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친구 삼는 일
약 올리고 싸움 붙여서 자기 이익 챙기는 건 이솝 우화나 놀이터에서 벌어지는 일인 줄 알았는데
나라도 이런 수에 넘어가는 것 같아서 짜증 나고 한편 정신이 들기도 한다.
미국 이민자로서 한국과 북한, 미국의 관계에 관심이 갈 수밖에 없는 입장에서 이번 북한의 '남북 공동 연락사무소 폭파사건'은 정치에 무지한 나를 열폭하게 했다.
누구 좋은 일 시키려고... 하면서 오늘 아침 신문 기사를 보는데
'7000명 생명 구했던 피란선 녹슬고 싶지 않아요'라는 기사가 눈에 띄었다.
죽음, 파괴, 바이러스... 등과 같이 차라리 안 보는 게 나은 기사들 사이에서 '생명'이라는 단어는 쉽게 눈에 들어왔다.
내용은 1.4 후퇴 직전에 흥남부두에서 부산항까지 피난민 7009명을 싣고 한 사람의 사상자 없이 오히려 아기가 태어나서 1710명을 탈출시킨 SS Lane Victory(SS; Steam Ship 레인 빅토리 증기선)에 관한 기사였다. 지금 엘에이에서 가까운 샌페드로 항구에 정박되어 있다. 이 기사를 쓴 목적은 점점 낙후되어 가고 있는 선박의 보수공사에 한국인들의 참여를 바란다는 미국 참전용사회의 부탁을 전하기 위해서이다. 지금 유일하게 남아있는 한국전쟁 당시의 피난선이기도 하기 때문에 납득이 간다.
항구 옆에는 미국 독립 200주년을 기념해서 한국 정부가 세운 '우정의 종각'이 태평양 끝에 서 있다.
친구 사이에 나누는 마음을 우정이라고 한다면 미국은 종각을 받고 한국과 친구관계를 맺기로 했는지 모르겠다.
관계라는 것이 서로 관계 맺기로 약속하고 시작하지만 동등한 관계를 맺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 같다. 친구라고 하면서 7 공주파에도 두목이 있고, 삼총사도 달타냥이 주인공이 된다.
그러니까 동등한 관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친구가 되기로 한 약속을 깨지 않고 계속 가는 관계가 아닐까 한다.
설사 내 친구와 나 사이가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질 수밖에 없다 하더라도 그 사이에 오르내리는 사다리가 있다면 우리는 서로 마음을 나누는 친구이다. 올라가서 만나고 내려와서 만나고, 그리고 중간에서 만난다.
그 사다리를 내리고 올라갔던 이야기가 1950년 12월 흥남부두에서 있었다.
그리고 오늘 기사를 읽는 나에게,
'국제시장' 영화를 보면서 눈물 흘렸던 아버지들에게,
말로 표현할 수는 없는 우리에게 있는 사랑을 글로 써 내려간 '높고 푸른 사다리'를 읽은 독자들에게 전해진다.
이 소설은 어쩌면 친구의 사랑을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소설 '높고 푸른 사다리'에는 오늘 기사의 레인 빅토리호와 같이 흥남부두를 떠난 피난선(용도는 수송선이었다)SS메러딕스빅토리호에 얽힌 우정의 이야기가 실려있다. 12명 정원의 화물선에 14,000명의 피난민을 태우고 한 사람의 사상자도 없이 5명의 아기를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으며 거제도에 도착한 이 배의 선장 이야기로 책을 마무리하고 있다. 소설의 주인공 요한의 아버지가 그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마지막 한 명까지 태우려 했던 선장과 선원들은 미국인으로서가 아니라 생명을 공유하는 친구로 사다리를 내렸다. 이 사다리는 그 후 한국 왜관 베네딕토 수도회에서 미국 뉴저지 뉴턴 수도회로 이어졌다. 레너드 라루 선장이 전후에 뉴턴 수도회 수사가 되었고 지원자가 끊긴 이 수도회에 한국 수사들이 파견되었다.
진짜 친구가 누구 인지는 몰라도 가짜가 어떠한지는 안다.
올라가려고 놓은 사다리가 이제 더 이상 필요 없다고 먼저 치워 버린 북한체제와의 관계는 다시 이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흥남부두에 내려진 사다리를 오르지 못한 친구들이 아직 그곳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