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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희수 Jul 18. 2021

탈피

몇 달 동안 연락이 닿지 않는 친구를 찾아갔다. 예전부터 아파 오랫동안 연락이 안 되던 때가 있었는데 이번은 유독 길어 걱정이 됐다. 기억을 더듬어 친구가 살던 집을 찾아갔다. 스쿠터가 세워져 있는 빌라. 입구에는 넝쿨이 둘러져 있어 그곳을 지나면 세상의 이면 같았다. 초인종을 눌렀다. 답이 없다. 다시 초인종을 눌렀다. 발소리가 들렸다. 누구세요. 나야. 안전고리가 걸린 문이 열렸다. 틈 사이로 보이는 친구의 몸이 많이 부어 있었다. 괜찮아? 친구는 대답 없이 문을 닫고 안전고리를 풀어 문을 열었다. 틈 사이로 볼 때보다 더욱 부어 보였다. 어디 아파? 괜찮아, 들어와. 가구가 많은 집 복도를 지날 때도 양 옆에 빽빽하게 세워둔 가구들 때문에 몸을 틀며 들어가야 했다. 거실은 이상하리만큼 비어 있었다. 언제나 들고 옮길 수 있는 가벼운 식탁 하나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식탁에 마주 앉아 친구가 내오는 커피를 마셨다. 친구는 우유를 마셨다. 몸이 많이 부었는데 어디 안 좋은 거야? 가끔 이럴 때가 있어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져. 집안 가득 오래된 나무 향이 났다. 커피와 섞이는 향기가 기분을 편안하게 했다. 가구를 모으는 취미가 있는지는 몰랐네. 응 예전부터 모았어. 봐도 돼? 그럼. 시간에 압도되는 느낌이랄까. 두꺼운 편안함이랄까. 정리되지 않는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가구 표면에 보이는 두꺼운 나이테와 옅게 흐르는 기름이 할머니의 피부 같았다. 좋다. 그렇지. 가끔 보러 와도 될까. 언제든지. 


커피를 다 마시고 내려놓은 잔에 검은 띠가 남았다. 이제 갈게. 안 일어나도 돼. 현관까지만. 안쓰러운 마음에 친구의 어깨를 매만졌다. 옷 사이로 하얀 가루가 떨어졌다. 친구가 먼저 말했다. 피부병이 있어서. 미안해 불쾌했을 텐데 몰랐어. 괜찮아, 조심히 들어가. 그래 또 올게. 그 후 친구는 말끔히 나은 모습으로 나를 집으로 초대했다. 전보다 피부가 더 좋아졌다. 나이보다 어려 보일 정도였다. 너는 진짜 안 늙는다. 어릴 때부터 삭아서 그래. 이제 못 만날지도 몰라. 왜. 외국에서 살려고 이곳은 나랑 안 맞는 것 같아. 잘 지냈잖아. 아냐 그렇지 않아. 그래, 어디 갈려고. 독일. 그래 독일 좋지. 마음에 드는 가구 있으면 가져가. 그래도 돼? 응 다 들고 가는 것도 힘들고 대부분 처분할 거야. 이걸로 할래. 이거면 되겠어? 난 이게 좋아. 마침 이런 게 필요했고. 그렇다면 알겠어, 내가 너네 집 주소로 보내줄게. 이 날은 둘이 함께 커피를 마시고 헤어졌다. 


친구는 독일로 갔고 집 앞에는 친구 집 거실을 차지하고 있던 식탁이 와 있었다. 집 안에 들이고 나서 보니 이질적이었다. 그래서 친구를 기억하기 좋았다. 식탁에 앉아 혼자 커피를 마셨다. 오래된 식탁에서 나는 향기 코를 가까이 대고 향을 맡았다. 오랜 시간 변하는 것들 중에 너는 누군가의 것으로 남았구나. 독일로 간 친구는 언젠가 찾아가 만날 생각이다. 언제나 그 모습 그대로 있을 것 같은 친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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