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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담 Nov 20. 2023

관종의 시작

귀여운 투덜이 스머프

너는 누구니? 


분명히 아이가 골라서 샀던 옷이었다. 더 이상 이 옷은 입지 않겠노라 땅땅땅! 

영문도 모른 채 하루아침에 내쳐진 옷들은 아이의 어렸을 적 표정처럼 밝고 다채롭다. 

이미 정해진 수순이었다. 분홍색옷을 지금까지  입어준 것이 어디냐. 6학년 언니는 분홍색은 머리끈마저 거부한다. 심플한 무채색의 옷들이 기세등등하게 옷장을 점령했다.  


한동안은 여유 있는 일자핏의 청바지에 흰색, 회색, 검은색의 맨투맨 티를 돌아가며 입고 다녔다. 가을이 깊어질 무렵부터  후드티가 입고 싶다며 내 옷장을 뒤적이더니 만족한 듯  입고 다니기 시작했다. 딸아이는 44반, 엄마는 55라서 이젠 서로의 옷을 같이 입기도 한다. 고가의 옷들만 쏙쏙 골라내어 입는 아이에게 아빠는 좋은 옷을 고르는 감각이 있다며 허허 웃었다.  


여보, 관종이라서 그래. 


아이들이 옷의 질을 따져보겠나. 그저 그 옷의 브랜드와 가격을 가치라 여기는 거지. 이상적 자아와 심리적 자아의 갭으로 인한 자존감을 입고 있는 옷으로 채우고 싶은 거야. 사춘기는 자존감에 혼란이 오는 시기이니까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시기이다. 친구들의 말과 또래집단의 시선이 무엇보다 중요해서 자신에게 엄격해지니 불만이 생긴다. 외모에 지나치게 신경 쓰며 만족하지 못하거나 다이어트에 대한 강박이 있는 것도 비슷한 심리 상태인 것 같다. 


예쁘고 멋지고 대단해 보이고 싶은 아이의 숨은 열망은 자기 가치감과 유능감이다. 그걸 어떻게 가지는지 방법을 모를 뿐이다. 여행과 소비, 사는 집, 부모의 직업으로 자존감을 채우도록 두지 않는 것이 부모가 해줄 수 있는 도움이라고 생각한다. 아이의 귀한 자존감은 스스로 이뤄가는 크고 작은 성취로 채울 수 있도록, 비록 지금은 비어있어도 차곡차곡 쌓여갈 거라 믿는다. 


뚜렷하게 좋아하는 취미를 가지는 것은 널뛰는 감정관리에 꽤 도움이 된다. 우리 아이의 경우는 글쓰기가 좋은 친구가 되어주고 있다. 아이는 소설 쓰기를 즐겨하는 데 내용과 등장인물이 자신의 현재 내면과 맞닿아 있는 듯했다. 쓰면서 위로받으며 해소하고 자신을 이해하며 보듬어주는 기쁨이 되어준다. 하나의 작품을 완성할 때마다 가져다주는 성취감은 가장 큰 성장의 원동력이자 자존감 통장이 될 것이다.  


인간은 감상받고 싶어 하는 존재다.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의 말이다. 우리는 방식이 다를 뿐이지 누구든 인정받고 관심받고 싶은 마음은 있다고, 너를 보는 사람들이 네가 해낸 성취나 네가 베푼 배려 같은 것들로 너에게 감탄한다면 그것보다 짜릿한 기쁨이 있을까! 



후드티에 트레이닝 바지


아이에게 쇼핑을 제안했다. 꺄!  호들갑스럽게 좋아하는 아이의 표정을 보는 게 너무 행복해서 아이가 원하는 것은 다 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떠올리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쇼핑의 목적은 아이에게 적합한 옷이다. 학생에게 맞는 적당한 브랜드의 저렴한 옷, 한 철이 지나 맞지 않는 옷이 부지기수일 정도로  쑥쑥 자라는 아이들에게 부담이 없는 옷, 옷을 모시지 않고 후뚜루마뚜루 입고 툭툭 놓아두어도 그뿐인 옷, 세탁이 용이하고 혹, 학교나 학원에 두고와도 마음 졸이지 않아도 되는 옷. 

학생에게 도움이 되는 옷은 그런 옷이라고 생각한다. 


오늘 몽클레어 후드티로, 혹은 아이폰으로 채워진 자존감은 허상이라 거품처럼 사라지고 만다. 그다음엔 또 무엇으로 채울 거니? 거품을 낼 만한 다른 것들을 찾고 에너지를 소비하는 시간에 비해 얻을 수 있는 가치는 너무 적어. 효용가치가 떨어져. 


효용가치가 떨어짐을 아이에게 설명하기란 쉽지 않고 무엇보다 관심 있게 들어줄 리 만무했다. 하여 쇼핑을 제안했고 스파브랜드로 데려갔다. 백화점을 가면 선택의 폭이 넓은 만큼 욕망도 커지기에 대형마트에 입점해 있는 쇼핑몰로 향했다. 


다행스럽게도 아직은 사춘기의 초입인 아이는 엄마의 의도대로 잘 따라주었다. 물론 옷은 엄마가 추천한 옷이 아닌 스스로 원하는 것을 골라서 산다. 루즈한 후드티에 트레이닝 바지. 컬러는 아이보리, 블랙, 그레이. 

다른 컬러는 허용하지 않는다. 얼굴이 밝아 보이는 따뜻한 컬러의 옷들을 아무리 추천해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한번 입어만 보라고 하면, 놉!  안 살 건데 왜 입어보냐고 하는 아이의 말이 야무져서 얄밉다. 


그러고 보니 중학생들의 옷의 결이 모두 비슷하다. 트레이닝 바지에 후드티. 

나쁘지 않다. 편하고 따뜻하며  자유로워 보인다. 


쌍꺼풀 타령가


그럼 이제 해결이 되었나 생각하면 오산이지. 사춘기의 특징이 마를 틈 없이 나오는 투덜거림이었던가. 

더 어려운 문제에 봉착했다. 늘 기본 다음은 응용인 것을! 

쌍 꺼 풀. 왜 나는 쌍꺼풀이 없는 데다가 눈이 작은 것이냐. 불살은 왜 많은 것이냐. 엄마는 쌍꺼풀이 있고 눈이 큰데 왜 나만 아빠를 닮은 거냐. 이윽고 동생이  소환된다. 동생은 엄마 닮았어 억울해. "짜 증 나!" 


아이의 짜증을 들어보면 맥락이 없어서 얘기하다 보면  끝내  말문이 막히는 순간이 온다. 


"너는 눈이 절대 작지 않고 귀여워." 


"그러니까 크진 않다는 뜻이지. 팩폭!" 


... 


"어른은 볼살이 없어서 수술을 하기도 하거든. 볼살이 많은 게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알아." 


"그래? 안 사랑스럽고 볼살이 없으면 좋겠어."


"너무 귀여워서 다람쥐 같은데! "


"뭐??? 볼에 도토리 물고 있는 것 같다고?" 


... 


실질적인 답변을 할 때이다. 두리뭉실한 대화로  웃어넘기려는 수작은 통하지 않는다. 

중3 겨울방학 때 쌍꺼풀 수술을 시켜주겠다는 답변을 듣고 긍정의 눈빛을 보었다. 삼 년 뒤를 기약하며 만족한 듯 두말없이 해야 할 학습에 집중하는 아이를 보고 한숨 돌린다. 우리는 알지요. 내일은 다시 내일의 뜬금없는 불평과 맥락 없는 요구가 올 것이라는 것을!  하지만 들어주고 이야기 나누다 보면 금세 수그러들고 언제 그랬냐는 듯 온기를 뿜어내는 아이의 모습을 마주한다. 


어쩌면 부모의 대답으로 해결된 것이 아니라 부모가 자신을 대하는 태도로 경직된 마음이 이완된 게 아닌가 생각한다. 호르몬의 불균형으로 생긴 질풍노도의 시기가 도래했다. 넘실대는 파도를 멈출 순 없으니 감탄하며 바라봐야지. 파도에 휩쓸리지 않도록 내가 먼저 정신을 차리고 걸어야겠다. 불현듯 터져 나오는 감정에 잘 휩쓸리는 사람은 앞에 있는 이의 표정까지 살필 여유가 없음을 잊지 말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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