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제대로 나를 만들어 보라고.

스르륵 차가워진 책장을 넘기며 호호 불어대는 작은 손이 정겨운 추억으로 떠오르는 날이다.

봄이 되었어도, 가을이 깊어졌으나 겨울이 되지 않았어도,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겨울 속에서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칼바람에 맞서 있는 듯, 추운 날씨가 계속 나를 괴롭혀도 넘어가는 책 장 안은 그 무엇보다도 따뜻했다.

그렇게 나는 책을 읽고 공부를 했다.

지금은 따뜻한 방과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의 독서가 마음먹기에 따라 언제든 수월하게 가능해졌으나, 오히려 책을 펼치는 날은 줄어들었다.


필요한  전문 서적이 비싼 까닭에 필요한 모든 내용을 포함하면서도 그리 함축적이지 않아 이해도 잘 되고 안성맞춤인 나만의 한 권을 고르기 위해서 온종일 서점을 헤매며 쭈그리고 맨바닥에 앉아 책을 읽고 고르는 수고스러움도 미리보기가 가능한 온라인 서점 덕분에  없어진 까닭일까?

그러한 이유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제는  이러한 편리한 구조 속에서도 오히려 책을 구매하는 일도 그 책에 대한 애착도 왠지 많이 사그라든 것 같다.


하루의 바쁜 일과 후에도 짬을 내고 잠을 쫓아가며 읽기 시작하다기 어느새 책 내용에 심취해 버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밝은 아침을 부르는 붉은 여명의 기운이 가득 찰 때까지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던 때가 언제인가 싶다.


하루가 멀다 하게 쏟아지는 다양한 서적들과 또 그와 함께 출판된 지 얼마 안 된 책들이 쉽게 사장되는 현실을 마주하고 있자니, 책에서 진징으로 풍기는 따뜻하고 소중한 기억의 소환이 간절할 뿐이다.

쉽게 지나가 버리고 묻혀버린 책들 중에는 시대를 잘 못 만났거나 독자를 마주할 기회가 별로 없는 경우도 많을 것이기에 더욱 안타깝다.


수많은 책더미에 둘러싸여 한 권도 놓아주거나 지나치지 않으려 눈길 한 번씩 더 주던 값진 책들이 추억 속에서 나를 소환하는지,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문득 이런 책들이 간절히 그리워진다.

지난날들이, 지난 시간들이 과거의 책 속에서 현재까지 마중 나오며, 꿈틀거리며 그리움을 더한다.


그날의 책들은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지금 내 손에 쥐고 있는 이 책이 또한 미래의 나를 만들어 갈 것이다.


오랜만에 나와 손을 잡은 이 책은

추억을 넘어온 책들과 더불어 이렇듯 나의 과거를 들추며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나를 채찍질한다.


제대로 책  좀 보라고.

제대로 생각 좀 하라고.

제대로 배워 보라고


제대로 나를 만들어 보라고.

그렇게!

 


이전 07화 나는 요즘 게맛살이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