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하는 일이 의미가 있을까?

by 김 스텔라


코로나 팬데믹 상태가 길어지면서 미국민들의 장기 실업 상태도 길어지고 있다.

미 국회에서는 구제책 마련에 양당 의견이 대립하고 있다.

공화당에서는 그동안의 구제책이 팬데믹으로 인한 실직자들에게 일터로 돌아갈 의지가 생기지 않게 만들어서 경제회복에 도움이 안 된다고 하고, 민주당은 직업을 잃은 게 개인의 과실도 아닌데 무슨 소리냐고 반박한다.

그래도 어쨌든 팬데믹 상황에서는 구제책이 있어야 한다는 데는 의견 일치를 보이며 절충안을 내놓으리라는 소식에 여행업 종사자 입장에서 안도감이 생긴다. 사람들이 구제책을 이용하지 않는 범위에서 결정되기를 바란다.


한국에서는 실직상태를 다른 말로 '집에서 놀고 있다'라고 하는데 그 표현이 미소 짓게 만든다.

일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Out 이라든지 Lost 라고 하지 않고 Play 라고 하고 보니

팍팍한 삶 속에서도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는 우리 조상님들의 여유를 누리고 싶어 진다.

자의든 타의든 일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니고 쉼이 놀이처럼 즐겁다는 해학적 여유이기 때문이다.

또한 '논다'는 말속에 들어있는 정신과 육체의 활동이 필요해지고 있음을 실감하기도 한다.


사람에게 일은 생존을 위한 활동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상적인 직업과 현실의 일터 사이의 Gap을 느끼며 갈등하고 있다.

그런데 이 팬데믹 상황에서 어떤 사람들은 재택근무를 할 수 있으면서도 더 나은 작업을 하기 위해 (예를 들면 어린 자녀들의 방해, 집중력 저하, 가정용 인터넷 속도... 에 구에 받지 않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면서 사무실로 출근하기도 한다. 왜 그럴까?

직업을 통해 스스로 성취감과 자존감을 만족시키기 때문인 것 같다. 즉, 일에 의미를 두기 때문일 것이다.

쉼이 놀이가 되듯이 일이 의미를 준다면 지금 자의로는 어쩔 수 없는 팬데믹 속에서 일을 하든지 쉬든지 (놀든지) 타의에 의한 피해자는 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생존에 필요한 기본 수입이 전제가 되어야 하겠다.


여행업에서 성수기를 지나고 있다.

한국에서 여행 오시는 분들과 한국 소식을 나누며 부족한 지식과 경험으로 함께 했던 시간이 이제 추억으로 남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다시 일터로 돌아갈 수 있다고 해도 여행업이 마지막 순위가 되겠다는 현실은 받아들여야 한다. 운전하고 걷고 설명하고 멋진 배경으로 스냅사진을 찍어주고... 하던 육체적인 활동이 멈춰진 것은 분명 자의가 아니다. 그러나 정신적인 활동을 하면서 Play 하는 것은 자의로 할 수 있다.


john-white-alexander-repose.jpg John White Alexander 'Repose'
main-image.jpeg John White Alexander 'Repose'

같은 화가, 같은 제목의 두 그림이 완전히 다른 '휴식'을 그리고 있다.

구분이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PlayOut 의 차이처럼 보인다.

영어로 Repose 는 안식(휴식)이라는 뜻인데 이 단어를 나누어서 Re-Pose 가 되면 긴장감 도는 '다시 제기하다'라는 완전히 다른 단어가 된다. 영어 실력이 별로라 단어가 형성된 과정은 모르겠지만 나름대로 해석해 본다면 '논다'(Play) 라는 활동성 있는 휴식은 다시 육체적으로 활동하기 위해 준비하는 정신적인 활동이라고 하고 싶다. 독서하는 여인의 뒷모습에서 휴식이 주는 편안함과 책 속에 들어가 있는 움직임이 동시에 보인다.


나와 사회가 적당한 활동으로 일하게 되는 날을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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