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소설
[목차: 자기만의 방이 없는 죄로]
♬ 회사원 은주
♬ 퇴사
♬ 결혼
♬ 은희의 기억
♬ 이주와 이혼
♬ 은희와 여경
♬ 여경의 마지막 소설
♬ 예상치 못한 사건
♬ 동거
♬ 에필로그
[소개말]
- '자기만의 방이 없는 죄로'는 놀이글 스타일을 적용한 그림 소설입니다.
- 또한 ‘가상 다큐 인터뷰 미편집본’의 형식, 또는 ‘다큐 인터뷰 문체를 적용한 에세이 소설’ 형식을 취했습니다. 감독에게 각 인터뷰 대상자가 인터뷰를 하는 방식을 염두에 두고 내용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 이미지는 모두 고흐의 작품입니다.
- 여경 팀장의 정보가 담긴 대목이다. 은희와 여경은 엇비슷한 지향점 덕분에 친해진다. 여경은 유튜브 사연 소개 프로그램의 에이스이면서, 틈틈이 소설을 쓴다. 그의 소설은 그의 사연 창작과는 달리 B급적으로 독특한 면이 있다.
여자였어요. 83년생. 저보다 나이가 어리지만, 이 나이 때에는 그런 게 무슨 소용 있나요? 능력 있거나 오래 다닌 사람이 상사가 되는 거죠. 부하직원을 자기보다 나이 어린 사람으로 두려는 경향도 있다 보니, 상사가 어리면 애초에 나이 많은 사람들이 기회조차 못 잡는데, 여경 씨가 그런 걸 별로 신경 쓰지 않은 성품인지라 다행이었죠. 여경 씨는 팀장님 이름이에요. 처음엔 팀장님이라 부르긴 했지만, 나중엔 사적으로 친해졌죠.
여경 팀장은, 아니 여경 씨는, 어느 날 술자리에서 둘이 만났을 때가 있는데 그냥 직함을 떼어도 된다고 하더군요. 그런 경우는 흔하진 않죠. 사회생활을 하면서 만난 사람끼리는요. 저도 그곳에서 일하긴 했어도 꾸준히 일한 건 아니고 일을 적게 받아서 일정 닿는 대로만 일했기 때문에 비교적 편하게 여경 씨를 대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마치 얼마 전에 알게 된 동네 후배처럼요.
[서술자 은희, 75년생]
“여경 선배, 아니, 후배님!”
솔직히 동네 후배라고 했지만, 일당백을 하는 그녀를 보고 있으면 선배라고 부르고 싶었죠. 그런 에너지는 미래의 힘까지 끌어다 써야 가능할 것 같았죠. 그녀는 PD 역할도 직접하고 작가 역할도 하면서 관리자 몫까지 해냈죠. 가끔은 자신이 직접 DJ 역할도 했어요. 그곳에 아나운서 지망생들도 훈련 차원에서 아르바이트 비용만 받고도 자기 목소리를 내보내려고 지원했었는데, 가끔 수급이 원활하지 않을 때가 있었거든요.
사실 여경 씨는 사연 유튜브 시리즈의 총책임자 비슷한 역할을 했어요. 힘에 부쳐서 여럿이 나누고, 연배 많은 선배가 전체를 관장하면서 최종 결정을 했지만 대개 여경의 감각을 전적으로 신뢰했거든요.
그만큼 은근히 구독자수가 많아서 수익이 나오는 콘텐츠였어요. 사람들이 그렇게나 많이 남의 사연에 관심 있는 줄 미처 몰랐죠. 일을 하기 전까지는요. 남의 사연을 1시간씩이나 참을성 있게 듣고 있다니 지금 생각해도 좀 신기해요.
“여경 팀장님, 이 원고, 후배님이 고른 거 맞죠?”
여기서 여경 씨에 대해 이야기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네요.
그녀는 시선을 의식하지 않았죠. 아니다, 오히려 더 의식했다고 해야 할까요? 여자는 어때야 한다는 말이 있으면 기를 쓰고 그와 반대로 행동하려는 듯했어요. 처음 만났을 때 장난으로 낚지를 한 마리 통째로 먹을 수 있다고 하질 않나,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될 일, 남성 문화의 폐단을 미러링하는 것도 아니고, 뭔가 뒤죽박죽 반발하려는 모습이 조금은 어린 아이 같은 면도 있었죠.
네, 비혼이었어요. 나중에 죽고 싶을 때가 되면 날짜를 정하고 그때까지 여행을 하면서 모든 재산을 탕진하고 싶다더군요. 그 재산을 나에게도 달라고 농담처럼 말했는데, 여경 씨는 시원하게 ‘그러겠다’고 하더군요. 물론 그다음 날에는 기억하지 못할 약속이었지만요. 여자 둘이서 그렇게 술을 많이 마셔보기는 처음이었네요. 그만큼 유쾌한 사람이기도 했어요. 엉뚱하지만요.
여경 씨는 소설가가 되기를 원했어요. 그런 면 때문에 제게 호의를 보여준 것이 아닐까 싶어요. 우리는 나이가 들어 업무로 만난 사람들치곤 꽤 깊게 사적인 취향에 관해 소통했거든요.
물론 기업에선 영화보기 동호회라든지 독서 모임에서도 취향에 관해 자신의 견해를 밝히곤 한다지만, 우리가 나눈 내용엔 전문가가 되고자 하는 사람의 열망이 담겨 있었죠. 인터넷 소설 창작 모임 같은 거 있잖아요.
“이건 소설이 아니야! 다시 써! (딸꾹)”
대학 문창과에도 그런 모임이 있고요. 당연히 극작과나 영화 연출 분야에도 이러한 창작 합평 모임이 있는데, 꼭 그런 모임을 둘이서만 하는 것 같았죠. 분과는 시나리오와 소설로 서로 달랐지만, 어쨌든 서사를 창작하려는 본질은 같았으니까요.
처음에는 그냥 좀 엉뚱해 보이는 장르소설 같았죠. 그녀의 모든 소설이 다 그랬다는 건 아니지만, 대략 15편 정도의 단편소설을 읽어본 것을 추려보면, 전체적으로 이야기의 공통분모가 있었죠.
“나는 분명 결말부까지 살지는 못할 것이다. 그녀의 소설 속에 사니까.”
“한 사람을 죽이기 전에라도 사과나무를 심어야지.”
표면적인 공통 설정이 있다는 점에서 장르적이라고 생각했어요. 우선 안티히로인인 케이라는 인물이 보였고요. 여성 혁명을 꿈꾸지만 사적 복수를 할 수밖에 없는 한계 안에 갇힌 인물이었죠.
어찌 보면 자경단, 오대악마 처단자, 암살 청부업자, 연쇄살인마일 수도 있는데, 처음엔 그런 인물에게 체 게바라 식으로 ‘불가능한 꿈을 품자며 머리는 차갑게, 가슴은 뜨겁게 유지하자’라고 한 설정이 조금 과잉이 아닐까 싶었죠.
주인공이 청부업자란 점을 보면 레옹 같기도 하고, 내용으로 보면 성별이 반전된 서사, 약간의 신선한 해석으로 보면 적당할 듯했어요.
하지만 제 취향이 아니라 조심스럽게 평가했는데, 하필 전부 낙선작이라 하더군요. 가장 좋았던 성과가 최종심의에서 2등이라고 하니, 당시 1등작은 어떤 작품이었을지 궁금하기는 했어요.
솔직히 어떤 작품이 2등을 했다는 건지 몰랐는데, 그렇게까지 이해 못할 일인가 싶기는 했어요. 왜 그녀의 글이 제 취향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보았죠.
케이 때문일까요? 그녀는 자신의 사적 복수를 혁명이라 불렀고, 스스로 폭력으로 쟁취하지 않는 한 아무도 우리에게 선의를 베풀진 않을 거라 항변하는 듯했어요.
그것까지는 이해할 만하지만 국가 전복, 무력 쟁취 등은 오래 전에 이데올로기적 투쟁의 소모성을 드러내는 거잖아요.
또 그런 거대 서사를 조금은 엉뚱한 설정으로 보여주는 것 같아서, 공감대가 잘 형성되지 않는다고 해야 할까요. 아니면 절실함이 느껴지지 않았다고 할까요.
케이는 절실했던 걸까요? 그를 도와줄 사람을 더 모았다면 어땠을까요?
어쨌든 여경 씨의 소설에선 고추 달린 녀석들 중 그걸 무기 삼는 자들은 모두 죽는다고 봐야 해요. 이에는 이, 눈에는 눈으로 꽤 잔인하게 죽기도 하는데, 희망이 남는 설정도 있긴 해요. “청양 고추는 슬픔에 젖어 고향으로 내려갔다”라는 대목이죠.
그런 작품이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게 조금 신기하기도 했어요. 나쁘다는 의미가 아니라, 심사위원들이 좀 보수적으로 교양을 찾곤 하니까요. 요즘 확실히 ‘트렌드’가 달라지긴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