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글 & 칼럼
[목차: 저작권 태양계와 원시블랙홀]
◑ Part1. 지식재산권, 무형자산의 사유재산화
◑ Part2. 저작권 태양계와 원시블랙홀
♬ 저작권에도 기만적인 요소가 있다
♬ 어째서 지식재산권 중 저작권인가?
♬ 저작권 태양계 ~#2
♬ 태양계 너머 원시 블랙홀, 탈저작권
♬ 탈저작권과 카피레프트에 관한 주석
♬ 카피레프트여, 수면 위로 드러나라
♬ 태양계가 속한 우리은하, 문화향유권
♬ 문화적 다양성을 보호해야 할 의무
◑ Part3. 몽상, 예술민주사회주의
- 저작권의 관점에서 지금은 저작권 절대주의 시절을 지나고 있다. 특별한 의미까지는 아니다. 그저 저작권 윤리를 기반에 두고 저작권을 옹호하는 논리가 절대적으로 강세다.
- 책을 검색해서 보아도 저작권을 비판하며 생산적인 대안을 찾으려는 논의는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저작권 법 체계를 정비한다든가 저작권의 이론적 정비를 위한 책이 대부분이다.
- 그럼에도 끈질기게 저작권을 언급하면서 기만적 유형을 분류하고, 비판할 듯 말 듯 말을 돌리는 것은, 저작권을 깊이 분석해보고 나니 현실적으로 저작권을 수용할 수밖에 없되, 그 너머를 탐구해야 할 필요성도 수면 위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 저작권 태양계
저작권의 관점에서 지금은 저작권 절대주의 시절을 지나고 있다. 특별한 의미까지는 아니다. 그저 저작권 윤리를 기반에 두고 저작권을 옹호하는 논리가 절대적으로 강세다. 저작권을 경직되게 적용하려던 시절이 될 수도 있었으나, 유튜브 등의 등장으로 일부러 저작권의 칼날을 휘두를 필요까지는 없어졌을 뿐이다. 그럼에도 그것은 저작권자의 관용일 뿐이다.
저작권에 대한 논리를 함부로 대적할 만한 대안 논리는 부족하다. 과거에 경합을 벌였던 논리는 이제 역사의 유물처럼 된 듯하다.
그도 그럴 것이 윤리적인 명분으로 승리할 경우, 그것은 엄청난 힘을 얻고 보편화되기 마련이다. 그 윤리의 종류가 모든 인류 문명에서 수용할 만한 보편 윤리에 가깝다면 더더욱 그렇다.
절도죄는 유래 깊으니, ‘남의 무형자산을 도둑질하지 마라’는 건 반박의 여지가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자본주의 시대에 사유재산은 더욱 더 민감하다. 누군가의 노력한 결과물을 훔치는 것은 파렴치하다는 윤리적 명분은 강력하게 다가온다.
“그 윤리를 만든 나라의 사람들이 내 무덤을 파헤쳐서 금은보화를 훔쳐 갔지만요.”
더구나 마땅한 다른 대안이 없는 상태에서 저작권만큼 합리적인 권리도 없다. 자본주의 체제에 이상 반응을 보이지 않고 결이 잘 맞아 들어간다. 당연하다. 재산권의 개념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이고, 상품의 측면에서 저작물 권리가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지금 기준으로 다양한 문화를 즐기는 데에 저작권은 순기능을 더 많이 하는 것으로 보인다. 적절한 수준에서 탄력적으로 운용하는 덕분이다. 유튜브만 보아도 웬만해서는 다양한 콘텐츠를 저렴하거나 무료로 향유한다. 현 상태로도 저작권은 괴물처럼 소비자를 압박하며 부작용의 원흉으로 작동하지도 않는다. 비교적 조화롭다.
그렇기에 저작권의 기만적 유형을 제시했더라도, 그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를 미리 대비하자는 것이지, 저작권을 없애야 한다거나 섣불리 다른 대안으로 교체해야 한다고 보지는 않는다. 또 그럴 마땅한 대안도 눈에 띄지 않는다. 저작권은 보편화될 만해서 주류가 된 것이라 해도 무방하다.
그럼에도 아쉬운 부분은 있다. 책을 검색해서 보아도 저작권을 비판하며 생산적인 대안을 찾으려는 논의는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저작권 법 체계를 정비한다든가 저작권의 이론적 정비를 위한 책이 대부분이다. 과거 카피레프트 운동, 오픈소스 운동 등 공유 정신을 강조한 대안적 흐름은 이제 그런 저작권 역사의 한 장을 장식하고 간단히 소개하는 정도에 그친다.
<텔레코뮤니스트 선언>과 같이 본격적으로 카피레프트적인 접근을 재호출하는 경우는 드물다. 또 그런 경우 과거의 재탕이 될 확률도 높고, 설령 새롭더라도 불온하거나 경솔한 것으로 인지되기 십상이다.
그것이 맞을 수는 있더라도, 조금 획일적이라 할 만큼 저작권을 벗어난 시도는 눈에 띄지 않는다. 출판사에서 선호하지 않는 것일까. 저술가들이 피하는 것일까. 그럴 법하다.
팔려고 출판하고 저술하는 것이면서 ‘팔지 않고 나누어 드린다’고 하는 듯하니 표리부동해진다. 뭔가 이율배반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책 팔아서 먹고 살겠다는 바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저작권을 대차게 밀어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간혹 저자 중에서 자신의 한두 편의 작품을 기증하듯이 카피레프트의 취지로 모음집을 함께 출판하는 경우는 있다. 일회성의 이벤트일 것이다. 그렇게 지속해서는 다른 일을 갖고 취미로 글을 쓸 수밖에 없을 테니.
그러므로 여기서는 저작권을 버리고 카피레프트의 낭만적인 공유 정신을 시도하자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끈질기게 저작권을 언급하면서 기만적 유형을 분류하고, 비판할 듯 말 듯 말을 돌리는 것은, 저작권을 깊이 분석해보고 나니 현실적으로 저작권을 수용할 수밖에 없되, 그 너머를 탐구해야 할 필요성도 수면 위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를 단순히 다양한 의견이 있어야 한다는 민주적 신념 때문이라고 해도 좋다. 그것도 나름대로 멋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