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의 괴성에 눈을 뜬다. 아침이다. 이 뜨거움, 불쾌함, 아빠가 또 우리 방 난방을 돌려놓고 갔다. 아빠는 매일 새벽 5시에 등산을 간다. 그리고 집을 나서기 전, 자식들 방에 들러 난방을 한껏 올린다. 하지 말라고, 싫다고, 여러 번 말해보았다. 불통이다.
아빠는 추위를 몹시 탄다. 그리고, 아빠의 겨울철 실내복은 얇은 반팔 면티와 반바지이다. 특히 티셔츠는 황톳물을 들인 것으로,건강을 생각하는 어른인 아빠의 애착 옷이라 하겠다. 본인 옷차림이 이렇다 보니 우리 집 실내온도는 헐벗고 다녀도 절대 춥지 않을 정도가 되어야 했다. 엄마의 증언에 따르면 아파트인데도 난방비가 어마어마했다고 한다.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불을 때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 내 옷도 점점 간소해져 아빠와 다를 바 없어졌다. 한 때, 나는 추위를 안 타는 사람이라 스스로 생각했었다. 잘못된 생각이었다. 집 밖은 위험했다.
등산을 다녀온 아빠가 아기같이 말간 얼굴로 집으로 돌아왔다. 아침운동 후 월 목욕을 끊어놓은 동네 목욕탕을 들러 씻고 오는 것이 아빠의 루틴이다. 부엌으로 가 물 한잔을 경쾌하게 들이킨 후 카아, 하고 만족의 숨을 뱉는다. 그와 동시에,
아빠! 내가 제발 우리 방 보일러 좀 손대지 말라고 했잖아~ 뜨거워서 등을 댈 수가 없다고! 어우, 몸이 익는다고!!
언니가 포효한다. 아빠는 종달새의 지저귐이라도 듣는 듯 눈곱도 떼지 않고 득달같이 달려드는 딸을 바라보고 있다. 강하다. 그리고 늘 이런 말을 했다.
새벽에는 춥다.
짜증이야 난다. 데일 것 같은 방바닥에 뒤척이다 잠을 설친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너무 땀이 나면 엉덩이 밑에 손을 놓고 공기는 통하게, 열기는 빠져나가도록 머리를 쓴다. 나는 절대로 요 밑으로 다리가 뻗어나가지 않도록 주의하는 편인데, 그랬다간 화상의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펄펄 끓는다.
아빠 못지않게 언니도 추위를 몹시 탄다. 그녀의 실내복은 두툼한 폴라폴리스 상하복 세트다. 항시 고온의 상태가 유지되는 이와 같은 환경에서 저 고집스러운 의복 센스라니. 나처럼 훌훌 벗어던지고 가볍게 입으면 나을 것을. 말은 이렇게 하지만 우리 자매는 번갈아가며 아빠와 다퉜다. 나는 종달새 지저귀는 정도로 끝나지 않는다. 언니는 내게 지옥에서 온 주둥이,라고 한 적이 있다. 그러나 결국 나는 적응의 동물로서의 길을 택했다. 귀는 어둡고 고집이 상당한 사람이라고. 어차피 내일 아침에도 방바닥은 끓는다. 저 뜨거움은 아빠의 사랑이거든.참,오빠는 공식적으로 불만이 없었다. (침대가 있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