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니 May 11. 2020

퇴사 후의 잔상들

퇴사 D-day 에필로그

1.

퇴사 후 집에 와서 자는 동안에도 두통 때문에  번이나 잠에서 깼는데, 다시 잠에  때마다 퇴사하는 순간의 장면들을 반복해서 꾸었다.

 

2 내내 퇴사하고 싶다는 말을 달고 다니며 다니는 회사에 만족하지 못했는데, 이제와서 진한 아쉬움을 느끼고 어떤 부분에서 슬픔까지 느끼는게 과하다 싶으면서도 자꾸만 마음이  뚫린 것처럼 허전함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어학 연수를 하던 런던을 떠나, 여행지인 뉴욕에 도착해서 첫날 밤을 보낼 때의 기분이었다.

살면서 가장 많이 울었던, 그렇게 힘들었던 런던 생활이었는데. 그렇게  순간에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일상이 영원히 끝났다는게 믿을 수가 없었다.


매일 만나서 시시껄렁한 농담을 주고받았던 친구들이, 추적추적 내리는 비와 단비 맑은 날의 등굣길이, 내가 사랑하던 공원의 햇살들이   시간의 비행을 했을 뿐인데 영영 과거가 되어버렸던 것이다.

그날도 나는 뉴욕의 비좁은 호텔 침대 속에서 계속해서 런던에 있는 꿈을 꾸었었다.

런던에 있는게 꿈이 아니라, 뉴욕에 있는게 꿈이어야 맞는거 아닌가.

왜 런던에 있는게 꿈인거지, 혼란스러웠다.

 

3년 후의 나는 또 하나의 세계와 작별했다.

그 세계는 이제 일상에서 꿈이 되었다. 곧 추억이 될 터이다.

일상이었을 때는 버겁기만하던 세계가, 꿈이 아쉽기만 하다.

   보내줬어야 는데.

좀 더 잘 했어야 했는데.

 

추억이 되고 나면 어떤 모습으로 남아있을까.

런던에서의 추억은 조금은 아픈 모습으로 남아 제대로 마주하기 어려운 기억의 조각이 되었다.

이 곳에서의 추억은 어떻게 기억될지 아직은 모르겠다.

 

2.

아픈 것도 진정되고, 주말에 본가로 이사하기 위해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짐을 풀면서 회사에서 받은 선물들을 풀어보았다.

문득, 마지막에 제대로 사람들 눈도 못마주치고 인사한 것이 걸린다.

 

방 구석에 털썩 주저앉아, 팀원들에게 장문의 카톡을 보낸다.

평소에는 이런, 뭐랄까, 혼자서 감정에 북받치는  정말 지양하는 편이지만 이런  아니면 언제 보내보겠어.

 

한 명 한 명 메세지를 쓸 때마다 마음이 찡하다.

조금   해줄 

나는 이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어도 하지 않았다.

그럴 여유나 조급함, 그 어떤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금방 떠날거였다면 조금 더 잘해주고 떠날걸 그랬다.

이제와서 새삼스레  번의 구구절절한 메세지로 나의 마음을 전하려는게  얄팍하고 미안하다.


카톡을 보내는 나의 마음은 온통 미안함이다.

하지만 감정 과잉이 되고 싶지 않아 애써 다른 감정들로 감추어 메세지를 냈다.

 

마지막으로 나와 2년을 함께 울고 웃었던  동기에게 보내려고 채팅창을 .

우리는 이미 단순회사 동료가 아니라는  안다. 그러니  친구만큼은 계속 평소처럼 연락하고 만날 것이기에, 어떻게 보면 가장 아쉬워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래도 직장동료로서는 마지막으로 말을 적고 싶어서 첫 마디를 생각하는 순간 왈칵, 눈물이 쏟아진다.

내가 어떻게 이 친구랑 지낸 2년을 몇 마디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마시고  살이나 차이 나는 거래처 사람들과 친구 맺은 기억

 깨려고 노래방  기억, 첫 차를 기다리기 위해 24 카페에서 제로게임을 하던 기억

같이 숙취에 시달리던 기억..

, 물론 막차가 끊기도록 야근하던 기억, 야근하려고 저녁 먹으러 나가서  시간 동안 수다 떨고  기억

야근하는 나를 기다려준답시고 야구보던 친구의 기억

야근을 끝내고 홀가분하게(?) 함께 사무실 문을 닫고 가던 기억 같은 것들도 있다.

 때는 우리에게 맞는 진로를 찾아보자며 또다른 친한 동료  명과 스터디(?) 열고는 열심히  기억도 있다..


팀에서 답답한 일이 있을 , 업체가 힘들게 하거나 다른 과 일하며 화 날  모두 함께 나눈 친구였다.

 

이것들을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어찌나 슬프면서도 웃기던지, 나는 카톡을 쓰면서 대성 통곡을 하다가, 빵터져서 웃다가, 난리를 치고는 메세지를 보내놓고 이불을 뒤집어 쓰고 혼자서 엉엉 울었다.

 

나는 이 친구 때문에 2년을 버틸 수 있었는데, 이 친구를 두고 혼자 나온 것도 미안했다.

내가 퇴사일자를 받고, 이 친구가 아쉬워할 때마다 나는 마냥 기뻐만 하던 것도 너무 미안했다.

 

그런 동료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시작으로, 참아왔던 허전함과 아쉬운 감정들을 모두 터뜨렸다.

그냥 이렇게 한번 펑펑 울고 털어버려야지.

 

이렇게 털어버리고 나는 앞으로만 생각해야겠다.

매일 볼 수 없는 것일 뿐, 사람은 곁에 남을 것이라 믿으며.

이전 05화 그저 휴가를 떠나는 것 같은데 마지막이라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