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엄마의 꿈
매번 마주치는 카멜레온 같은 엄마의 모습으로 인해, 종종 엄마가 언니와 내 엄마가 아니었다면, 어떤 모습이었을까?라는 상상을 하게 만들었다.
요리를 뚝딱 마법사처럼 하는 모습엔 유명 유투버가 되어 찐 레시피를 공유하려다가 오히려 인생 상담을 해 주는 모습이 떠올랐고, 아직도 못 미더운 딸로 인해 잔소리하는 모습은 뾰족한 빨간 안경을 쓴 사감 선생님의 모습을 상상하게 만들었다. 제일 좋아하는 꽃들을 보며 이건 무슨 꽃이야 설명할 때면 제주도 오름 해설사가 되어 관광객들에게 이곳저곳을 설명하고 있는 모습이 떠올랐다.
그렇게 여러 가지 다양한 모습의 엄마를 상상하다가 문뜩 마주한 엄마의 카톡 프로필에서 만난 계절내음을 가득 담은 사진을 보면 그래도 사진작가로서는 곧 유명해지겠는데 라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웃음꽃이 피곤했다.
그렇게 엄마는 우리들의 엄마가 된 것처럼 자연스럽게 사계절의 알리미가 되어 계절마다 핀 꽃들, 둥지에서 떨어진 어린 새, 눈밭을 지나간 찍힌 발걸음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사진들을 프로필 사진으로 올리곤 했는데 꼭 내가 놀러 가면 나를 앉혀놓고 이건 이런 사진이야라며 사진을 소개해주곤 했다 그러다가 한 여인이 찍힌 사진에 가만히 시선을 멈추곤 했는데….
그 모습 속에 여인은 뭐랄까? 그러니까 가방 속에 커피색 1호 스타킹 뭉텅이를 풀어서 일을 하기 위해 세탁을 마치고 차악하고 감기듯이 입은 상태, 검은색 정장을 위아래로 입고 벨벳 루즈 빛 립스틱을 바른 뒤 웰컴 투 호텔을 외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사실 김치를 외치고 있었다)
그 사진을 마주할 때면 엄마의 눈에 빛이 반짝이면서 정작 옆에 머리도 안 감고 앉아있는 딸과 동일 인물은 아니라는 듯 나와는 등지고 앉아서 그 사진 속 여인을 몇 분간 미소 지은 채 바라볼 뿐이었다. 마치 자신의 꿈이 그 안에 있다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오른손을 가만히 들어 그곳에 마치 목걸이가 걸려 있는 것처럼 자신의 목을 쓸었다. 지금은 너무 오래돼서 끊어지고 만 그 목걸이를 말이다. 그 모습에 나도 그 자리에 있었던 목걸이 품고 있던 사연이 떠올랐다.
두바이에서는 1년마다 비행기 표와 함께 고국에 가서 쉬고 오라고 한 달의 휴가를 주었는데, 처음 가는 휴가에 나는 내 시간과 노력이 담긴 선물을 엄마에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6개월 월급을 모아 진주 한 알 박힌 금 목걸이를 샀었다. 물론 외국인 노동자에겐 한 달에 10만 원 모으기도 힘든 일이었지만 매번 구경만 하고 돌아오기 일쑤였던 골드 수크에서 진주 한 알 박힌 목걸이를 샀을 때는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어렴풋한 내 기억 속 나는 골드 수크에서 제일 크고 비싸 보이는 보석상에 용기를 내서 들어가 “여보쇼 이 외국인 노동자가 두바이에서 1년간 땀 흘려 일해서 금 목걸이를 사려고 하는데요.”라며 떨면서 물었다. 나의 추레한 모습 때문이었는지 보석상은 마치 너의 모든 걸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눈에도 잘 보이지 않는 실오라기 같은 금 목걸이를 몇 개 내 앞에 내놓았다. 어쩌면 그도 외국인 노동자로서 두바이의 사막처럼 팍팍한 월급체계를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아 보였다.
하지만 그의 예상과는 달리 이거 다 아니라며 당당히 진주알 하나 박힌 목걸이를 가리키며 "저걸로 줄래? “를 외쳤고 그 모습에 보석상은 감동을 가득 품은 얼굴로 내 손에 그 목걸이를 힘을 주어 꽈악 쥐어줬다. 마치 그도 외국인 노동자로서 나와 같은 꿈을 꾸고 있었던 것처럼 눈물이 그렁그렁 해 보였다. 그리고 그가 꿈꾸던 모습 그대로 내가 엄마에게 목걸이를 걸어 준 그 순간, “이 목걸이를 어떻게 하고 다니냐고” 울먹이며 나를 쳐다보았을 때 두바이에서 힘들었던 기억들은 한 줌에 빛이 되어 사라져 버렸다.
그렇게 서로에게 힘을 주는 기억 때문이었을까? 엄마는 내가 호텔 그만두고 싶다고 말하면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며 조용히 내 가방 속 엉망으로 엉커 있던 스타킹을 풀어서 다시 빨아 가방 안에 넣어 두었다. 나 역시 첫차를 타야 갈 수 있던 호텔도, 왕복으로 3시간 걸리는 호텔도 꾸역꾸역 마른침을 닦으며 다니게 되었다
심지어 건강이 좋지 않아 호텔을 잠시 그만두게 되었을 때도 배운 게 도둑질이라며 엄마에게 딸이 대도가 될 수 있게 도와달라며 셀 수도 없이 엄마를 끌고 면접장소로 가곤 했다.
결국, 앞 뒤가 똑같은 번호로 부르는 대리 운전기사와 같이 나를 실어 나르던 엄마의 정성이 빛을 발했던 것이었을까? 엄마의 표현을 빌어서 호텔과 호텔 사이에 먼지처럼 떠다니는 이력서로 인해 호텔 경력 10년이 지난 후엔, 둘째 딸은 호텔계 대도가 되어, 다른 호텔 손님들을 뺏어오기 위해 호텔 요금을 염탐하며 요리조리 눈알을 굴리기는 자리에 앉게 되었다. 24시간 돌아가는 호텔의 1인 사무실에 앉아서 손님을 서로 뺏고 빼앗기는 싸움을 하다 보니 점점 머리가 하얗게 세어버린 대도가 되어있었다.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어린 나이에도 사람이 너무 힘들면 머리가 하얗게 센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그만두겠다고 말은 이미 내 안에 금지어가 되어 차마 뱉지 못하는 말이 되어버렸다. 그 동안 엄마와 내가 쌓아 올린 면접의 산 봉우리가 몇 개인데, 그 산들을 내손으로 모조리 무너뜨리는 것 같은 느낌에 전화를 하다가도 시답지 않은 농담만 하고 끊기 일 수였다.
얼마나 많은 밤을 시간을 잊은 채 사무실에 앉아서 일을 했었을까? 갑자기 골방 안에 갇혀 오늘 하루 아니 이번주 내내 누구와도 눈을 마주치고 대화를 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서글퍼졌다. 분명 내가 배운 도둑질은 다양한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동료들과 농담을 하면서 배운 기술인데, 어느새 나는 영혼 없는 눈빛으로 혼자 앉아 간혹 모니터와 대화를 하고 앉아 있었다.
“그러니까 네가 추천한 이 요금 진짜지?
너 믿어도 되는 거지?
요금은 네가 추천하는데
왜 책임은 내가 지니? “
“……..”
그렇게 답이 없는 대화가 사무실에 공허하게 울리자 잠을 못 자서 인지 갑자기 사람과 따뜻한 대화가 하고 싶어졌다. 비몽사몽 한 상태로 핸드폰을 들어 수십 번도 눌렀다가 걸지 못한 글자를 눌렀다. 통화 연결음이 울리자 그제야 정신이 들어 전화를 끊으려고 했으나 이미 엄마의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여보세요? 어 딸! 그래 이제 집에 가나? 밥은 먹었어?”
“..... 어음… 마..”
어라고 한 건지 엄마라고 한 건지 애매한 대답은 나오려는 눈물을 오만상을 쓰며 다시 밀어 넣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도중에 나와 상의도 없이 터져 나왔다. 그냥 끊지 바보같이 그동안 말 못 한 거 티 내냐? 갑자기 한심해진 내 모습에 아무것도 아니라고 얼버부리며 전화를 끊으려는데 엄마는 이미 모든 걸 알고 있다는 듯이 말했다.
“딸… 너무 힘들면 그만둬도 돼”
처음이었다. 그만두라고 말은, 그 말에 울컥 엄마의 꿈을 내가 대신 이루고 있다고 어설프게 쌓아 올린 감정의 뚝이 와르르 무너져 버리는 기분이 들었다. 열심히 하는 것만 배웠지 그만두는 법을 배우지 못한 딸은 바보처럼 다 괜찮다는 엄마의 말을 듣고서야 온 힘 다해 버티고 서 있었던 다리에 힘을 풀어 겨우 주저앉을 수 있었다.
얼마나 울었을까? 간신히 눈물을 닦고 오늘은 여기까지 해야겠다며 돌아간 집엔, 따뜻한 토마토 향이 풍겨져 나왔다. 남편은 퉁퉁 부은 얼굴로 돌아온 나를 보며 아무것도 묻지 않은 채 빨리 먹지 않으면 식는다며 요란하게 식탁에 앉혔다. 그의 옷에는 무슨 전쟁을 치렀는지 토마토소스가 사방으로 튀겨져 있었고, 내가 앉은자리 앞에 따뜻한 닭가슴살 토마토 푸실 리가 놓였다.
“이건....”
“맞아... 장모님이 너 오면 해 주라고 레시피 알려주셨어”
“엄마가?...”
“응... 넌 몰랐겠지만 난 장모님 후계자거든”
“무슨...”
“요리!! 후계자”
"말도 안 돼!"
남편의 실없는 농담에 어이없다면서 닭가슴살 토마토 푸실리를 한 스푼 떠서 입에 넣었는데 따뜻한 토마토에서 나오는 단물과 그 안에 잘게 부서져 있는 마늘향이 향긋함이 식도를 타고 미끄러지듯이 내려갔다.
온몸이 따뜻해지는 느낌에 나도 모르게 입꼬리 한쪽을 올리며 미소를 지었는데, 남편은 그 웃음을 오해하고 입술을 삐쭉 빼더니, 진짜 자신이 장모님 후계자라며 왜 안 믿어주냐며 억울해했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니 어쩌면 오늘 하루 힘든 딸을 위해 사위를 후계자라며 달래 가며 레시피를 알려 준 게 아닐까 싶어졌다. 음식으로 마음의 위로를 받았던 기억 때문이었을까? 닭가슴살 토마토 푸실리는 나의 최애 메뉴가 되었다.
하지만 아무리 좋아하는 음식이라도 매일 먹으면 질리는 법. 이제는 장모님 택배 음식이 떨어질 때면 “토마토소스가 빨간 건 요리하는 사람의 마음을 담아서 그런 거야! 닭가슴살 가득한 푸실리 먹을래?"라고 묻는 남편은 오늘도 역시나 토마토 푸실리 먹을래라고 물었고 당연히 내가 그래 해줘라고 할 줄 알고 미리 만들어 둔 음식과 사진이 무안하게 나는 이번엔 너 그거밖에 모르지? 라며 물었다.
순간 허를 찔린 당황한 얼굴의 땀범벅 후계자님은 장모님이 보내준 다른 레시피가 있다며 황급히 찾기 시작했다.
그럼 닭가슴살 토마토 푸실리 말고 이번엔 마! 파! 토마토 두부 덮밥 드셔보실 분 소리 질러~
엄마 나 배고파!!
덧, 사실 저번 브런치 레시피를 읽고 이번회차가 자신이 주인공인 닭가슴살 푸실리 파스타 레시피인 줄 알고 후계자는 사진도 잔뜩 찍어두었단다.ㅎㅎㅎ 그의 헛수고가 아까워 첨부.
마늘 +파 + 토마토 두부 덮밥
재료: 큰 토마토 1개, 작은 방울토마토 10알 마늘 8알, 양파 한 개, 대파 한 움큼, 계랑 2~3알, 부침두부 1개, 굴소스 반스푼, 후추 조금, 소금 한 꼬집, 참기름 반 스푼
(후계자 추가: 참치 액)
마늘대파 양파 얇게 썰어
큰 토마토 1개
방울 토마토 10알도 잘게 썰어
계란 2~3개 소금 한 꼬집 넣고 풀어둬
두부는 깍둑 썰어 물기를 빼두고
마늘 3알은 다져주고 5알은 편 썰어
팬에 마늘 대파 양파
소금 한 꼬집 넣고 볶다가
두부 넣고 2분 정도 볶아
사방으로 밀고가운데에 토마토를 넣고 저어
토마토에서 물이 나오면 두부랑 모두 섞어서 펴고
계란을 위에 부어줘
잠시 있다가 계란이 익는 듯 보일 때 저어주고 굴소스 반스푼 후추 넣고 마지막에
참기름 반스푼 정도
밥에 올려 두부 으깨며 비벼서 먹어
담백하고 아주 맛있어~
다음화는 비밀입니다 후후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