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소설
[목차: 자기만의 방이 없는 죄로]
♬ 회사원 은주
♬ 퇴사
♬ 결혼
♬ 은희의 기억
♬ 이주와 이혼
♬ 은희와 여경
♬ 여경의 마지막 소설
♬ 예상치 못한 사건
♬ 동거
♬ 에필로그
[소개말]
- '자기만의 방이 없는 죄로'는 놀이글 스타일을 적용한 그림 소설입니다.
- 또한 ‘가상 다큐 인터뷰 미편집본’의 형식, 또는 ‘다큐 인터뷰 문체를 적용한 에세이 소설’ 형식을 취했습니다. 감독에게 각 인터뷰 대상자가 인터뷰를 하는 방식을 염두에 두고 내용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 이미지는 모두 고흐의 작품입니다.
- 은희는 수학 강사를 언급하다가, 수학의 역설을 떠올린다. 문과 취향이었던 자신으로선 골치 아픈 주제였다. 숫자를 좋아하는 은주는 그렇지 않았다고 한다. 회계보다는 학문으로서 수학에 관심을 보였지만, 아버지의 말대로 문과 쪽에서도 숫자를 다룰 수 있는 경제 경영 계열로 진학하기로 했다. 반면 은희는 영화 연출을 전공하고 연출팀에서 꿈을 키웠다. 그러다 뜻하지 않은 일을 겪고 영화 일을 더 지속할 수 있을지 고민하던 차에 (아직은 확신할 수 없었던 분야인) 다큐멘터리 연출 쪽으로 인연이 닿는다. 그 작업엔 은희가 좋아하던 발언의 형식이 잔잔히 스며 있었다.
정수 사이에는 무한한 수가 있고, 정수가 되지 못한 유리수도 무한히 있고, 그렇게 끊임없이 확실해 보이는 두 숫자 사이에 계속해서 무한이 들어있다는 거죠. 그렇게 닫힌 세계 속에 무한한 우주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항상 존재하는 것.
그게 수학이라는데, 어떻게 해도 메워지지 않는 숫자라는 게 그때는 따분하고 공상적으로 보였죠. 그러한 이상한 숫자 놀음 때문에 기이하기만 했는데, 그러한 수학이 또 그토록 정확하다는 모순이 저를 지치게 했어요.
거기엔 사람, 인생, 이야기 이런 게 없는 것 같았거든요.
저는 인문학을 좋아했어요. 문과적이었죠. 언니는 수학과나 물리학과를 가고 싶었지만 교사가 될 게 아니라면 굶어 죽는다는 충고를 받아들였죠. 또 여자와 공대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다는 조언도 받아들이더니, 문과를 택해선 경영 경제 쪽을 염두에 두고 공부를 했어요.
아버지께선 여성의 부드러운 리더십, 뭐 이런 거라든지, 젊은 여성만의 마케팅 감각 이런 것을 기대했겠지만, 언니는 재무나 회계 쪽에 관심이 많았죠. 최후의 순간에는 숫자를 선택한 셈이죠. 아버지의 바람을 크게 거스르지 않으면서 나름대로 현명한 타협을 했던 거죠.
그 시절에 여자는 외국어를 잘하고 소통 감각이 있고, 남자는 수학을 잘하고 이성적이라는 이상한 선입견이 있었잖아요. 언니는 그 사이를 가로질렀던 셈이죠. 재무나 회계의 상상력이 좀 기술적이라며, 수학과나 물리학과의 관념적이고 우주적인 상상력보다는 재미 없다는 소리를 종종 하면서요.
[은주, 71년생]
“재무 회계의 숫자엔 우주가 보이질 않아.”
3학년쯤 되어서야 관련 공부에 적응했던 거 같고요. 언니는 재무 회계도 나름대로 미덕이 있다고 했어요. 회계의 숫자는 신비롭지는 않고 표면적인 것 같지만, 어떤 행위의 흔적을 담고 있다고 했어요. 언니에게 뭔가를 자꾸 질문을 던져오는 것 같다고 했죠. 그 질문이 숫자의 본질에 관한 내용은 아니라 해도요.
숫자가 묻는다니 언니가 이제 별 상상을 다하는구나 싶었죠. 숫자의 명료함보다는 최근 유행한다는 수학의 스토리텔링에 관심이 더 많은 듯했죠. 하기야 회사에서도 숫자란 돈을 의미하니까요. 나름대로 그 안에도 돈의 이야기가 적힌 거죠. 그건 윤리적인 정직함과 관련 있으니, 언니다운 고민일 수 있어요. 명료한 성과와 책임의 숫자는 부담스러운 법이죠.
차라리 관념적이고 우주적인 숫자가 나을 수도 있겠죠. 진리의 영역에선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게 거의 없을 테니까요. 그 숫자는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든 그냥 그 숫자로 있지만, 재무 회계에서 숫자는 다르죠. 또 그 숫자에 반응하는 사람들의 방식도 천차만별이죠. 누군가는 탐욕을 부리고, 누군가는 그 때문에 자살도 하니까요.
IMF 외환위기 때도 그랬지만, 회사에서 장부를 분식회계해서 부풀리는 일은 많았잖아요. 그러면 회계 숫자는 교묘하게 틀어지고, 그건 언젠가 누군가의 눈물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었나 봐요.
언니는 책임의 숫자 같은 거라고 했어요. 진리의 숫자는 아니지만, 그것도 매력적이라면서요.
그 말에 공감해요. 언니의 말을 떠올리게 하는 경험이 있었거든요.
감독님도 아시다시피, 저는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 연출을 전공했어요. 보시다시피 그 방면으로 성공하진 못했고요. 당시엔 조연출 일을 맡아서 감독님 일을 도와주곤 했는데, 앞으로의 계획이 암담할 때였죠.
시나리오를 쓰려고 각종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한때는 그마저 버겁고 순수하게 창작에만 몰두하고 싶어서 방글라데시를 오갔죠. 조연출로 일하면서 용돈 정도를 번 것도 최대한 아껴서는 그 돈으로 방글라데시에서 방을 잡고 움직임을 최소화하고는 글만 썼죠. 그렇게 6개월쯤 있으면 시나리오 한두 편쯤 윤곽이 잡히거나 탈고를 했거든요.
그럴 즈음에 영화 함께 하자며 입국하라고 하면, 한국에 들어오곤 했어요. 그럴 즈음이었어요. 그런 생활이 너무 지치고 암울할 때였는데, 믿던 김감독님의 영화가 중도에 엎어졌어요. 감독님의 최근작들이 연속으로 혹평에 시달린 상황이라, 우리들도 힘이 빠져 있고, 생계 걱정도 해야 할 때였는데 엎친 데 덮친 격이었죠.
당시 함께 일하던 오랜 동료가 대출 문제로 자살을 했어요. 그때 카드로 돌려막기 하고 그랬잖아요. 개인 신용대출이 흔했는데, 급한 김에 그걸로 생활비를 해결하다가 끝내는 사채까지 손을 댔나 봐요. 여러 모로 경제 상황이 나빠지면서 가계 경제가 엉망이 되었던 시절이었어요. 영화를 하던 사람이라면 빚으로 버티거나 집이 좀 풍족하거나 둘 중 하나라는 자조 섞인 농담도 했었잖아요.
그런데 그 선배가 빚을 해결하려다가 횡령까지 한 건데, 그 때문에 영화가 중단되고 말았어요. 장부를 보면서, 모두가 배신감에 슬퍼하면서도 그 사람의 죽음을 외면할 수도 없었어요.
몇몇이 대표로 빈소를 찾았는데, 그 어색한 난감함과 슬픔을 뭐라 표현하기도 애매해요. 착잡하고, 옆에선 원망 섞인 말을 공공연히 내뱉으면서 눈물을 훔치는데, 전 묵묵히 밥만 먹었답니다. 그 상황에서도 배는 고팠거든요. 어쩌면 제 영화가 아니라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미래가 암담한 건 더 심해졌죠. 모든 게 그렇게 끝났어요.
이제 어쩌죠?
이게 다 돈 때문이었죠. 대체 그 숫자가 뭔가 싶기도 했어요. 관념적으로만 보이던 경제적인 숫자가 가장 절실한 실존의 문제가 되었잖아요.
저는 제작 현장을 떠나려고 마음먹었는데, 막상 그렇게 결정하고 나니 그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해졌어요. 영화에 필사적으로 염원을 담을 때가 생각이 났죠.
그즈음 지금 앞에서 카메라를 잡고 계시는 김 선배와 인연이 닿은 거고요. 선배가 진행 중이던 다큐멘터리를 잠깐 도왔던 거죠.
그게 내 분야가 될 거라곤 그때는 예감하지 못했어요.
뭘 만들겠다는 구상보단 그냥 앞에서 누군가 말하는 것을 담담히 듣는 게 좋았어요. 거기에 어떻게 반응해야 한다는 압박도 없고, 누군가 연기를 하는 것에 대한 리액션 없이, 조금 호흡을 길게 두고 그 사람의 발언에 집중하는 순간이 좋았죠.
다큐보다는 인터뷰, 인터뷰보다는 증언의 형식을 좋아했다고 할 수 있어요. 증언이라고 하기엔 좀 그런가요? 신앙적으로 하면 간증, 또는 삶에 대한 고백이라고 하면 적절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