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소설
[목차: 자기만의 방이 없는 죄로]
♬ 회사원 은주
♬ 퇴사
♬ 결혼
♬ 은희의 기억
♬ 이주와 이혼
♬ 은희와 여경
♬ 여경의 마지막 소설
♬ 예상치 못한 사건
♬ 동거
♬ 에필로그
[소개말]
- '자기만의 방이 없는 죄로'는 놀이글 스타일을 적용한 그림 소설입니다.
- 또한 ‘가상 다큐 인터뷰 미편집본’의 형식, 또는 ‘다큐 인터뷰 문체를 적용한 에세이 소설’ 형식을 취했습니다. 감독에게 각 인터뷰 대상자가 인터뷰를 하는 방식을 염두에 두고 내용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 이미지는 모두 고흐의 작품입니다.
- 은주는 미국에서 수학을 공부하다가 기어이 수학과를 전공하고 석사 학위까지 받는다. 하지만 박사 학위를 고민할 무렵, 남편은 독일로 발령을 받는다. 그의 바람 때문이기도 했다. 수연을 다국적 경험을 하게 하고 싶다는 명분도 있었다. 은주로서는 망설인다. 겨우 영어로 소통하며 수학 공부에 매진하는 데에 성공했는데, 다시 독일까지 가서 그럴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남편은 그녀에게 수연이 엄마로서의 의무를 기억하라고 조언한다. 그런데 독일에서 남편의 오랜 비밀을 알게 되는데...
♬ 이주와 이혼
2014년에 독일로 이주해야 했어요. 그 사람이 그쪽으로 파견을 가야 했거든요. 독일의 한 부동산 회사와 합병 문제 때문이었는데, 이 참에 가족들이 유럽에서 살기를 원했죠. 그 사람이 어렸을 적에 미국에 살기도 했지만, 유럽에서 산 시간이 더 많았거든요.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영국을 옮겨 다니며 살았거든요. 대학에 오기 전까지 그랬대요.
그래서 수연이에게도 유럽에서 살 기회를 주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저로선 걸리는 문제가 하나 있어서 처음엔 내키지 않아 했어요. 아이를 키우다가, 수학에 빠졌다고 했었죠?
30대가 되어서 수학을 취미로 하다 보니, 또 다른 맛이 있었어요. 결국 미국에서 수학과를 진학했어요.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영어에 감각이 있는 편이라 다행이었죠.
또 수학이라는 학문이 영어를 유창하게 잘할 필요까진 없고요. 수업을 알아듣고 어느 정도 소통이 가능하면, 아무래도 응급한 소통을 필요로 하는 의학이라든지 정교한 언어적 표현이 관건인 철학이나 법학과 달리 큰 문제는 없어 보였죠. 실제로도 그랬고요.
거기서 4년제 대학을 마치고 석사 과정도 밟았어요. 박사 과정까지 밟고 싶었죠. 제게도 무언가 몰입할 일거리가 필요했거든요. 그 사람도 처음엔 수연이 공부를 맡아주면 되겠다 싶었는지 수학 전공을 하는 것에 호의적이었어요.
하지만 제가 수학이란 학문에 너무 깊이 몰입하니까, 서서히 불편해하는 것 같았어요. 석사학위까지 받으려 하니까 급기야 제동을 걸기도 해서, 며칠간 관계가 냉각된 적도 있었죠.
요지는 간단해요. 그 정도면 충분하다는 거죠. 수학으로 장사를 할 것도 아니고, 돈이 나오는 일도 아닌데 그런 일에 그렇게 몰두하느냐는 거예요. 수연이를 생각하라는 거였죠. 수연이 수학 가르치는 것을 기대했는데, 정작 수학 논문 읽는 데에 푹 빠져서는, 아이 돌볼 생각도 등한시한다는 게 그 사람의 논리였죠.
“은주야, 수연이 엄마라는 사실을 잊지 마.”
어쨌든 그 때문은 아니지만 독일에 가야 했어요. 수연이도 그걸 원했거든요. 친구들이 있는 미국에 살고 싶어 하면서도, 또 그만큼이나 유럽이라는 공간에 대한 호기심도 컸던 거죠. 몇 년 살다 오면 된다고 그 사람이 설득해놓았거든요. 저도 어쩔 수 없이 박사 과정을 밟으려면 독일에서 활로를 찾아야 했어요.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그 뜻을 이루진 못했어요. 영어까지는 어떻게 해보겠는데, 독일어까지 익히면서 수학과 박사 과정을 밟는다는 건 벅찼어요. 원하던 대학 입학에 실패한 것도 한 원인이었고요. 또 수연이가 자라고 있었고, 그 사람도 원하지 않는 일이었죠. 그렇게 저를 합리화했어요. 이만하면 충분하다고요.
물론 식탁에서 가만히 앉아 수학 문제를 풀다 보면, 문득 그때의 역경을 뚫고 수학 연구소에 취직해서 나만의 연구 과제에 몰두하는 순간을 잠깐씩 그려보곤 해요.
하지만 수학과 박사 학위가 있든 없든 여전히 저는 수학을 풀고 있죠. 여전히 못 푼 문제라면 제 몫이 아니라 생각하면, 차분해져요. 변하는 건 없다고, 스스로를 다독이죠. 이런 것도 위로라면 위로겠죠. 바꿀 수 없다면, 제 마음을 바꾸곤 했어요. 오래 전부터.
숫자는 늘 변함없는 그 값으로 존재하지만, 그것과 관계 맺는 우리의 마음은 늘 달라요. 마음먹기에 따라 숫자가 어떻든 별 상관없이 우리 스스로 충만해질 수 있다고 믿었죠. 사람은 숫자와 달리 선명하지도 못하고 확정적이지도 못하니, 그게 오히려 괜찮은 면도 있었어요.
물론 예전엔 불편하게만 여겼죠. 삶의 애매함이요. 선명하지도 않고 확정적일 수도 없으니까요. 그래서 정확해보이는 수학에서 위로를 받은 건데, 삶에서는 정확한 규칙을 아는 게 좋지만은 않을 수도 있죠.
한때는 삶의 정답을 알고 싶었는지도 몰라요. 소수와 소수 간의 규칙인 리만 가설을 풀려는 것처럼요. 그런 게 있다면 필즈상을 받는 게 당연한 거겠죠? 이것도 40세 전에 풀어야 할까요? (웃음) 이런 난제를 풀어보고 싶다는 몽상을 했었죠.
어쩌면 밝혀내지 않아도 될 규칙이 있을지도 몰라요. 우주의 비밀이 담겨있지는 않을까 궁금해지는 게 소수의 법칙이고, 그것과 비슷한 인생의 법칙도 수식화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걸 몰라도 우리는 살아갈 수 있죠. 그걸 안다면 뭐가 더 나아지는지 알 수 없으니 오히려 다행이에요.
알고 나면 비극일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요, 어쩌면 이건 밝혀내지 못했기 때문에 밝혀내지 못한 사람들이 둘러대는 핑계겠죠. 비극이든 아니든 원래 있던 숫자의 규칙이 사라지거나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오히려 비극을 예측할 수 있다면 뭐라도 할 수 있을 테니, 아는 게 낫다는 생각도 들죠. 그래서 우리는 학문을 포기하지 못하고 지식을 얻으려 하는 거겠죠.
가끔은 생각해요. 소수와 같은 규칙을 안다면 인간사의 돌출적 상황도 완벽히 예측할 수 있을까 하고요.
당연히 쉽지 않겠죠. 사회과학으로도 어느 정도의 인과관계를 알 수 있다는 믿음으로, 전혀 관련 없어 보이는 숫자들을 조직하여 통계도 만들고 확률도 추출해내서는 그걸 벗어나려는 예외의 시도조차, 그러니까 예를 들어 사람의 심리조차 모종의 규칙 속에 갇혀 있다는 심증을 강화해나가지만, 늘 어처구니없고 예상하지 못한 돌출적 순간을 맞이하곤 하니까요.
다 되었다 여겼는데, 막판에 왜 그런 결과값이….
마치 삶을 규칙화하려는 모든 시도를 가볍게 비웃듯이 예외의 숫자 역시 그만큼 쌓이죠. 우리는 정말 그 이상은 알 수 없죠.
처음에는 순수하게 호기심을 따라가기 마련이에요. 직관적으로 그냥 찾는 거죠. 그런 현상에 대해서요. 우리가 삶을 배워 나가듯이요. 2, 3, 5, 7, 11, 13, 17, 19.
초반엔 ‘1말고 오직 자기 능력으로만 해결하는 속성의’ 소수가 촘촘했어요.
그러다 조금씩 소수 간의 거리는 벌어지고 나중에는 도대체 소수가 있기나 한 것인지 의문이 들만큼 찾기 어려워지죠. 오죽하면 가장 큰 소수를 찾으려고 상금을 걸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그조차 규칙이 되지 못하죠. 이제 없다 싶을 만하면 갑자기 뜬금없이 소수가 여럿 드러나죠. 규칙이란 걸 찾는 게 부질없어 보이고, 그렇게 숫자의 우주를 떠돌다 가끔 소수가 발견되는 순간을 목도할 뿐이에요.
그러한 사건이 생길수록 소수는 더 거대한 모습으로 내 앞에 당면해 있고요. 점점 더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커지는 소수를 대하다 보면 그걸 거대한 압박으로 맞이하느냐, 그저 담담하게 대면하느냐 하는 태도의 차이만이 있을 뿐이죠. 늘 그런 사건을 대면할 때는 차분해지기 어려웠어요.
“거의 다 풀었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풀 수 없는 문제였어!”
그래도 순수한 숫자일 때는 흥분으로 가득하긴 했어요.
인생의 사건이라면 즐거운 흥분만으로 가득하긴 어렵겠죠. 그 사람이 바람을 피운다는 것을 눈치 챈 것은 독일에 간 지 4년 즈음의 일이었어요. 어쩌면 독일에 온 것도 미국에서의 관계를 정리하려던 게 아닐까 싶은데, 사람 일이라는 게 마음처럼 되긴 어렵죠. 같은 회사 동료였던 그녀와는 다시금 관계가 이어지고는 그렇게 유지되었던 거죠.
제가 알게 된 건 그들이 재회하고 나서 독일과 미국을 오가던 어느 시점이었어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군요. 수연이의 엄마이자, 불륜을 저지른 한 사람의 아내라는 역할 사이에서 모든 게 버거웠죠. 저는 그에게 그래도 되는 만만한 사람이었던 걸까요?
처음엔 현실을 부정했어요. 자존심도 상하고, 모든 게 부질없어 보였죠.
“날 선 그림자가 과도처럼 놓여 있었다. 작아서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지만, 크나큰 타격을 줄 수도 있었다. 마음은 갈 길을 잃은 듯 구석에 웅크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