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글 & 칼럼
[목차: 저작권 태양계와 원시블랙홀]
◑ Part1. 지식재산권, 무형자산의 사유재산화
♬ 지식재산권 논의에 앞선 세 가지 전제
♬ 무형자산을 사유재산으로 확보하라 ~#6
♬ 지식재산권: 기업의 의지가 과도해지면(1)
♬ 지식재산권: 기업의 의지가 과도해지면(2)
♬ 지식재산권: 기업의 의지가 과도해지면(3)
♬ 지식재산권: 기업의 의지가 과도해지면(4)
◑ Part2. 저작권 태양계와 원시블랙홀
◑ Part3. 몽상, 예술민주사회주의
- 이미지처럼 무형적으로 무한히 증식할 가상의 여백이 존재해야 하고, 그래서 끊임없이 성장해야 하는 체제가 고도화된 자본주의 경제였다. 무형 자산에 대한 개념이 점점 더 중요해졌다.
- 미개척지가 많다면 그것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 아웅다웅할 필요가 적다. 그때에야 프런티어 정신을 발휘하여 새로운 영토로 전진하겠지만, 결국 그러한 미개척지도 포화되기 마련이다. 서로가 경쟁적으로 울타리를 쳐놓다 보면 더는 울타리를 칠 공터가 남지 않는다. 그때에는 상대 영역을 빼앗으려는 상황에 이른다. 작은 기업이 큰 기업의 교묘한 작전에 휘말려 특허권을 빼앗기기도 하듯이.
- 신자유주의 시대도 이런 맥락에서 기업의 열망을 담아낸 시절이다. 어쩌면 기업의 본능이 조금 엇나가면 바로 드러나는 지극히 솔직한 욕망이다. 착취할 곳이 식민지였다가 후진국이었다가, 이제는 포화 상태에서 착취할 모든 지점에서 기업은 최선을 다했다. 그러지 않으면 내일 망할 것처럼, 필사적이었다.
상품과 브랜드, 광고.
이미지처럼 무형적으로 무한히 증식할 가상의 여백이 존재해야 하고, 그래서 끊임없이 성장해야 하는 체제가 고도화된 자본주의 경제였다. 무형 자산에 대한 개념이 점점 더 중요해졌다.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이란 전통적 개념은 어쩐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믿음으로부터 출발한 소비 자본주의와 잘 어울린다. 신이 우리의 운명을 알아서 정해준다고 하듯이, 여하튼 보이지 않는 존재가 더 무서운 서구였다.
보이지 않는 게 너무 많죠. 찜찜하게 말이죠.
그리고 보이지 않는 개념을 보인다고 믿게 하는 방법을 개발해 나갔다.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면 하나의 제품에서도 끊임없이 사야 할 이유들이 생겨났다.
광고나 브랜드 전략을 통한다면, 주입하고자 하는 이미지를 비교적 효과적으로 물건에 담아낼 수 있었다. 기업 이미지를 전반적으로 일관되게 디자인하면서, 특정 이미지로 응집력을 높여서 경쟁력을 강화해 준다는 믿음이 있었다. 각 명품 브랜드에는 조금 더 세분화된 특정 의미를 주입할 수도 있었다.
보드리야르? 상징 가치? 소비 경제?
소비를 해야만 살아남고, 소비 경제에서 선택받기 위해 자기 제품에 차별화된, 보이지 않는 의미를 개발해 주입한다. 무형자산의 사유재산화를 성공하기 위해서.
이런 비판적 시각의 견해는 이제 너무도 유명하고 보편적이다.
저작권 강화 흐름, 다양한 무형자산의 발굴과 법적 정비는 이런 맥락과 관련 있다. 포화된 자본주의 시절에는 더 민감하게 지식재산권을 행사하려 든다. 충성고객을 확보하려는 장기간의 마케팅 전쟁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려면, 알맹이 역할을 할 각종 지식재산권을 합법적으로 확보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장고의 노력이 물거품이 될 게 뻔하다.
그런데 역방향으로 보면 타 기업의 무형자산 중 지식재산권이 될 만하거나, 이미 지식재산권으로 사유재산화한 요소에 대해 탐이 나는 경우도 생긴다. 하청 업체에 관한 갑질은 말할 것도 없다. 기업끼리 일어나는 착취와 견제와 대립은 노동자에 대한 착취나 고객을 향한 집착적 구애만큼이나 지독하다.
미개척지가 많다면 그것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 아웅다웅할 필요가 적다. 그때에야 프런티어 정신을 발휘하여 새로운 영토로 전진하겠지만, 결국 그러한 미개척지도 포화되기 마련이다. 서로가 경쟁적으로 울타리를 쳐놓다 보면 더는 울타리를 칠 공터가 남지 않는다. 그때에는 상대 영역을 빼앗으려는 상황에 이른다. 작은 기업이 큰 기업의 교묘한 작전에 휘말려 특허권을 빼앗기기도 하듯이.
“핵심 특허 기술 주변으로 엇비슷한 특허를 몰래 빼돌리고는 핵심의 주변으로 지뢰처럼 각종 특허를 미리 등록해 놓고, 작은 회사에서 상품을 출시하지 못하게 소송을 걸어놓고는 그들이 고사하는 걸 기다리죠. 작은 회사로선 뭐라도 건지려면 그냥 특허를 넘기고 돈을 받는 것으로 타협하는 거죠.
그런가 하면 국가 간 산업스파이는 대놓고 핵심 기술을 빼돌리는 경우죠.”
물론 가로채려는 부도덕한 행위도 뜻하지 않은 리스크를 안고 있어서, 뚝심 있게 자기 기술을 개발하려는 노력 역시 끊이지 않는다. 쉽게 가려다 더 큰 비용을 지출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차라리 자체적으로 무형자산을 개발하는 편이 훨씬 안정적이다.
다만 무형자산을 지식재산권으로 전환하는 것이 모두 가능한 건 아니다. 때로는 법적인 정비에 실패하기도 하는데, 이 중에 특허권이나 저작권으로 정비할 만한 콘텐츠는 기업의 핵심적인 지식재산권이다.
그런데 여기에도 지식 노동자인 연구자가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직속 연구소의 성과물을 가급적 기업 이익으로 온전히 환수하고 싶어진다. 이 욕심이 지나쳐 초과 이익을 정당하게 연구자와 공유하지 않을 때가 있다. 갑의 위치에서 유리한 계약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핵심 연구진이 훗날 퇴사할 경우, 보상 정도가 적정했는지를 두고 소송이 걸리기도 한다. 그만큼 기업은 착취 가능한 모든 것을 착취하고 싶어 한다. 착취하는 특권을 과시하듯이.
신자유주의 시대도 이런 맥락에서 기업의 열망을 담아낸 시절이다. 어쩌면 기업의 본능이 조금 엇나가면 바로 드러나는 지극히 솔직한 욕망이다. 착취할 곳이 식민지였다가 후진국이었다가, 이제는 포화 상태에서 착취할 모든 지점에서 기업은 최선을 다했다. 그러지 않으면 내일 망할 것처럼, 필사적이었다.
한국은 과거부터 식민지도 없고 자원도 부족했다. 국토도 좁았다. 고속 성장을 위해 수출 경제로 발전했고, 자국민 노동자에게 희생을 강요했다. 내수시장의 고객에게도 그랬다. 하청업체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