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소설
[목차: 자기만의 방이 없는 죄로]
♬ 회사원 은주
♬ 퇴사
♬ 결혼
♬ 은희의 기억
♬ 이주와 이혼
♬ 은희와 여경
♬ 여경의 마지막 소설
♬ 예상치 못한 사건
♬ 동거
♬ 에필로그
[소개말]
- '자기만의 방이 없는 죄로'는 놀이글 스타일을 적용한 그림 소설입니다.
- 또한 ‘가상 다큐 인터뷰 미편집본’의 형식, 또는 ‘다큐 인터뷰 문체를 적용한 에세이 소설’ 형식을 취했습니다. 감독에게 각 인터뷰 대상자가 인터뷰를 하는 방식을 염두에 두고 내용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 이미지는 모두 고흐의 작품입니다.
- 은주는 이혼을 결심하기까지 마음고생 했던 순간을 복기하며 언급한다. 그리고 이혼의 문제는 곧 다시 사회 생활을 해야 하는 것을 의미했다. 한국으로 들어가는 쪽이 나았다. 무엇보다도 수연이가 한국 입시에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스럽기는 했다. 그래도 수연이를 온전히 키워내고 싶었다. 특히 전 남편에게서 되도록 멀리 떨어지고 싶었다. 그에게 자신이 어떤 의미였는지 곱씹을 때면 화가 불쑥 났다.
그래도 수연이가 있어 가끔은 위로를 받았죠. 하지만 15살인 수연이에게 고민을 공유하기란 어려운 일이었죠. 그보단 아이가 상처받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해야 했어요. 아직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했을 때엔 되도록 수연이가 모르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다 없던 일로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러려면 그 사람이 먼저 그 관계를 멈추어야 했어요. 스스로 이어오던 관계를 알아서 끝맺었다고 해도, 모른 척할 수 있을까 싶은데, 여전히 지속된다면 과연 품위 있게 그 일을 끝내라고 말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죠.
화가 불쑥 솟아오르는 나 자신을 주체할 수 없었거든요. 모든 게 무의미해지는 순간에 나 자신이 너무 한심하고 미웠죠.
전화로 먼 곳에 있는 한국의 친구에게 고민을 털어놓자니 난감했어요. 이런 치욕스러운 일을 상담자의 눈조차 보지 못한 채 그 반응을 애써 상상하며 도움을 청해야 한다는 게 내키지 않았거든요. 일을 해서 잊어야 하는데 그러지도 못하고 집에서 수학 문제를 풀다가, 자꾸 생각이 헛돌았죠.
이 문제도 어쨌든 풀어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려야 했죠.
같은 시간을 지냈건만 기억이란 저마다 달랐어요. 저만의 의미는 누군가에겐 착각의 다른 말이었죠. 그 사람에게 그 시간은 늘 다른 누군가가 애매하게 우리 사이에 끼어 있었던 거죠.
이혼을 결심하기까지는 1년 정도의 시간이 걸렸어요.
이미 신뢰가 무너진 상태였어도 아이를 위해서라도 어떻게든 관계를 회복해보려고 했죠. 그런데 그 사람은 이혼을 하는 것이 맞다고 결론을 내렸죠. 그 사람과 나는 언제부터 회복할 수 없을 만큼 틀어졌던 걸까요?
전 아내의 역할에 큰 결함이 있을 만큼 이기적으로 살지도 못했거든요. 억울했지만, 그 사람은 그냥, 그 여자가 자신을 더 자기답게 만들어준다고만 했어요.
그런 논리가 어디 있죠? 그러면 수연이와 저는 그의 삶에서 뭐가 되는 건가요?
그 사람이 말하더군요. 자기의 삶에서 무언가가 되려고 하지 말라고요. 그렇다면 어째서 제가 그토록 공부를 하고 싶어했을 때는 막았는지 물었었죠. 그 사람은 끝내 대답하지 못했고요. 결국에 자기가 편한 방식으로만 존재해달라는 말을 그토록 교묘하게 꾸며놓은 것 같았어요.
절대로 이혼해주지 않고 피를 말리고 싶은 마음도 들었어요. 별거 생활 동안 그냥 그대로 죽 살면서, 비정상적인 결혼 관계를 유지해서, 그가 부도덕한 남자인 채로 비난 받게 하고도 싶었지만, 사실 유럽에선 불륜과 이혼에 관대한 편이죠.
그래도 자꾸만 내게 익숙한 시선, 당시 그곳에선 있지도 않은 한국 친척들의 시선으로 나 자신을 옭아맨 것일지도 모르죠. 무엇보다 수연이가 학교를 옮겨야 하는 현실적인 문제도 있었죠.
“이혼이 무슨 자랑이라고! 남편 간수 하나 제대로 못해서, 나 원.”
만일 이혼을 할 경우 한국에 들어가야 했죠. 제가 일을 다시 시작해야 하니, 아무래도 여러 모로 한국에 들어가는 게 나았죠. 아이가 독일에서 공부하길 원한다면, 나중에 유학을 다시 오는 방법도 있으니 한국으로 들어가는 편이 훨씬 나아 보였어요. 독일에 계속 있으려면 아무래도 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데, 당시엔 절대로 그러고 싶지 않았죠.
이미 마음이 떠난 사람을 껍데기로 붙들면서 복수를 한들 내 마음만 상할 뿐이었죠. 딸아이도 상황을 눈치 채고는 사춘기를 호되게 보냈어요. 가뜩이나 적성에 맞지도 않은 클라리넷 공부를 하다가 다 정리할까 갈등하던 때였죠. 학교 성적도 우수한 편이었으니, 한국 고등학교 공부를 따라가기엔 늦지 않다고 판단했죠. 더구나 아이는 독일어와 영어를 유창하게 했으니, 수시 특례전형도 고려할 수 있었고요.
양육비 문제는 그 사람이 대학교 학비까지 대주고, 아이 결혼 자금까지 주는 것으로 합의했어요. 당연히 그 사람이 원하는 이혼이었으니 재산 분할도 원활히 진행된 편이고요. 그 사람은 귀책 사유에 따르는 일반적인 수준에서 합의하고자 했죠. 상속받을 재산이 많았으니 그동안 결혼생활 때 일군 재산에 크게 집착하지 않는 듯했죠.
그러니 좀 씁쓸하더라고요. 나와 보낸 모든 시간 자체가 그런 정도의 비중이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결혼 생활 동안 온통 허무하게 시간을 내보낸 것 같았고, 낭비해버린 시간만큼 빚만 잔뜩 남은 것 같았어요.
물론 정신을 차리고 냉철하게 보면 세월은 부정적인 것만 주진 않았죠. 우선 수연이가 있었고, 저 자신의 무언가를 이룰 기회는 줄어들었지만, 어쩌면 그 대신 제가 선택한 작은 행복이 있었죠.
그것이 비록 다 무너졌고 허무한 것일지 몰라도, 그렇다고 그 순간에 제가 행복하지 않았던 것도 아니죠. 그것이 나만의 것이었어도요.
엎질러진 순간이 있기 마련이고 언제나 그런 순간에 대하여 후회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그 시간을 살아왔고 그것을 바탕에 두고 살아갈 수밖에 없죠.
조롱받을 것 같은 우스운 순간이라도 어쨌든 회계해서 슬픔의 손익을 맞추어 놓아야, 비로소 그것을 개선할 무언가를 할 수 있었어요.
그나마 다행이었을까요. 수연이도 저와 함께 살기를 원했죠. 그 사람은 그 상황을 인정하면서도, 어차피 합의하지 않더라도 양육권 싸움에선 불리할 것을 알았죠. 제가 일을 하지 않고 있더라도, 충분히 일할 수 있는 상황이고, 현재 다른 여건이 나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었으니까요. 무엇보다 불륜은 우리나라에선 치명적이죠. 아이는 친엄마가 키우는 게 낫다는 분위기도 한몫 했을 거고요.
문제는 양육비 지급 건이었는데, 처음에는 이혼을 위해 합의를 하지만, 이행하지 않는 경우도 많으니까요. 특히 대학교 학비까지 대겠다는 건 좀 더 지켜봐야 할 일이었지만, 그런 점에선 믿는 편이었어요. 지금까지 알던 그 사람이라면 약속을 잘 이행하는 편이었으니까요.
그 사람으로서도 수연이가 대학은 미국에서 다녔으면 하는 바람이 있더라고요. 혹시나 자신이 독일에서 계속 근무해야 할 경우라면, 독일 대학도 괜찮다는 선택지를 염두에 두고 있더라고요. 결국 아이를 곁에 두면서 경제적 지원을 하고 싶다는 것이었는데, 제가 용납할 일은 아니죠. 그 사람 좋을 일만 하는 호구가 되고 싶진 않았죠.
다 아이 교육을 위해서…
다만 아이의 장래를 위해서, 언젠가 아이도 어른이 될 테고, 그때 수연이가 자신의 미래를 개척해야 할 때라면 아이의 결정에 따를 수밖에 없겠죠. 그건 정말 내 영역을 벗어난 것이라 생각하죠. 지금 아이가 18살인데, 일단은 한국 학교로 편입하는 쪽을 택한 것이고요.
그 사람은 미국 대학으로 오라고 은근히 압력을 넣곤 있지만, 곧 재혼할 사람이 딸아이에게 제대로 신경이나 쓸 수 있을지 걱정스럽죠. 괜히 상처 주지 않을까 싶고요. 아이가 원하지 않는다면, 굳이 미국으로 보낼 생각은 없어요.
그 사람이 정말 수연이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제대로 해주지 않더라도, 일단 제가 일을 하고 있으니까요.
딸아이가 한국에서 대학을 마치는 쪽이 저로선 좋아요. 미국에 가고 싶다면, 그것도 좋고요. 그때는 이미 어른일 테니까요. 누구도 강요할 수 없어요.
그 사람이 수연이게까지 못난 아빠로 기억되고 싶을지는 두고 봐야죠. 최선을 다하는 아빠의 모습으로 남아주면 좋겠어요. 제게는 그러지 못했지만요.
사랑이 남은 거냐고요? 그럴 리가요! 합의된 내용을 이행하지 않는 책임에 대한 이의제기는 있을 것 같아요.
그 사람이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고, 나의 어떤 면을 어째서 미워했던 것인지는 관심 없어요. 이제 와서 제가 그런 걸 이해하려고 애쓸 필요는 없으니까요.
퇴근하고 집에 와서 아이의 일정을 체크하고, 남은 시간에 식탁에 앉아 수학 문제를 푸는 순간이 다시 즐거워졌거든요.
한국 아이들은 이렇게 재미있는 걸 정말 재미없게 푸는 법을 훈련하고 있으니, 애호가로서 좀 아쉬울 뿐이죠.
수연이도 수학은 싫어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