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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지윤 Oct 21. 2023

어느 새벽 귀갓길의 맛

콘수프

책만 읽으면 하고 싶은 일이 무수히 늘어난다. 소설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를 읽고 난 뒤에는 어느 시골 마을의 책방 주인이 되고 싶었다. 버려진 고택을 저렴한 가격에 매입한 뒤 외관은 그대로 두고 내부만 살짝 손본다. 중고 원목 책장들을 구해서 벽면을 채우고 내가 좋아하는 책들로만 잔뜩 꽂아둔다. 격자 유리가 달린 미닫이문을 드르륵 열면 정면으로는 푸르른 논 혹은 새하얀 벌판이 펼쳐진다. 한 달에 한 번씩 심야 책방을 운영하고 늦은 오후에는 다양한 독서 모임을 여는 거다. 고전 독서 모임, 하루키 독서 모임, 하이쿠 모임, 윤독 모임…… 아, 내 사랑 요시모토 바나나도 빠질 순 없지. 바나나 모임, 등등! 책방 이름은 바나나책방으로 할까.

김성중의 단편소설 <나무 힘줄 피아노>를 읽을 때는 이국의 신비로운 게스트하우스 주인이 되기를 꿈꿨다. 정처 없이 떠도는 여행자인 남자 주인공이 다다른 어느 이슬람국가에 자리한 시골 마을. 그곳에서 우연히 들른 하루 5불짜리 호스텔 ‘교토 민박.’ 주인 ‘윤’이 개인 사정으로 당분간 그 나라를 떠나게 되자 호스텔을 잠시 맡게 된 주인공. 마을에서 유일한 동양인이었기에 그를 아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드문드문 찾아오는 배낭여행자들을 맞으며 느릿한 나날을 보내는 주인공을 보면서, 그런 곳에서라면 나도 본능에 충실하며 하루하루 여유롭게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호스텔 이름은 무엇으로 할까. 설레는 마음으로 그런 고민을 하다가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난 뒤 게스트하우스 주인의 꿈을 접었다. 결말은 직접 확인해 보시길.

그러다 소설 《츠바키 문구점》을 읽고 나의 꿈을 굳혔다. 언젠가 문구점 주인이 되리라. 상호는 동백 문방구로 하는 거다. 전 세계에서 수집한 문구류를 전시해 놔야지. 연필과 만년필, 샤프, 지우개. 그리고 예쁜 엽서와 편지지들을 팔면서 츠바키 문구점의 주인 포포처럼 대필도 하면 좋겠다. 그러려면 붓글씨를 따로 배워야겠지. 서예가 취미인 작가 K에게 가르쳐달라고 할까.

소설을 다 읽고 마지막 장에 수록된 옮긴이의 말을 펼쳤다. 역자가 번역 마감을 한 뒤 소설 배경이 된 일본의 가마쿠라로 여행을 다녀온 이야기가 실려 있었다. 그곳의 마을 지도도 함께. 지도에는 포포가 자주 다닌 단골 가게들, 빵집이나 카페나 음식점이 곳곳에 표시되어 있었다. 작가가 소설을 쓸 때 가마쿠라에 있는 실제 가게들을 그대로 갖다 썼다는 걸 알게 된 순간 나는 비행기표를 예약했다. 미래의 동백 문방구 주인으로서, 영감을 준 소설 속 마을을 답사하는 건 당연한 순리 아닌가. 그리하여 새해 1월도 거의 끝나갈 무렵, 나는 가마쿠라에서 며칠 머무르게 되었다.     

한적한 주택가에 있던 숙소는 조용하고 깨끗했다. 1층에는 주방과 욕실, 화장실이 있었고 좁다란 계단을 올라가면 2층에는 여성 전용의 2인실 방들이, 3층에는 주인이 거주하는 공간이 있었다. 집처럼 고요한 여주인과는 첫날 체크인을 할 때 외에 마주친 적이 없었다. 손바닥만 한 마당 한구석에는 서핑 슈트가 걸려 있었다. 근처에 서핑을 할 수 있는 바닷가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 아마도 여주인은 서핑걸인 모양이었다.

둘째 날 이른 새벽, 옷을 단단히 껴입고 친구와 숙소를 나섰다. 구글로 검색해 보니 걸어서 10분 거리에 자이모쿠자 해변이 있었다. 마당에 언제나 사람처럼 걸려 있던 서핑 슈트는 사라진 채였다. 여주인은 새벽 서핑을 즐기러 나간 모양이었다. 추위를 많이 타는 친구가 부르르 몸을 떨며 말했다.

“아직 겨울도 안 끝났는데 서핑이라니, 대단하네.”

나는 머릿속으로 비치보이스의 노래 「surfin' U.S.A.」를 떠올리며 대꾸했다.

“바다 안은 따뜻하니까.”

우리는 단정한 주택가를 걸으며 상쾌한 공기를 들이마셨다. 새벽 출근길에 나서는 주민들의 모습이 드문드문 비쳤다. 낡은 목조주택에서 바지런해 보이는 아주머니가 정성스레 끈으로 묶어 싼 책 꾸러미를 들고 나왔다. 무슨 책을 버리는 걸까. 돌아오는 길에 슬쩍 엿봐야지. 맞은편 길가의 생선가게에 불이 켜졌고 그 옆 쌀가게 앞으로 트럭 한 대가 멈춰 섰다. 남보다 일찍 하루를 준비하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우리는 해변까지 느릿느릿 걸어갔다.

구글맵에 따르면 해변이 지척에 있다는데 아직 바람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고요한 이 새벽 거리에서는 바람도 아직 깨어나지 않은 듯했다. 레고로 만든 세상처럼 아기자기한 건널목을 건너 더욱 비좁은 골목길로 들어섰다. 아담한 주택과 깨끗한 빌라들이 늘어선 사잇길을 걷다 보니 맞은편에서 조금씩 바람이 불어오는 게 느껴졌다. 갑자기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우리는 바람이 이끄는 쪽으로 걸어갔다. 바람이 점차 거세지면서 발걸음도 빨라졌다. 후드를 뒤집어쓰고 마지막 걸음을 내딛는 순간 눈앞에 새파란 바다가(아니, 하늘인가) 펼쳐졌다. 놀랄 새도 없이 바닷바람이 얼굴로 들이닥치며 격한 환영 인사를 쏟아냈다. 동네의 모든 바람이 이곳 바닷가에 모여 있었다.

몇몇 부지런한 서퍼들이 바다 위를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여주인도 저기 어디쯤에서 파도를 즐기고 있겠지. 강아지와 함께 산책 나온 중년 부부가 눈에 띄었다. 모래사장에 새겨진 강아지와 주인의 발자국이 다정했다. 신발 안으로 자꾸만 모래가 비집고 들어와서 나는 걷고 서기를 반복하며 침입자를 털어냈다. 친구가 모래사장 위에 글씨를 쓰자고 하길래 유치하다며 웃었더니 그녀가 정겹게 눈을 흘겼다. 바람은 지치는 기색도 없이 우리 주위를 맴돌았다. 가지 말고 계속 놀아달라고 떼쓰는 것처럼.

한참 바다를 바라보는데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나는 어젯밤 편의점에서 사 온 샌드위치에 따뜻한 커피를 곁들여 아침을 먹자고 말했다. 자꾸만 붙잡으려는 바람을 뿌리치고 우리는 다시 좁은 골목길로 돌아왔다. 노란 자판기가 보이길래 살짝 언 손을 녹일 겸 따뜻한 음료를 하나씩 뽑기로 했다. 녹차와 물, 커피와 주스가 백라이트 아래에 단정히 진열되어 있었다. 그저 손난로 대용으로 캔을 사려는 것뿐이면서 우리는 인생의 중대사라도 결정하는 순간처럼 쓸데없이 진지한 표정으로 상품 하나하나를 살폈다. 아무리 다양한 음료가 있더라도 무조건 커피만 고르는 나는 블랙커피와 밀크커피 중 어느 걸 고를지 고민했다. 친구가 내 손을 잡아당기며 물었다.

“옥수수 그림이 있는 이 음료는 뭐야? 캔으로 된 수프도 있나?”

친구가 가리킨 캔에는 옥수수 알갱이가 담긴 걸쭉한 수프를 나무스푼으로 한 숟갈 뜬 사진이 인쇄되어 있었다. 일본 유학 시절에 자주 뽑아먹던 콘수프였다. 그 샛노란 외관을 보고 있으니 어느 새벽의 귀갓길이 눈가에 아른거렸다. 어스름이 밝아오는 거리에서, 수명이 다한 듯 잠자리 날개처럼 부르르 빛을 떨던 자판기 하나. 그 앞에 선 채 꿀꺽꿀꺽 수프를 마시던 동그랗고 마른 어깨. 스물여덟의 나는 자꾸만 목구멍 바깥으로 치밀어 오르는 뜨끈한 덩어리를 몸 안으로 밀어 넣으려고 콘수프 캔을 꿀꺽꿀꺽 마셨다.

이자카야에서 야간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할증이 붙어서 아르바이트비는 짭짤했지만 밤샘 노동은 고됐다. 몸이 힘든 것쯤이야 이십 대의 혈기 왕성한 체력으로 얼마든지 견딜 수 있었다. 어딜 가나 가장 힘든 건 역시 사람이었다. 당시 일했던 이자카야에서는 특히 아르바이트생끼리 나라별로 뭉쳐서 서로를 경계하는 일이 잦았다. 주방은 중국인들이 점령했고 홀은 일본인들의 영역이었다. 유일한 한국인이었던 나는 어느 곳에도 끼지 못한 채 늘 경계에 머물렀다. 주방에 들어가면 이곳이 중국인지 일본인지 헷갈릴 만큼 그들은 철저하게 자신의 모국어로만 이야기했다. 깔깔 웃으며 시끄럽게 떠들다가도 손님의 음식을 내줄 때면 석고상 같은 표정이 되었다. 뭔가 물으면 그저 고갯짓으로 대꾸할 뿐이었다. 어쩌면 시도 때도 없이 입안 가득 오물거리느라 말할 여력이 없었던 건지도 몰랐다. 홀로 나가면 비로소 내가 일본에 와 있다는 걸 실감했다. 완벽하게 붙인 인조 속눈썹을 깜빡거리는 여자애들과 당장 미용실 가위를 손에 쥐어 줘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화려한 헤어스타일의 남자애들이 홀 곳곳을 누볐다. 점장이 있을 때 그들은 무척 빠릿빠릿하고 성실한 아르바이트생이었지만 점장이 자리를 비우는 날이면 손바닥 뒤집듯 태도가 달라졌다. 손님이 남긴 음식을 아무 거리낌 없이 집어 먹는 건 흔한 일이었고 어떤 날은 아예 룸 하나를 차지한 채 흥청망청 술을 마시며 놀기도 했다. 두 세계를 오가며 밤새 일하다가 하늘이 어슴푸레 밝아올 무렵 가게를 나섰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기 때문에 나는 땀과 음식 냄새에 전 몸을 힘겹게 이끌고 조용한 새벽 거리를 혼자 걸었다. 귓가에는 알 수 없는 중국어와 비속어 섞인 일본어가 음식에 꼬인 파리처럼 윙윙댔고 뱃속에서는 눈치 없이 꼬르륵 소리가 났다. 제대로 된 한 그릇을 먹기에는 부담스럽고, 이대로 씻고 누우면 쉽사리 잠이 올 것 같지도 않았다. 아직 깨어나지 않은 거리에서 유일하게 밤새 빛을 밝히는 존재는 자판기뿐이었다. 자주 허기졌던 그 시절에 나는 네모나고 묵직한 그 기계를 찾아가 콘수프 캔을 뽑아먹었다. 옥수수 알갱이의 톡톡 터지는 맛을 느낄 새도 없이 허겁지겁 캔을 비우곤 했다. 걸쭉한 수프가 식도를 타고 위장에 도달한 뒤에야 은근히 느껴지던 달짝지근한 뒷맛. 자꾸만 서러워지려는 마음을 은근하게 달래주던 따뜻한 한 모금. 콘수프 캔은 내게 새벽의 쓸쓸한 공기를 연상시키는 맛이자 추운 겨울날 주머니 속에서 조물조물하는 핫팩의 온기를 떠올리게 하는 맛이기도 했다. 새벽 산책길에 여행자의 신분으로 마주한 자판기에서 콘수프 캔을 바라보고 있으니 기분이 묘했다. 콘수프를 다시 맛보는 순간 십수 년 전의 헛헛한 마음이 되살아날 것 같았다. 결국 나는 밀크커피를 샀고 친구는 콘수프를 골랐다.

갓 뽑아서 뜨끈뜨끈한 캔을 각자 주머니에 넣고 조금은 부산해진 거리를 되돌아왔다. 따뜻할 때 먹어야 제맛인데도 어쩐지 우리는 그러기가 아까웠다. 캔을 따버리면 이 새벽 산책의 여운이 깨져버릴 것 같았다. 하나둘 잠에서 깨어 하루를 시작하는 분주한 지금이, 여행자인 우리에게는 한없이 여유로운 시간이었다. 드문드문 닫혔던 셔터가 올라가고 불이 켜지는 상점가 풍경과 전깃줄에 앉아 이따금 지저귀곤 하는 참새의 모습을 느긋하게 바라보며 주머니 속에서 캔을 굴리는 순간이 소중했다. 숙소에 도착하면 캔은 이미 식어버린 뒤겠지만, 자그마한 알루미늄용기가 온몸으로 전해준 온기는 하루 내내 마음에 남아있으리라는 걸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숙소 마당에 들어서니 여주인의 서핑 슈트는 아직 돌아오지 않은 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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