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소설
[목차: 자기만의 방이 없는 죄로]
♬ 회사원 은주
♬ 퇴사
♬ 결혼
♬ 은희의 기억
♬ 이주와 이혼
♬ 은희와 여경
♬ 여경의 마지막 소설
♬ 예상치 못한 사건
♬ 동거
♬ 에필로그
[소개말]
- '자기만의 방이 없는 죄로'는 놀이글 스타일을 적용한 그림 소설입니다.
- 또한 ‘가상 다큐 인터뷰 미편집본’의 형식, 또는 ‘다큐 인터뷰 문체를 적용한 에세이 소설’ 형식을 취했습니다. 감독에게 각 인터뷰 대상자가 인터뷰를 하는 방식을 염두에 두고 내용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 이미지는 모두 고흐의 작품입니다.
- 은희는 여전히 영화 쪽 일에 미련이 남았지만 생계를 무시할 수 없다. 다양한 일을 전전한다. 그러면서 영화 쪽으로 다시 진입하기 위해 계획을 세우지만, 업무에 짓눌리고 나면 다른 일을 할 여력이 남지 않았다. 다시 시도한 작업에서도 쉽사리 성과가 나지 않는다. 이즈음 영화를 할 대안 작업으로서 독립 다큐멘터리 작업에 관심을 보인다. 은희가 인터뷰를 좋아하는 이유도 그 작업과 맞는 면이기도 했다. 한편 생계를 전전하다가 마침 유튜브 사연 연출부로 들어가게 되고, 거기서 여경 팀장을 만나는데...
♬ 은희와 여경
영화 연출 쪽 진로가 닫힌 것 같은 기분이 들었을 때 무기력해져서는 한 달 정도 미국의 언니 집에 가서 신세를 졌죠. 이곳저곳 미국 여행도 다니면서요. 형부랑 살가운 관계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불편한 관계도 아니었으니, 그럭저럭 한 달 정도는 신세를 질 수 있었어요. 여행을 다니다 보면 베이스캠프와 같은 역할만 하니, 매일 집에 상주해 있는 것도 아니었죠.
언니는 그때 바빴어요. 아이를 돌보면서, 학교를 다니고 있었으니까요. 저도 수연이를 가끔 맡아주긴 했는데, 여행 다닐 때는 어쩔 수 없었죠. 여행하면서 미국의 풍경을 카메라에 많이 담아두었죠. 자연 다큐멘터리를 찍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 아름다운 곳이 많았어요.
그렇다고 자연 다큐멘터리를 찍으면서 살 순 없었지만요.
드라마 쪽이라면 모를까, 방송국에 취직해서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면, 아무래도 쉽지 않은 길이었죠. 여전히 극영화 연출에 미련이 있었고요. 시나리오는 놓지 말아야겠다는 다짐도 했었지만, 막상 살다 보니 시나리오를 제대로 쓸 시간이 없더군요.
또 직장에서 업무에 떠밀리다 보면, 간신히 확보한 여유 시간에도 창작의 감각이 회복되질 않았어요. 출판사나 영화 기획 쪽에서 일하면 조금 나으려나 싶었지만, 역시 일은 일이더군요.
“와,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방전.”
“작가나 PD나 모두 죽을 맛이지요. 시청률 안 나오면 특히 힘들죠.”
라디오 방송 작가로 가장 길게 일한 것 같은데, 한 5년 일했나, 그때는 정말 죽는 줄 알았죠. 쉴 새 없이 농담을 생각하고 아이디어를 발굴하면서, 세간의 유행도 체크해야 했죠. 사연을 많이 읽는 건 좋았지만, 나중에 작품의 소재가 될 만큼 긴 호흡을 지닌 사연은 그리 많지 않았죠.
라디오 방송 일은 재미있었지만, 몸도 마음도 다 지치고 말았을 때였어요.
오한이 드는 기분, 나 뭐하고 사는 거지?
글병이 든다고 하죠? 저도 그런 게 있었어요. 시나리오도 시나리오지만, 영화에 대한 미련을 떨쳤다고 생각하다가도 가끔 강렬하게 갈증이 남았으니까요. 그때 영화 쪽에 도와줄 일이 생겨 참여하게 되었죠. 단발성이라 계속 이어지진 않았지만, 인터뷰를 따는 일이었어요. 다큐멘터리 작업하시는 선배, 지금까지 이어지는 인연이 그때부터였죠.
2017년 겨울쯤이었나, 네, 그랬을 거예요.
그때 인터뷰 영상을 따는 것이었는데, 시간이 남을 땐 집에서 시나리오 작업을 하면서 아르바이트 형식으로 틈틈이 영상을 따다 보니, 이게 또 제대로 된 말을 뽑기 위해 오래 응시하듯 카메라를 두고 말을 이끌어내는 재미가 있더라고요.
“준비 마칠 때까지 기다릴게요. 찬찬히 말씀 하시면 돼요.”
[은희, 75년생]
“프레임 안에서 이야기가 흘러가지 않는다는 점에서 분명 정적이고 아무 일도 없지만, 시간이 납작해져 있다가 말을 통해서 이야기가 시간을 입고 출렁이며 물결처럼 입체감과 방향감을 지닐 때, 묘한 여운이 남았죠. 말은 종종 정돈되지 않고 어지럽지만, 그 속에 다양한 정보가 겹쳐 있다가 찬찬히 퍼지면서 그 핵심이 드러나거든요.”
카메라를 응시하며 인터뷰하는 행위는 때로는 변명이자 변증이고 또 때로는 진술이고 고백이었어요. 그리고 이야기였어요.
그런 인터뷰 영상을 만들다 보니, 사람들의 이야기를 좇아가는 것, 나의 상상이 아니라, 무수한 경험의 파편을 성실히 따라가서 조합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물론 그건 극영화 작업과는 달랐죠. 인내심을 요구하고, 나를 내려놓아야 할 작업일 수 있었죠. 무엇보다 돈이 안 되는 작업이니 계속 생계의 압박을 받으며 부업을 병행해야 할 것 같았어요. 또 달리 생각해보니, 발품을 팔면 카메라 하나로도 유의미한 독립 작업이 가능할 것 같은 대안적 희망도 생겼다고 해야 할까요.
그러한 생각이 그때 당장 표면으로 선명하게 드러난 건 아니었죠. 일단은 시나리오를 쓰는 일에 더 신경을 쓰고 있었고, 월세를 내려면 돈이 필요했어요.
카메라 뒤에서 인터뷰 대상자의 말에 귀 기울이면서 ‘아직 영화 작업을 하고 있다’는 잠깐의 기쁨으로 현실의 고단함을 달랠 수 있었죠.
“할머니, 어린 시절에 어떤 꿈이 있었나요?”
사실 작업한 시나리오 투고작들은 상업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거절당하고 있었죠. 감독님들도 몇 번의 흥행 실패를 한 시나리오 작가의 작품에서 흠을 찾는 것이 더 쉬웠던 것 같고요.
몇 단계를 거치다 보면 원래 시나리오 내용이 너덜너덜해졌죠. 도저히 내 작품처럼 되지 못하죠. 심지어 내 이름조차 빠지는 경우도 생기고요. 그런 불미스러운 일이 있더라도, 영화판에 다시 뛰어들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때였죠. 힘이 빠져 있었죠. 내 시나리오의 인물들도 다 풀이 죽은 듯했죠. 인터뷰를 해주던 사람들의 사연보다도 힘이 없었죠. 작위적이라 느껴졌어요.
그즈음 우연히 유튜브 제작회사에서 사연 각색 담당자를 모집하는 걸 알게 됐죠. 여러 유튜브를 직접 운영하기도 하고, 의뢰를 받으면 유튜브 런칭을 해주는 곳이었죠. 일부 유명인도 이 회사에 의뢰해서 유튜브를 런칭했고요.
그곳에서 사연 소개 유튜브 팀의 업무를 진행했어요. 사연 소개 컨셉트론 제법 잘 되었는지 3개의 유사 유튜브 채널을 동시에 운영하더라고요. 밀려드는 사연을 각색하여 1시간 정도로 방송할 수 있게 해주는 거였죠.
“오늘도 줄기차게 읽어볼게요. 여러분의 사연을요.”
“이건 뭐. 공장에서 찍어내듯이 쓰라는 거네요.”
어찌 보면 라디오에서 각색하던 내용을 좀 길게 가져가는 것이었죠. 짧은 기간 내에 흥미를 가질 만한 사연 소개글을 작성해야 한다는 것이 함정이라면 함정이었죠. 처음엔 어떻게 밤을 새워 해보겠는데 일주일에 2~3개씩 뽑으라고 하니 한계에 부딪히긴 했어요.
그래도 여러 사람의 희한한 사연을 알 수 있어 공짜로 취재하고 돈 버는 거라고 스스로 합리화했답니다. 글 써주고 이 정도 수입을 올리긴 어려우니 생계를 위해 필요했고요.
급여가 높진 않았어도, 끊이지 않는 작업 덕분에 다른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아도 되었거든요. 일주일에 한 번, 회의 때 출근하는 것을 빼면 대부분 재택근무였고요. 간혹 보강 인터뷰를 해야 하는 경우도 있는데 주로 통화로 해결했죠.
아예 창작으로 사연을 쓰는 경우는 거의 없었어요. 그건 주로 팀장님의 몫이었죠. 일을 적게 배당 받는 대신에 일주일 중 시청률이 느슨해질 즈음 투입하는 자극적인 콘텐츠를 담당했죠. 콘텐츠를 듣다 보면 막장 드라마를 연상하게도 했는데, 콘텐츠가 과격한 만큼이나 저로선 팀장님에 대한 첫인상이 좋진 않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