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brunch
언제나 그 자리에.. 7
복사꽃이 질 때
by
봄비가을바람
Dec 19. 2022
"복사꽃이 참 흐드러지게도 피었네. 그해 봄에도 이렇게 예뻤지."
여울은 우희 할머니 댁 처마 마루에 앉아 마당가까지 꽃가지를 늘어뜨려 분홍 그늘 만든 양을 보고 있었다.
"밤새 눈물바람에 눈이 퉁퉁 부어 제대로 고개도 못 드는 새색시가 또 어찌나 또 곱던지. 석준 오라버니는 이리저리 예쁜 색시 때문에 하루 종일 헤벌쭉해서
정신없었지."
우희 할머니는 여울의 할머니, 할아버지 혼인날을
어제 일처럼 이야기하고 있었다.
"연희는 10년을 매일 밤 울며 잠자리에 들었어. 그리고 석준 오라버니는 연희 네, 연희 방 불이 꺼져야 밤을 새웠고. 참 못 할 일이었지. 그 전쟁으로 온 마을 사람 하나하나에 잠 못 드는 등불이 있었어."
여울은 이렇게 복사꽃이 분홍 천지를 이루는 마을에 화사한 겉모습과는 다르게 슬프고 쓸쓸해 보였던 이유를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한 사람을 기다리며 눈물 흘리던 두 사람은 이제 세 사람이 함께 저기 하늘 끝 어디쯤에서 우희 할머니가 앉아 있는 마루 끝 복사꽃을 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한 달전쯤 막 복사꽃이 봉오리를 맺을 즈음 우희 할머니의 다급한 연락을 받고 여울의 가족이 부랴부랴 내려왔다.
그리고 여울의 할머니는 복사꽃이 활짝 핀 것을 못 보고 우진 할아버지와 석준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새벽길을 떠났다.
"연희야, 오빠 손 놓지 말고 꼭 잡고 복사꽃길 따라 고이고이 잘 가라."
우희 할머니는 그렇게 친구와 마지막 인사를 했다.
복사꽃이 필 때까지, 1년의 기다림은 70년의 기다림으로 늘어났다.
안타까운 시간이 가고 또 가고 속수무책으로 소식 없는 기다림은 마음속이 모두 문드러지고 새카맣게 타 버린 후에야 그 기다림이 끝이 났다.
누가 강요한 것은 아니나 마음과 마음이 맺은 언약은 쉽게 저버릴 수 없었다.
지켜보는 이도 함께 아픈 기다림이 결국 저 세상에서 이루어졌지만 몸이라도 귀향했으니 그것만으로 된 것일까.
아직도 기약 없는 기다림으로, 이미 기다리는 이가 없는 귀향을 위해 이 세상 어딘가를 헤매고 있을 그분들의 귀향을 진심으로 빕니다.
<출처/Pixabay>
끝..
keyword
눈물
단편소설
기다림
47
댓글
6
댓글
6
댓글 더보기
브런치에 로그인하고 댓글을 입력해보세요!
멤버쉽
봄비가을바람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가을이 왔어요> 출간작가
17년 차 한국어 선생님이며, 등단 시인입니다.. <시간보다 느린 망각>시산문 출간
구독자
748
팔로우
월간 멤버십 가입
월간 멤버십 가입
작가의 이전글
한겨울이 왔네.
299번째가 준 선물
작가의 다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