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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예또 Oct 16. 2023

33) 암탉이 울 수 조차 없는 나라


 가끔 한글이 어떤 형상이나 형태의 소리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대표적으로 "Oh, salty"라는 말보다 더 와닿는 "아우 짜"라는 표현이나 "It's hot"으로는 느낌을 낼 수 없는 "앗 뜨거"같은 표현들처럼 말이다. 뭄바이라는 이름이 한국인인 내게 와닿는 느낌이 꼭 그랬다. 사람이 너무 붐비고 정신이 없는 그곳은 "뭄바이"라는 이름이 찰떡처럼 쫀득하게 달라붙었다.


 내가 잠든 새 누가 내 침대 커튼을 확 걷어버리거나 내 물건을 훔쳐갈까 봐 걱정스러운 밤을 보냈던 40인실 호스텔에서 나온 나는 새로 예약한 호스텔을 가기 위해 다시 배낭을 메고 길을 나섰다. 분명 구글맵에서는 호스텔 근처에서 내려주는 버스 노선이 있다고 나왔는데 도착한 버스 정류장에서는 한참을 흙먼지를 들이마시며 기다려도 내가 타려는 버스가 오질 않는 거였다. 옆에 있는 현지인에게 물으니 이 버스는 탈 수 없을 거라면서 옆에 있는 툭툭 기사에게 나를 넘겼다. 툭툭 기사가 부른 가격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나는 가격을 깎아달라며 고집을 부렸고, 결국 나와 비슷한 방향으로 가는 현지인 한 명을 더 태워서 나는 반값에 가는 걸로 툭툭 기사와 합의를 볼 수 있었다.


 호스텔이 위치해 있는 곳 주변에서 내렸는데도 호스텔 간판이 보이지가 않아서 나는 호스텔에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직원은 내게 설명해 주기가 애매했는지 근처에 있는 현지인에게 전화를 바꿔주라고 했다. 그런데 문제는 전화를 받은 현지인도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지 내게 설명을 해주질 못한다는 거였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다시 전화를 전해주면 이번엔 그 둘이 서로 의견이 달라서 말싸움이 났다. 한 명은 이 쪽으로 가라는데 다른 한 명은 반대쪽을 가리키며 그쪽이라고 하니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땡볕 아래 땀을 뻘뻘 흘리며 무거운 가방을 짊어지고 계속 그 주변을 빙빙 돌던 나는 서서히 짜증이 나기 시작했고, 몇 차례의 전화 끝에 호스텔 직원은 그제야 메신저로 호스텔의 위치를 내게 보내주었다. 그가 보내준 위치는 내가 있던 곳에서 도보로 꽤 거리가 있는 곳이었다.


 한참을 헤맨 끝에 겨우 호스텔에 도착한 나는 짜증이 솟구쳐 화가 날대로 난 상태였다. 애초에 정확한 위치를 처음부터 알려줬으면, 아니 숙소 예약 플랫폼에 제대로 주소를 입력해 놓았으면 아무 일도 없었을 텐데 나는 이 더운 날 굳이 사서 고생을 했다는 게 너무 억울했다. 왜 애초에 주소를 제대로 올려놓지 않았냐고 따져 묻는 나에게 직원은 어떠한 사과의 말도 없이 그저 용수철 인형처럼 고개를 흔들기만 할 뿐이었다. 책임조차 지지 않는 태도에 나는 더 화가 나서 결국 호스텔 매니저를 부르라고 요청했고, 어딘가로 전화를 걸던 그는 나보고 잠시 기다리라고 했다.


 숙소에 짐도 풀지 못한 채로 카운터 앞에 서서 매니저가 오길 기다리는데 어떤 배 나온 아저씨가 나를 쓱 지나치더니 그대로 카운터 안으로 쏙 들어갔다. 나는 그의 옷차림이나 손님을 대하는 태도가 그냥 집 앞 슈퍼에 담배 사러 나온 아저씨 같아서 별 신경을 안 썼는데 알고 보니 그가 바로 이 호스텔의 매니저라는 거였다. 그는 뻔히 내가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하고 있는 걸 보면서도 직원과 똑같은 뻔뻔한 태도로 아무런 사과를 하지 않았다. 쌍으로 열받게 하는 그들의 태도에 더 열이 뻗친 나는 점점 목청을 높였다. 그랬더니 이번엔 그의 표정이 점점 굳는가 싶더니 곧 '이 계집애 봐라? 콱 쥐어박아버릴까.' 하는 듯한 눈빛이 되는 거였다.


 살기 어린 그의 표정에 나는 깨갱할 수밖에 없었다. 안 그래도 여성 인권이 낮은 인도에서 외국인 여성이 인도 남성에게 이렇게 윽박지르며 고집을 피우는 일이 내게 감당 불가능한 후폭풍을 가져올 수도 있겠다는 판단에서였다. 어쨌든 오늘 밤을 여기서 머물기로 결정한 이상 나도 그들에게 더 밉보여선 안 됐다. 결국 나는 내가 한 고생에 대한 어떤 사과도 받지 못한 채 입을 닫아야 했고, 이곳은 내가 여태껏 여행했던 나라들과 다르게 이성적이거나 보편적인 사고방식이 통하지 않는 나라일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받아들여야 했다.





 뭄바이에서 3일을 있었던 나는 바로 고아로 가는 기차에 올라탔다. 호스텔에서부터 도시 분위기까지 내 맘에 들지 않는 것들은 수두룩했지만 같이 지냈던 사람들이라도 좋았다면 그 도시에 조금은 미련이 남았을 텐데 하필이면 카우치 서핑에서 사귄 친구들까지 다 가까이하고 싶은 유형들이 아니었다. 이란에서 왔다는 부부는 본인들 숙소까지 가는 길에 나를 잠깐 태워주고서는 내게 택시비의 절반을 달라며 한화로 800 원돈을 기어코 받아갔고, 나를 공항까지 데리러 와 좋게 봤던 알귀야는 틈만 나면 노골적인 시선으로 내 몸을 훑어봤다. 그 외에도 딱히 뭄바이에 정 붙일만한 요소가 없었던 나는 인도 여행에 대해 아무런 지식도 계획도 없어서 그냥 인도 지도를 스크린에 띄워놓고 마음이 가는 대로 다음 목적지를 골랐다. 그중에 고아를 고른 이유는 그냥 영어로 쓰인 "Goa"라는 이름이 가장 마음에 들어서였다.


 아무런 배경 지식 없이 고른 도시였는데 기차표를 끊어놓고 정보를 찾다 보니 딱 내게 맞는 도시라는 느낌이 들었다. 인도 남서부 아라비아해 연안에 위치한 고아는 히피들의 성지로도 유명했는데, 인도의 다른 주에 비해 주류에 부과하는 세금이 월등히 낮아서 비교적 부담 없는 가격으로 술을 먹을 수 있는 곳이라고도 했다. 바닷가에 위치한 술이 싼 도시엔 향락을 추구하는 젊은이와 외국인이 자연스레 모여들었고, 그렇게 인도 안에서 다양한 문화를 편견 없이 받아들여 개방적이면서도 밤문화가 발달한 지역이 생겨난 것이었다.


 고아의 호스트 사힐은 친구와 함께 방 두 개짜리 집에서 살고 있었다. 내가 그의 집에 도착했을 때 이미 해가 다 져버린 깜깜한 밤이라 더 그랬는지 몰라도 어깨까지 기른 중단발 헤어스타일에 구레나룻까지 이어지는 덥수룩한 수염을 가진 그의 첫인상이 내겐 조금 무서웠던 게 사실이었다. 특유의 인도 억양이 짙은 영어를 구사하는 그의 말을 이해하기 위해선 다른 때보다 두 귀를 쫑긋해서 더 집중해야 했다. 우리는 처음 만난 그날 밤 그의 오토바이를 타고 근처의 친구 아버지가 한다는 가게로 가서 저녁을 먹고 돌아와 각자의 방에서 이른 휴식을 취했다. 출장 중이라던 그의 룸메이트가 내가 그의 방을 쓸 수 있도록 배려해 준 덕분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내게 그저 보통의 호스트에 불과했다. 앞으로 우리에게 벌어질 일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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