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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자 Oct 17. 2021

깨어나 보니 기억이 사라졌다

<슬기로운 평대생활>  29일째

명랑하게 지저귀는 새소리에 눈을 뜬다. 다정한 햇살이 창을 통해 쏟아지고 있다.  


꿈을 꾸었다. 오랜만에 회사에 출근했다. 내가 다니는 회사의 배경은 아니었던 것 같다. 익숙하던 일이 낯설었고, 뭘 해보려 하는데 허둥대고 헤매기만 할 뿐이었다. 이게 계속 반복되었다. 난감했고 당황스러웠다. 도대체 왜 그러냐는 시선에 고통스러워하는 내 모습이 보였다. 이게 뭐지, 난 지금 제주에 있는데… 이건 꿈이야,라고 도리질을 하고 몸을 비틀어 꿈을 깨려고 발버둥을 쳤다. 그러다 겨우 잠이 깨서 다행이라 생각하는데… 그것도 꿈이었다.   


간밤의 꿈을 복기하다가 갑자기 어떤 이야기가 머릿속에서 신속하게 조직되었다.    


공간 배경은 전날 갔던 식당 ‘종달미소’다. 좋아하는 꼬막 무침을 한 그릇 더 담아왔다. 좀처럼 달래지지 않는 허기에 큼지막한 꼬막을 힘차게 물었다. “뻐지직.” 조갯살 사이에 묻혀 있던 껍질을 씹었다고 생각하는 동시에 날카로운 통증을 느꼈다. 고통과 함께 의식을 잃었다. 깨어나 보니 모든 기억이 사라졌다. 내가 누군지도, 왜 여기 있는지도 잊어버렸다. 지갑도 휴대폰도 없어 연락할 곳도 날 확인할 길이 없다. 손에는 끈을 말아 쥔 똑딱이카메라 한 대가 있었다. 

카메라 안의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낯선 장면들이다. 누가 찍었을까. 마지막 사진은 쓰러졌다 깬 종달미소의 건물 사진이었다. 기억을 잃기 전의 내가 찍은 걸까. 하얗게 지워진 기억을 더듬기 시작했다. 며칠이 지나도록 나를 찾는 이가 없었다. 내가 누구인지 카메라 속 사진을 단서 삼아 들여다보아도 알 수가 없다. 사진 속에는 나를 포함해 함께 찍은 사람들의 모습은 없다. 그저 제주의 고운 풍광들이 대부분이었다. 나를 모른 채 그렇게 며칠을 지냈다. (어디서 지냈는지는 모른다) 인상 좋고 친절한 종달미소 사장님이 날 안타깝게 여겨 종달항에 일자리를 소개해준다. 꼬막 탓이라는 것을 알았던 것이리라. 난 종달항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나는 제주의 어부가 되었다.

전날 꼬막 껍데기를 씹었던 작은 사건이 엉뚱한 상상으로 전개가 된 것이다. 이것은 꿈이 아니었다. 즉흥적으로 마음 가는 대로 지어진 이야기다. 휴가의 끝이 몹시 아쉬웠던 것이다. 


침대에 걸터앉아서 방 안을 둘러보다 옷걸이에 시선이 멎는다. 티셔츠 몇 장과 바지 두어 개가 걸렸다. 저렇게 입고 한 달을 살았구나. 테이블 위엔 카메라와 노트북, 책 두어 권이 놓여 있었다. 저걸로 한 달을 즐겼구나. 불편한 줄 모르고 산 한 달의 세간의 단출함이 새삼 놀라웠다. 남들의 시선이나 가치에 구애받거나 스스로를 몰아세우지 않고, 내 마음이 시키는 대로 사는 삶이라면 소박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미니멀리즘을 삶 속에서 구현할 수 있으리라는 묘한 자신감이 솟았다.      

마을을 구석구석 걸었다. 작별 앞의 의식처럼. 한 번 더 이 친근해진 평대를 구성하는 것들은 마음에 담고자 했다. 여기 온 첫날처럼 파도는 잔잔했고 바람은 부드러웠다. 마을은 고요하고 평온했다. 가끔 마주치는 마을 주민들은 근심 없는 표정으로 느긋한 발걸음을 옮기곤 했다. 이 풍경 속에서 나는 따스하고 안전하다고 느낀다. 한 달 사이에 기온이 몇 도쯤 올랐고, 바닷가 모래사장에는 해수욕장 개장 준비가 한창이다. 7월 장마 소식과 무더위 소식이 들려오기도 했다.   


훗날 다시 평대를 찾아온다면 그때도 지난 한 달 같을 수 있을까. 10년 전쯤 왔다면 또 이런 마음일 수 있었을까. 나와 이 공간의 호흡이 가장 잘 맞을 때에 온 것이라고 스스로 평가했다. 세월이 지나면서 해안을 따라 이어진 단층의 마을집이 하나씩 헐리고 2층, 3층 반듯하고 높은 건물이 올라갈 것이다. 가게마다 여행객들로 북적이겠지. 제주 해변에 오래전부터 진행돼온 이런 현상이 유독 평대만을 피해갈 순 없겠지. 그저 그런 변화의 시간이 더디게 아주 더디게 왔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빨간 등대로 향했다. 발걸음이 끌리듯 그쪽으로 가고 있었다. 마을 주민 할머니와 눈길이 마주쳤다. 날 알아보는 눈치다. 얼마 전 해변에서 해초를 줍는 그에게 이것저것 물었고, 한참 동안 작업을 지켜본 적이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이웃집 어른을 본 듯이 살갑게 인사를 했다. 초면이 아니라는 걸 강조하고 있었다. 표정 또한 그에 걸맞게 오버스럽게 지어졌을 것이다. 활짝 웃으며 할머니가 지나갔다. 머무르니 마을에 작은 인연이 생기기 시작하는 구나. 아쉬움이 커졌다.   

등대 앞에 섰다. 파도소리를 듣고 바람을 맞으며 수평선을 오래 바라봤다. 오목하게 들어간 마을 뒤로 다랑쉬오름이 모습을 드러내 주었다. 멀리 종달리의 지미봉도, 우도도 옅은 안개에 싸인 채 시야에 들어왔다. 다시 오고 싶다. 그게 언제쯤일까.   


골목과 해안도로가 만나는 곳에 있는 분리수거장에서 음식물과 플라스틱 등을 버렸다. 저물녘이었고 분리수거조차 마지막이라는 게 아쉬웠던 나머지, 비워진 음식물 쓰레기통을 들고 마을을 작게 반 바퀴쯤 돌아서 집으로 들어가려 했다. 터덜터덜 슬리퍼를 끌며 게으른 걸음을 걷는데 저만치 떨어진 한 가게 앞에 석희삼춘 같은 이가 앉아있었다. 조금 가까이 가는 동안 까만 그도 나를 긴가민가 바라보고 있었다. 삼촌이었다. 무척 반가웠다. 안 그래도 밤에 전화라도 해서 인사라도 해야지 하고 있던 참이었다. 


석희삼춘이 손을 흔들어 날 반겼다. 가까이 다가서자 그의 첫마디. “이야~ 동네사람 다 됐네. 멀리서 오는데 마을사람인 줄 알았다.” 까맣게 탄 얼굴과 팔, 추리닝에 슬리퍼를 끌고 어슬렁거리는 모습이 관광객으로 보일 리는 없다. 그는 농사일을 일찍 끝내고 마을에서 작업 중인 목수를 만나러 왔다고 했다. “이상하게 이리로 걷고 싶더라고요. 또 언제 보나 했는데 가기 전날 얼굴이라도 보고 가서 참 다행입니다.” 진심으로 말했다. 


저녁을 같이 했다. 공교롭게도 평대에 도착한 날 밤에 함께 갔던 김치찌개 집이었다. 이렇게 한 달이 정리되는구나. 거듭 고마움을 표했다. 나도 그랬지만, 그의 얼굴에도 섭섭하고 허전한 표정이 스치고 있었다. “잘 지내다 갑니다. 또 올게요. 형님.” 깊숙이 고개를 숙인 뒤 돌아섰다.  

해가 지고 어둑해진 해변을 따라 민박집으로 돌아가는 길. 바다 위에 일렁이는 마을 불빛을 보며 걷는 동안 내 얼굴에 웃음기가 슬슬 번지고 있었다. 불쑥 떠오른 말 때문이었다. 


“동네사람 다 됐네.” 몇 번이고 발음해 보았다. 설레었다. 실실 웃음이 새어나왔다. 평대 오기 전 “동네사람처럼 지내다 올 것”이라 선포했었고, 석희형님이 그걸 확인해 준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나와의 약속을 지켰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는 문장이기도 했다.   


밤길에 들떠서 혼잣말이 터져 나왔다. “이야, 기분 좋다~~”  /yaj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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