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희의 기억(1)

그림 소설

by 희원이

[목차: 자기만의 방이 없는 죄로]

♬ 회사원 은주

♬ 퇴사

♬ 결혼

♬ 은희의 기억

♬ 이주와 이혼

♬ 은희와 여경

♬ 여경의 마지막 소설

♬ 예상치 못한 사건

♬ 동거

♬ 에필로그


[소개말]
- '자기만의 방이 없는 죄로'는 놀이글 스타일을 적용한 그림 소설입니다.
- 또한 ‘가상 다큐 인터뷰 미편집본’의 형식, 또는 ‘다큐 인터뷰 문체를 적용한 에세이 소설’ 형식을 취했습니다. 감독에게 각 인터뷰 대상자가 인터뷰를 하는 방식을 염두에 두고 내용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 이미지는 모두 고흐의 작품입니다.

- 은희는 언니 은주와 함께 학창 시절, 길고양이를 거두고 키우던 순간을 언급한다. 팍팍하던 시절이었다. 아직 정돈되지 않아서 낭만으로 포장되던 행위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그 팍팍하던 시절, 각자 좋아하던 것이 있었을 것이다. 은희는 은주가 수학을 단순히 잘하는 걸 넘어서 독특하게 좋아하던 걸 기억한다. 은희는 은주만큼 수학을 좋아할 순 없었다.





IMG_1983.PNG → 서술자 은희, 75년생


♬ 은희의 기억


우리 언니와 내가 친하게 지내던 길고양이들이 많았어요. 각각이 다른 고양이들이기도 했고, 때로는 함께 움직이는 고양이들이기도 했어요. 어미 고양이가 밥을 얻어먹으려고 새끼들과 함께 오기도 했거든요.

당시 집에서 고양이를 키우진 못했어요. 엄마가 고양이가 벽지를 다 긁어놓는 걸 무척 싫어하기도 했고, 엄마가 털 알레르기가 있어서 그랬어요. 그래도 주변에 길고양이가 많다 보니 사료를 약간 사다가 가끔씩 주곤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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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엔 반려견에게도 사료 말고 사람이 먹는 음식을 많이 주었는데, 길고양이라면 말할 것도 없었죠. 염분이 고양이에게 1일 초과량이라는 것을 모르고 사람이 먹는 음식을 주곤 했어요. 참치 통조림 같은 걸 주면, 좋아했었죠. 여러 길고양이를 만났고 스치듯 먹이를 주곤 했었어요. 배가 고프면 저희 집으로 찾아드는 고양이들이 있었거든요.

네, 단독주택이어서 그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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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보니 이런저런 고양이들이 놀러온 건데, 그 중엔 어미 고양이가 새끼를 놓고 가는 경우도 있었어요. 우리 집에선 키우지 않기로 해서, 집안으로 들이지 않기로 했지만, 새끼만 남아서 우리 집에 버티기를 성공한 경우로 두 마리가 기억나요.


[은주 은희 엄마]
“고양이 키울 자신 없다! 자신이 없긴 한데… 어쩌면 이리 귀엽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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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길고양이를 도둑고양이라고 부르곤 했죠. 길고양이란 말은 그때 없었으니까요. 고양이는 요물이고, 재수가 없다는 말도 스스럼없이 하던 사람들이 있었죠. 고양이는 영혼이 깃든 영물이라서 ‘해코지’를 하면 저주를 받을 수 있다면서, 함부로 고양이와 인연을 맺는 건 조심해야 한다고 했죠.


고양이는 반드시 사람을 해하는 때가 있다면서, 어디서 온지도 모를 근본 없는 고양이를 받아들이면 안 된다고도 하였지만, 그건 고양이의 습성을 모르고 고양이를 함부로 대했기 때문에 생긴 일이죠. 그걸 몰라서 사람들은 길고양이를 쉽게 비난하곤 했죠.

그래도 그런 사람들조차 어린 새끼들을 보면 무장해제되곤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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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이름이 뭐예요?


오히려 애기들이 사람을 무서워했죠. 그중 스누피로 불리던 아이는 애교가 많은 편이었는데, 그것에 비하면 두 번째로 들였던 윙윙은 사람을 경계하면서 친한 사람에게만 반응을 보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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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히도 그 두 고양이 모두 끝이 좋지 않았어요. 역시 사람 사는 곳은 고양이에겐 위험하죠. 그런 바람에 우리 집은 고양이가 스쳐가는 곳이지, 절대로 살게 두면 안 된다는 믿음마저 생겼죠. 그만큼 슬펐다고 해야겠죠. 엄마도 마음이 좋질 않았나 봐요.


그 뒤로는 길고양이를 더 잘 챙겨주었으니까. 처음엔 우리 자매가 하는 꼴을 담담히 지켜보며 두어 마디 잔소리만 했는데, 그 사건 이후로는 엄마 당신이 먼저 고양이를 챙겨주게 되었으니까. 비극적이어야 했지만, 너무도 간결한 사건이었죠. 당시엔 신문에 실릴 만한 사건이 아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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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술자 은희, 75년생]
“아, 네. 말씀드릴게요”.


첫 번째 만난 아이인 스누피는 산책 나온 대형견에게 털을 빳빳이 세우고 공격적인 자세를 취하다가 일격에 치명상을 입었어요. 그때 후유증으로 일주일을 버티다 죽고 말았어요. 수술이 잘 되었다고 했지만, 어린 새끼라 버티기 어려웠던 거죠. 언니가 많이 슬퍼했죠. 저도 슬펐지만, 언니처럼 감정을 깊이 이입하는 성격은 아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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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제가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 연출을 했고, 반대로 언니가 수학을 좋아했다는 게 좀 아이러니하게 느껴지지만요.”


어쨌든 두 번째로 만났던 윙윙은 어느 날 사라져버렸어요. 처음엔 어린 아이가 어디론가 나간 줄 알았는데, 어쩌면 누군가 가져다 버렸다는 심증도 있어요. 그때는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식으로 집 앞에서 꽃다발을 들고 서 있던 남학생들이 있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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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스토커로 부르는 게 낯설었던 시절이었죠. 열 번 찍으면 열 번 싫어할 수도 있다는 걸 모르고, 자신들의 열정을 미화하고 사랑의 열병으로 봐달라고 강요하던 때였죠.

언니는 인기가 많았어요. 종종 그런 남학생들이 있었는데, 수학학원에서 만났던 동급생이었던 애였는데, 그 자식이 유독 질기게 언니에게 고백했죠. 자꾸 골목에서 기다리니, 언니는 무서워해서 꼭 저를 불러서 함께 귀가하곤 했어요. 같은 학원이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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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그 자식 친구들이 하는 말로는 종종 길고양이를 잡아다가 동네 바깥 야산에 갖다 버리는 고약한 취미가 있다더군요. 심기가 뒤틀리면 그런 것 같은데, 걔네들은 그게 재미있다고 막 떠들고 다녔어요. 그 말을 듣고 좀 찜찜했어요. 그 자식에게 따져 묻기는 했지만, 안 했다고 발뺌하는데 뭐라고 할 수도 없었죠.


그래도 죽은 게 아니라, 어딘가를 떠돈다면 누군가의 도움으로 살아남지는 않을까 싶었죠. 스누피가 눈앞에서 죽음을 보여준 것과 달리, 윙윙은 사라졌으니까요. 한참 지난 후에야 뉴스를 보면서 오래 전 윙윙이 떠올랐어요. 고양이는 영역 동물이라서 갑자기 새로운 곳에 놓이게 되면, 스트레스를 받아서 오래 못 산다고도 하더군요.

야만의 시절이라고 해야 할까요. 아직 세련되지 못한 시절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때 학창 시절이란 팍팍했어요. 성적과 진학 실적만 강조하다 보니 정서적으로 메말랐죠. 지금도 그렇다고는 하지만요.

그 시절에도 좋은 기억이 있지만, 체벌도 심했고 우열반도 철저한데다가 오전반 오후반도 경험했을 만큼 학생 수도 많아서 늘 저는 겉돌았어요. 돌아가고 싶을 만한 추억은 아니죠.

하지만 언니는 달랐죠. 학교에서든 학원에서든.


언니도 공부를 엄청 잘하는 축은 아니었어요. 그래도 선호할 만한 대학에 갈 정도의 실력이었죠. 특히 수학 과목은 꽤 성적이 잘 나오는 편이었어요. 불균형하다고까지 할 만큼 다른 과목에 비해 수학 성적이 좋았어요.

본인 말로는 수학을 풀 때는 마음이 단정해진다나요. 단순히 과목을 좋아하는 수준을 넘어선 호기심이 있었던 것 같아요. 수학을 그렇게 좋아하기란 쉽질 않죠. 아주 지겨운 과목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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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선행학습을 하다 보면, 강박적으로 당장의 암기나 훈련에 집착하기 마련인데, 언니는 수학을 공부할 때만큼은 그 이상을 상상하고자 했어요. 수학에 관한 에세이를 보는 것도 즐기고, 학업으로 바빠 부담스러울 텐데도, 한 문제를 붙들고 이것저것 시도해보면서 즐거워하는 거예요.

저로선 좀 답답하고 이상해보였어요.


“아니, 수학 일기장에 매일 문제에 대한 감상을 적다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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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야 그런 걸로 치면 당시 학원 강사였던 분이 더 심했죠. 전 솔직히 약간 괴짜로 보고 희한하다고 여겼죠. 가르치는 것이 무난해서 배우긴 하지만, 뭔가 괴짜 같다는 생각도 했어요. 허공에다 집을 지을 수 있다는 걸 수학적으로 증명하려는 시도를 한다는 것인데, 뭔가 되게 진지하게 그걸 말하는 것을 보고, 선생님이 잡담하는 시간이 아깝다고 느낄 정도였죠. 하기야 잡담 덕분에 쉬어가는 느낌도 들어서 그럭저럭 웃어 넘길 때도 있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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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언니는 그 순간을 되게 흥미롭고 엉뚱함 그 자체를 즐기는 것 같았어요. 그 선생님 인기가 떨어져 수강생이 별로 없을 때도, 묵묵하게 그 수업을 신청하곤 했죠. 학원 수업 시간에 절대로 빠지지 않았죠. 어찌 보면 수업보다도 엉뚱한 잡담을 챙겨 들으러 가는 사람처럼 말이죠. 그리고 특이한 공상에 대해선 제게 말해주곤 했어요. 주로 수학적인 것이라 솔직히 기억은 안 나지만요. (웃음)


아, 방금 이런 게 떠오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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