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소설
[목차: 자기만의 방이 없는 죄로]
♬ 회사원 은주
♬ 퇴사
♬ 결혼
♬ 은희의 기억
♬ 이주와 이혼
♬ 은희와 여경
♬ 여경의 마지막 소설
♬ 예상치 못한 사건
♬ 동거
♬ 에필로그
[소개말]
- '자기만의 방이 없는 죄로'는 놀이글 스타일을 적용한 그림 소설입니다.
- 또한 ‘가상 다큐 인터뷰 미편집본’의 형식, 또는 ‘다큐 인터뷰 문체를 적용한 에세이 소설’ 형식을 취했습니다. 감독에게 각 인터뷰 대상자가 인터뷰를 하는 방식을 염두에 두고 내용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 이미지는 모두 고흐의 작품입니다.
- 은주는 자신이 당시 회사에 대항하고자 했던 마음을 언급한다. 하지만 결혼 문제가 겹쳐 있었다. 지금은 전 남편이 되었지만, 그의 만류로 은주는 어려운 길을 선택하지는 못했다. 그들은 결혼해서 미국으로 건너간다. 남편의 공부 때문이었는데, 그곳에서 육아에 전념하면서, 수학에 다시 재미를 느낀다.
♬ 결혼
동생이 보기엔 제가 그때 안 좋아보였다고 하더라고요. 정작 저는 제 무기력한 표정이 다 드러나는 줄은 잘 못 느꼈어요. 매일 열심히 살았다고 여겼거든요. 좀 짜증스러운 상황에 대해 예민하게 예단하는 면은 있었지만, 그건 충분히 있을 수 있죠. 저처럼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겪었다면요. 사람을 불신해보았지만 이토록 끈덕지고 지속적인 경험은 처음이었어요.
그 전에 사람을 잘 믿었다는 것은 아니고, 돈을 빌려주면서 스트레스 받는 스타일이라 사람을 믿는 편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때 일은 무슨 드라마에서나 벌어지는 음모나 누명 같았으니까요. 정말 그런 일이 벌어지는구나 싶고, 별 악감정 없던 이사님이라든지 신사적이던 부장님 역시 달리 보였죠. 사회생활이 녹록하진 않다고 여겼고요.
저를 두고 함부로 소문을 내고 시기하던 사람들도 미웠죠. 많이 배웠죠. 어쩌면 이게 인생의 첫 번째 쓴 맛이었을 거예요. 첫 번째 실패였다고는 잘 표현하지 않지만, 그렇게 볼 수도 있겠죠.
두 번째 실패는 이혼이었어요.
이혼한 전 남편과는 5년 동안 교제한 뒤 결혼했어요. 대학 때부터 친하게 지내던 선배였죠. 연인 관계로 발전한 건 졸업한 뒤 직장을 다닐 때였어요. 우연히 사회에서 다시 만난 거였죠. 대학 CPA 동아리 시절에는 연인이 되진 않았어도 고민을 털어놓는 정도의 친분을 유지했으니까요.
그러니 사회에서 다시 만났다고 표현하기도 애매하네요. 잠깐 소원했다가 대학 동아리 ‘선배와의 만남’ 행사 때 다시 자주 만나게 된 것뿐이죠. 대학 때부터 호감이 있었다고 해두죠.
그 사람은 그때도 자기 일을 확실히 하고, 너무 자기주장만 하는 스타일도 아니었어요. 대인 관계에 ‘센스가 있다’고 해야 할까요.
연애에도 성실했죠. 약간 ‘차도남’이라고 해야 하나요? 네, 차가운 도시 남자요, 매력적인 면이 있으면서도 다소 냉정했다고 할 수도 있겠네요.
그땐 강단 있게 보인다고 했었죠.
결혼 이야기가 오가던 때에 하필 과장님과 관련된 헛소문을 알게 된 거예요. 어떻게 해야 좋을지 그 사람에게 물어보았거든요.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해야 하는지도요. 그 사람은 제가 시끄러운 일에 연루되지 않기를 바랐어요. 그냥 똥 밟았다 여기라고, 다 잊으라고 했어요.
그 사람은 되도록 과장님에 관한 증언도 하지 않기를 바랐죠. 어차피 회사를 상대로 물의를 일으켜봤자 좋을 게 없다는 것이었죠.
오히려 안 좋은 소문만 증폭될 거라고 보았어요.
그 진실 여부와 상관없이 사람 입에 오르내리는 건 그다지 유쾌한 일이 아니니까요.
결과적으로 그 사람의 말 중에 하나는 들었고, 다른 하나는 듣지 않았던 거죠.
언제나 동행합시다.
우리는 2002년 한일 월드컵이 끝나자마자 결혼을 했어요. 그리고 2019년에 이혼을 했으니 그래도 17년 동안 부부였네요. 수연이가 우리 곁에 있어서 우리를 완전히 남으로 만들진 못하겠죠.
딸아이는 2004년에 태어났는데, 아이가 태어나기 직전에 미국에 들어갔어요. 제가 먼저 들어가서 아이를 출산했으니 소위 원정출산이었죠. 수연이가 이중국적인 건 그 때문이고요. 시어머니께서 강권하신 측면도 있어요. 아이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자산은 외국어와 이중국적이라고요. 극한적인 상황에서 모든 게 사라지더라도 그건 사라지기 어렵다는 거였죠.
어차피 그 사람이 직장 일을 마무리하고, MBA 과정을 밟기 위해 스탠퍼드대에 입학하기로 되어 있었으니 정말로 미국에 살 수도 있었죠. 취직만 가능하다면, 그것도 좋겠다 싶었는데 그렇게 된 것이죠. 대개는 한국으로 돌아가지만, 운 좋게 그 사람은 미국에서 부동산 투자 회사에 취직하는 데에 성공했죠.
미국에서 처음엔 육아 외에 할 일이 없었어요.
시댁이 잘 사는 편이라 경제적 지원을 부족하지 않게 받았는데, 그 덕분에 그 사람과 저는 경제적 압박 없이 분담한 역할에 집중할 수 있었어요. 3년 정도는 영어도 익숙지 않아서, 어학 코스를 밟는 것 아니면 집에 주로 있으면 육아만 했죠.
별로 외출하지 않았지만, 간혹 어학 과정을 함께 수료하던 언니 동생들을 집으로 초대하곤 했었죠. 교회에 나가자는 권유를 여러 번 받았지만, 전 사람 많은 곳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죠. 이런저런 관계로 얽히고 굳이 나가지 않아도 될 모임을 몇 번이라도 더 나가야 할 것 같았거든요.
엄마는 가끔 미국에 오셨지만, 대개는 육아를 상의할 사람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이곳 도우미를 써야 했는데 언어 문제 때문에, 한인 타운에서 한국인 아주머니를 모셔야 했죠. 주급은 다른 분들보다 높은 편이지만 그래도 말이 통한다는 게 위로가 되었어요.
그때부터였어요. 수학을 풀기 시작했죠. 예전에도 수학을 취미로 풀곤 해서, 수학과를 가볼까도 생각할 만큼 특이한 취향이 있었죠. 수포자들이, 네, 수학포기자요, (웃음) 흔한 분위기에서, 숫자 자체를 좋아하는 건 좀 독특하죠. 그래도 숫자는 명확하고 아무 말 없이도 많은 말을 걸어와요. 그것은 수다스럽다기보다는 잔잔하고, 절대적인 느낌을 주죠.
정석을 펼쳐놓고 풀다가, 도서관에 가서 수학 관련 교양서나 논문을 아무거나 빌려서 읽기도 했죠. 이해할 수 있든 없든 숫자를 구경하는 건 마음에 평안을 주었거든요. 숫자에서 비롯된 인문학적 해석을 엿듣는 기분이 새로웠고요.
심란할 때면 식탁에 앉아서 잠든 아기를 지켜보며, 파이를 메모지에 적어보곤 했지요. 무한히 펼쳐지는, 규칙이 잘 보이지 않는 숫자를요. 소수를 나열하기도 했어요. 1과 자기 자신으로만 나누어지는 그 소수요. 그 규칙을 찾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리만 가설을 풀어냈다면 저는 이미 수학계에서 대단한 일을 하고 있었겠지요. (웃음)
그래도 수학 마니아들처럼 더 큰 소수를 찾으려는 취미를 갖기는 했었어요. 지금도 종종 큰 소수를 찾아보려고 컴퓨터를 돌리기도 하고요. 숫자란 정말 놀랍잖아요. 그런 소수가 무슨 의미 있는가 싶은데, 그걸로 보안 체계에 적용하니까요. 0.99999가 무한하게 이어지면 1이나 다름없어지는 것도 경이로운데, 그러한 숫자들 사이에 무한한 숫자가 숨어 있고. 신비롭죠. 저만 그런가요?
그래요, 이런 건 숫자를 좋아하는 사람이나 경이로울 수 있겠죠.
“세계를 수로 표현한다는 게 어쩐지 경이로워요.”
그래도 우주상수, 그 작은 숫자가 정교하게 설정된 채로, 그보다 조금이라도 크거나 작으면 지금의 우주가 되지 못했다는 물리학적 해석을 듣다 보면, 우주의 모든 게 숫자라는 생각마저 들어요.
우리 삶의 깊은 고민조차 찰나이고, 나의 자랑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죠. 그런 마음이 들고 나면 겸허해져요. 일종의 종교 같죠. 숫자를 다루고 나면, 사심이 들어있지 않은 메마른 기호를 따라가서는 끝내 제 마음의 정중앙을 뚫어내는 것 같았어요.
그러고 나면 내 보호가 필요한 어린 수연이뿐 아니라, 동네를 떠도는 길고양이들이 더 잘 보였어요.
네. 길고양이요. 맞아요. 집 없는 유기견도요. 우리는 늘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존재죠. 살아 있는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