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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연 Nov 02. 2021

뒤통수가 납작한 아이

지금 마침 슬럼프가 왔거든요



어렸을적 자주 듣던 말 중 하나는 '우리 막내는 뒤통수가 납작한 아이어서 예뻐'라는 말이었는데, 뒤통수가 납작해서 이쁘다니? 어이가 없겠지만, 우리 집에서 그 말은 어른들이 원하는 '순한 아이'라는 뜻 정도로 쓰였다. 보통 나이대에 따라 다르겠지만, 내가 어렸을 때만해도 뒤통수를 예쁘게 만드는 베개 따위는 없던 시절이다. 혹여 그 제품이 있었더라도 아마 그 시절 가난했던 우리 부모님은 내게 그런 베개를 사주지 않았을거다. 뒤통수가 납작해서 예쁜 아이라는 말 뒤엔 늘 언니에 대한 말이 더 길게 이어졌는데, 얼마나 잠을 안 자던지 부터 시작해서 입이 마르도록 언니의 흉을 봐댔다. 사실, 부모님께 그 말을 아주 어려서부터 들었고, 그 얘기가 한번 시작되면 쉽게 끝나지 않는데, 그때는 무슨 딸의 흉을 그렇게 오래도록 볼까 생각이 들어 괜시리 언니에게 내가 큰 잘못이라도 한 것처럼 생각이 들던 시절도 있었다. 실제로 우리 언니의 뒤통수는 너무 예쁘다. 그렇게 엄마를 고생시켜서 저런 뒤통수를 얻을 수 있다면, 난 당장이라도 그렇게 할 것 같다.





결혼 후에 들은 말로는 첫째아이, 특히 첫째 딸은 유별나서 잠을 잘 자지 못한다고 한다. 내가 꼰대라 생각하며 따르고 싶지 않은 그들은 돌이켜보면 어쩜 늘 그렇게 맞는 말만 하는지 '꼰대'라는 말의 뜻을 '맞는 말을 잘 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바꾼대도 이제는 별 불만은 없겠다. 하지만 요즘 대세인 MZ세대가 반대할 것이기 때문에 나도 그 편에 서고 싶다.


딸은, 정확히 1년 반 정도를 누워서 잔 적이 없다. 기면증인 엄마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는 갓난아기였다. 나중에 딸이 성인이 되면 꼭 갚아주리라 마음먹고 있지만, 정말 그렇게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녀는 아주 갓난아기였을 때부터 거의 두돌이 다 될때까지 내 등에 엎혀 잠을 청했다. 아무리 푹신한 이불을 깔아도, 아무리 조용한 주변 환경이어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덕분에 그녀의 뒤통수는 정말 한치의 오차도 없는 짱구다. 근데, 옛 선조의 말이 꼭 맞는 말이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둘째아이는 정말 순한 아이가 태어났었다. 그는 불을 끄면 혼자 알아서 잠들고 아파도 잘 우는 법이 없는, 갓난 아기였을때 24시간을 잠만자서 죽었는지 살았는지 흔들어 깨워 젖을 물렸다는 나를 꼭 닮은 아이였다. 근데, 참 희한한건, 아들의 뒤통수가 딸보다 더 예쁘다는 것이다. 물론 아들에게 뒤통수가 예뻐지는 베개 따위는 사주지 않았다.


나도 요즘 내 부모님처럼 아이들에게 그런 말을 하곤 하는데,  주로 딸이 얼마나 나를 괴롭혔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딸의 그런 상황들은 머리속에서 너무 생생하게 떠오르는데, 사실 아들의 갓난 아기때의 에피소드는 자주 아파 병원에 입원해 있던 기억이 대부분이다. 아들이 착했다 라는 건 마치 내가 주입시켜 놓은 기억인 것 처럼 남아있는 것 같아 마음이 쓰인다.


'뒤통수가 납작해서 예쁜 아이'는 이미 유별나서 뒤통수가 정말 예쁜 아이한테 이미 졌다. 뒤통수가 예쁜 아이는 그냥 타고나는 것 같다. 그리고 갓난 아기일때 순해서 예쁘던 아이가 어른이 되어서도 순할거라 생각하는 것 자체가 오류 아닌가. '뒤통수가 납작해서 예쁜 아이'는 그저 잠이 많은 아이였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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