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갑자기 흰수염

좀.


서른을 넘기니 집이 눈에 들어왔다. 어디에 사는지, 몇 평인지 중요하지 않았었다. 내 주위 대다수가 독립해 전세, 월세를 전전하며 사회생활만 하던 이들이었다. 옷 몇 가지, 가재도구 몇 개와 침대 하나 들어갈 크기면 충분했다. 연인과 함께 잠을 자도, 지방에서 어머니가 올라와 하루 머물다 가도 넉넉하진 않았으나 좁지도 않은 크기에서 다들 살았다. 어느덧 통과의례가 아닌 게 되었지만 여전히 뚜렷하게 남아있는 결혼이라는 문턱을 다들 덜컥 덜컥 넘어갔다. 넘어간 자들은 내생에 첫 전세자금 대출을 받거나 신혼부부대출론을 통해 살 집을 구했다. 연인 시절, 작은 방 한 칸에도 사랑을 속삭였던 그들이었지만 법적으로도 공식적으로도 함께 살기를 약속한 그들에게 거주 지역과 평 수는 주요 고려대상이 됐다. 부동산은 한번 싹 무너져야 젊은이들이 집 걱정 없이 살 수 있다고 외쳤던 한 친구는 있는 여력 없는 능력 다 끌어모아 12억짜리 집을 샀다. 6개월 만에 5000만 원이 올랐느니 1년 새 2억 가까이 뛰었다느니 하는 이야기가 나에게는 바뀌어야 될 세상의 이유였지만 그들에게는 반드시 뛰어들어야 하는 세상이 됐다. 100세 시대에 들어섰지만 100세 삶을 보장하지 못하는 사회와 직장 덕에 젊은 부부, 노부부 할 것 없이 노후 대비를 위해서는 갖고만 있어도 오르는 집을 찾아야만 하는 것 같았다. 환경과 능력에 따라 임신을 하는 것도 엄청난 축복이 되는 시대에 젊은 부부는 만나지 못한 생명을 위해서도 눈에 불을 켜고 부동산을 주시했다.

서울에 직장이 있고 수도권에 부모가 살고 있는 나는 점점 밖으로 밀려나는 축에 속해 있었다. 그나마 집을 소유한 부모는 돈 없으면 나가라는 듯 밀려오는 파도를 견뎌낼 수 있었지만 ‘이제는 집 같은 곳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긴 나는 그 파도를 타고 끊임없이 밖으로 밖으로 밀려나가고 있었다. 월급으론 꿈도 못 꾸고 결혼도 하지 않아 신혼부부 혜택도 없는 내가 애당초 서울에 누울 자리 찾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사실 서울을 좋아하지도 않았기에 파도에 쓸려나가는 처지지만 마음은 울렁거리지 않았다. 파도가 끝나갈 때쯤 도착한 지역은 서울 통근 왕복 3시간. 시간과 거리에 비례해 밟을 땅과 하늘을 가릴 나무가 많아졌다. 사람 살기 좋으나 사람이 살기에 불편한 동네랄까.

한동안 편히 살았다. 사람과 멀어서 좋았고 콘크리트에서 도무지 벗어날 수 없는 서울과 달리 문밖만 나서도 쉬이 불어오는 산바람과 비 내리면 짙은 흙냄새 나는 곳이라서 좋았다. 한 3년이나 그렇게 살았을까. 점차 낯선 느낌의 동네가 이상스러웠다. 매일 걷던 길인데 나무도 그대로인 것 같은데 기분이 좋지 않았다. 차를 타고 서울에서 집으로 오던 길에 이유를 발견했다. 사람이 산을 좀먹고 있었다. 사람이 땅을 갉아먹으며 집을 짓고 있었다. 광역버스도 생기고 광역 급행 지하철도 들어서니 어느덧 내가 머무는 동네는 파도의 종착지가 아니라 시작점이 되려는 시도를 하고 있었다.

‘서울 인근의 한적한 동네서 전원의 삶을 보내세요.’, ‘강남까지 40분! 이곳에 투자해 대박 나세요.’

쌓여가는 돈이 되는 집이냐, 어제오늘 같은 산이 거기 있어서 별생각 없이 지내다 보니 걸어 오를 산이 사라지는 집이 되느냐의 차이는 어디에 있나. 제각각의 모습으로 자신을 뽐내며 사람을 유혹하는 집들이 산 밑에서 정상까지 차고 차곡 들어선다. 첫 집은 대로변과 가까워 교통이 용이한 장점으로 제 이름의 ‘은행돈’을 끌어모을 것이고 끝집은 창문 열면 들어오는 산바람과 전망을 과시하며 또 다른 이름 앞으로의 ‘은행돈’을 강요할 것이다. 산 밑부터 차곡차곡 돈이 쌓일수록 산은 사라진다. 검고 희고 붉고 차가운 점들은 산이 있던 자리에 들어차고 산은 갈수록 흉물스러워진다. 좀먹을 땅이 없어 좀먹은 땅을 나누고 나눠 올리고 올려서 결국 사람 마음도 좀먹은 서울의 기운이 여기까지 퍼진다. 집으로 산을 이룬 이 동네가 누군가의 눈에 ‘저 산동네 싹 다 밀고 아파트 세우면 더 많이 살 수 있는 곳’으로 바뀔 날이 얼마 남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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