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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랄라라 Nov 04. 2020

범종 위에 여의주를 물고 있는 저 용은 용이 아니다

고래를 무서워한 용 이야기 - 천흥사 동종 

용은 9마리의 동물이 합해진 것?


서양에서 용은 불을 내뿜으며 인간을 잡아먹거나 괴롭히는 나쁜 편이다. 그래서 이야기를 보면 용은 착하고 예쁜 공주를 납치해가고, 잘생기고 착한 용사가 나타나 용을 물리치고 공주를 구출한다. 하지만 동양에서의 용은 비를 다스리면서 농사를 짓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신적인 존재이다. 이런 동양의 용은 모든 것이 완벽하다. 용은 흔히 아홉 개의 동물이 합쳐진 동물이라고 한다. 아래 사진을 보면 여러 동물이 합쳐진 상상력의 동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림에서도 알 수 있은 아홉 마리의 동물이 아니라 11마리의 동물이 합쳐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용을 표현한 다른 그림을 찾아보면 10마리의 동물이 합쳐져 있기도 하고 13마리의 동물이 합쳐져 있기도 하다. 왜 그런 것일까?

그것은 동양에서 9라는 숫자의 의미를 알아야 한다. 동양에서 9라는 숫자는 단순히 8에서 1이 더해진 숫자가 아닌 더 이상 높을 수 없는 수, 더 이상 많아질 수 없는 큰 수를 의미한다. 태권도나 유도, 바둑 등에서 9단이 끝인 이유는 9단이 더 이상 오를 수 없는 아주 높은 경지임을 나타낸다. 전통음식 구절판은 9개의 음식을 담은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많은 음식을 담은 음식을 말한다. 즉 용이 아홉 마리의 동물을 합쳤다는 것은 이 세상 모든 동물들을 담고 있다는 뜻이다. 용이 임금이나 황제를 상징하고, 그래서 황제를 상징하는 숫자 역시 9가 된다. 명청의 황궁이었던 자금성의 정문에는 9*9개의 구슬이 박혀있어 이 곳이 황제가 머무는 곳임을 상징한다.    


용에게는 아홉 아들이 있었다고 한다.


용에게는 아홉 아들이 있었다고 한다. 아홉이라고 하면 이제 느낌이 올 것이다. 많은 아들이 있었다는 이야기다. 이 아홉 아들은 각 그 모습과 성격이 달랐다고 한다. 그 성격 때문에 각자 하는 일이 다르다. 용은 오랜 시간 도를 닦아 깨달음을 가지면 여의주를 얻어 진정한 용이 된다. 그런데, 용의 이 아홉 아들은 아직 깨달음을 얻지 못해 성룡 즉 진정한 어른이 되지 못했다. 

예를 들면 첫 번째 아들의 이름은 비희라고 한다. 비희가 용이 되지 못한 이유는 힘자랑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힘이 세서 다른 동물들에게 힘자랑을 자주 하다 보니 깨달음을 얻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비희에게 아무 무거운 비석을 얹어놓았다. 비석을 등에 얹고 있는 이 거북이처럼 생긴 이 동물은 거북이가 아니라 비희라는 용의 첫째 아들인 것이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원랑선사탑비

일곱 번째 아들의 이름은 애자이다. 애자는 싸우는 것을 좋아하고 피를 좋아한다. 그래서 칼날에 새기거나 칼의 손잡이에 애자로 만든다. 칼에 새겨진 용이 바로 일곱 번째 아들 애자이다. 관우의 청룡언월도에 새겨진 용도 애자이다.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칼/ 손잡이 고리에 용이 조각되어 있다.
고래를 무서워한 포뢰


우리가 이야기할 용은 셋째 아들 포뢰이다. 포뢰는 범종 위에 조각되어 있다. 왜 종위에 셋째 아들 포뢰를 조각한 것일까? 포뢰는 목소리가 아주 커서 고함지르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그래서 범종 위에 조각해서 이 종소리가 크게 멀리 퍼져나가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포뢰가 고래를 무서워했다는 것이다. 완전함을 가진 진정한 용이 되기 전 부족한 게 이것저것 많았나 보다. 그래서 종을 치는 막대기를 고래뼈 모양으로 만들거나 고래 모양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상상해보라. 종을 치는 고래 모양의 막대기가 다가오자 포뢰는 종위에서 너무 무서워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는 것이다. 오지 마! 으악! 무서워! 아파! 그리고 종소리는 아주 큰 소리로 멀리멀리 나아가는 것이다.        

수덕사 종과 종을 치는 고래모양의 당

용생구자 즉 용이 아홉 아들이 있다는 내용은 중국의 진주선이라는 책에 실려 있다.  문화를 읽기 위해서는 알아야 할 기본 지식들이 있다. 모르고 보는 것보다 알면 훨씬 더 보이고 재미있다.     

천흥사 동종의 포뢰
지옥까지 울리는 범종의 소리


범종은 온 세상의 고통받는 중생을 그 소리로 구제하는 중요한 의식 도구이며, 그 소리는 지옥까지 전해져 지옥에서 벌을 받고 있는 사람들도 깨달음을 얻게 하여 구원한다고 한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된 천흥사 동종은 일본과 중국의 종과는 다른 우리나라 특유의 종 형태를 잘 계승하고 있는 종이며, 국내에서 존재하는 가장 오래된 고려시대 범종이다. 천흥사 범종 위에 앉아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은 포뢰이다. 고래가 다가오는 것이 무서워 지옥에까지 고함을 지를 준비를 하고 있는 포뢰는 아직 용이 되지 못했으니 사실 여의주를 물고 있으면 안 된다. 하지만, 그 큰 목소리로 지옥까지 들리도록 크게 고함을 지르며 착한 일을 1010년부터 천년 넘게 하고 있으니 여의주를 그 입에 물려줄 만하다.

   

하긴 성덕대왕신종의 포뢰는 771년에 만들어졌으니 1200년 넘게  외치고 있다.

포뢰! 화이팅!

성덕대왕신종의 포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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