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소연 Jan 16. 2024

조삼모사_ 불행 총량의 법칙



조삼모사_ 조금 모르면 3번, 그냥 모르면 4번.




 "모르는 건 3번이나 4번으로 찍어. 꼭!"



 중학생이 되기 전에 처음으로 시험을 보는 딸에게 한 말이었다. 고지식했던 딸은 초등학생 때까지 모르는 문제는 공란으로 비워두었다. 아이에겐 그게 진리였다. 나는 아이에게 왜 공란이 생기면 안 되는지에 대해 충고와 조언을 아끼지 않았으나 그저 잔소리에 불과했고 이해를 하지 못하는 듯 보였다. 저거 저렇게 융통성이 없어서 어떻게 사회생활을 할까 걱정을 했지만, 아이는 첫 시험에서 당당히 전교 1등을 했고 단상에서 입학생 대표로 선서를 했다.



 졸업 때까지 늘 1등을 하면서도 자신은 똑똑한 사람이 아니라고 하는 딸을 보며 겸손하기까지 하니 기특하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그건 겸손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객관적인 판단이었다. 고등학교 입학을 앞둔 어느 날에는 자신이 공부를 잘하는 건 중학생 때까지라고 내게 말했, 공부가 많이 힘들었구나 흘려 들었다. 아이는 중학교 졸업 이후엔 공부와는 거리가 멀어졌다. 딸의 말은 마치 이제 공부를 놓을 거라 선포하는 것처럼 느껴졌고 사춘기인가 생각도 해보았다. 막상 고등학생이 되니 아이가 말하던 대로 성적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막연히 다시 열심히 공부하면 성적이 오를 거라 생각했지만 그건 내 생각일 뿐이다. 더 이상 오를 성적은 없었다. 딸은 이미 최선을 다하고 있었으니까. 그러니까 아이가 내게 한 말은 선포가 아니라 예언 같은 거였다. 은 성적이 행복이라면, 행복은 오래가지 않다. 늘 그렇듯 행복 다음엔 불행이 온다. 하지만 견뎌내야 한다. 잘 사는 인생이란 행복을 좇는 게 아니라 불행을 잘 견뎌내는 거다.



 고등학교 성적은 노력만으로 되는 게 아니었다. 그제야 아이의 말이 들렸다. 그동안 자신에게 기대감을 갖는 이들 때문에 얼마나 힘들었을. 지만 딸은 좌절하지 않았다. 세상 누구도 기대하지 않은 일에 실망하는 이는 없다. 미 예상한 일이니까.  내내 가고 싶어 하던 철학과를 포기하고 실용학문을 선택했다. 자기보다 더 잘난 사람이 가는 게 철학과라고 생각했다. 연히 수능을 잘 봐서 철학과에 진학할 수 있다 해도 아이는 그 이후를 생각해 꺼려졌을 거다. 꿈은 막연하게 꾸는 게 아니라 현실적으로 그려야 한다. 조금 천천히 가더라도. 모르는 문제는 모른다고, 자신 없는 일은 자신 없다고 말하는 것. 그게 좌절하지 않는 방법이다. 찍어서 답을 맞춘다고 해도 그건 어차피 모르는 문제다.






 오지선다형 답지, 그것도 미리 예습까지 한 공부도 모르는 문제 투성이인데, 답안지가 없는 우리의 인생에서 올바른 답을 고르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아침에 세 개를 먹든 저녁에 세 개를 먹든 어느 것을 골라도 일곱 개밖에 먹을 수가 없다면, 하루종일 굶다가 야식으로 일곱 개를 먹어도 상관없지 않을까. 언제나 3번이나 4번에서 헤매고 있는 내 인생. 하지만, 어차피 내게 주어진 불행은 정해져 있다. 이제까지 불행했다면 지금부터 행복하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