학교를 가는 생활을 했다. 이런 삶의 방식이 몸에 맞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는 법이다. 참고로, 스탠퍼드 대학교 수면연구소의 연구에 의하면, 적정한 수면 시간은 평균적으로 7시간 20분이라고 한다. 사람에 따라 조금 더 자야 하는 사람도 있고, 덜 자도 되는 사람이 있다. 앞서 내가 고등학교 때 4~5시간을 잤다고 했기에 나를 짧게 자도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사실 나는 8시간을 자야만 한다. 부족한 잠은 못 잔 만큼 부채로 쌓인다. 수업시간에 자는 것도 한계가 있어서 주말 내내 10시간씩 잠을 몰아서 잤다. 문제는 한 번 쌓인 수면 부채가 이후에 잠을 몰아서 잔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내 몸에 나도 모르는 빚이 계속 쌓이다가 나중에 결국 터지고 만다.
나에게 맞는 수면시간이 어느 정도인지 알아보는 방법이 있다. 전제 조건은 아침에 일어나야 하는 시간을 고정하지 않는 상황이다. 가급적이면 3주, 적어도 2주는 확인해야 한다. 먼저 늦게 자는 사람이든, 일찍 자는 사람이든 밤에 잠에 든다. 아침에 자연스럽게 눈을 뜨면서 일어난다. 잠이 부족하다 싶으면 더 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스스로가 느꼈을 때, 충분히 잤다고 생각되는 시간에 일어나는 것이다. 처음에는 8시간을 잘 수도 있고, 6시간만 잘 수도 있다. 며칠이 지나면서 서서히 본인만의 패턴이 만들어 질 것이다. 자신의 수면 시간을 알았다고 하면, 이제 아침에 일어나야 하는 시간을 역으로 계산해서 자야 하는 시간을 설정하면 된다.
충분한 숙면을 취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지 않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잠들기 30분 이전부터 전자 기기를 보지 않는 것이다. 인간은 낮에 활동하고 밤에 잠을 잔다. 낮에 활동할 수 있는 이유는 밝기 때문이지만, 그 안을 조금 들여다 보면 특별한 빛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흔히 블루라이트라고 부르는 파란색 계열의 가시광선이 바로 그것이다. 블루라이트는 사람의 시신경에 ‘지금은 움직여야 하는 시간이야’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래서 우리는 낮에는 잠을 자지 않고, 활력 있게 움직인다. 이런 블루라이트는 우리가 사용하는 핸드폰이나 tv, 모니터에서도 뿜어져 나온다. 잠들기 전에 이런 전자 기기를 본다면, 우리 시신경은 지금이 활발하게 움직여야 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핸드폰을 보면 잠이 오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또한 최소한 2시간 이전에는 격한 운동을 하지 말아야 한다. 몸을 움직이는 것도 잠을 자는데 방해가 된다. 달리기나 근력 운동을 하게 되면, 뇌는 지금이 움직여야 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 긴장 상태는 곧바로 해소되지 않기 때문에 12시에 자야 하는 사람이라면, 가급적 8~9시에 운동을 하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