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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비 Feb 20. 2021

보통의 일상을 사랑하며

평범하고 평화로운 일상을 사랑합니다.

바람은 차갑고 하늘은 맑다.

하루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무엇을 했는지 모를 낮의 날이 숨 가쁘게 지나갔다.

나무와 하늘이 바람에 일렁이며 태양은 잠시도 고르지 않은 빛을 내주었다.

하루 종일 분주했지만 일을 했고 밥도 먹었으며 일상이 숙명이 되어 마치 어제처럼 오늘도 같게 느껴진다.

별반 다르지 않은 삶의 여정을 반짝이는 선명함으로 새기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지루한 일상에 가끔 특별하지 않는 날들을 꿈꿀 때가 있었다.

하지만 얼굴에 선명한 멍으로 아파하는 내담자의 모습에서 보통의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 확신했다.

평온하고 평화로움에 감사해야 한다.

언제 폭탄처럼 터질지 숨죽여 살아야 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곱씹어야 했으며, 어린 자식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 괜찮은 척 참아야 했다. 때론 억지로 웃느라 얼굴이 일그러지기도 다. 내가 참는 것이 모두를 위한 것임을 아픔과 고통을 통해 배웠다. 그냥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는 날들에 감사해야 했다. 피멍 든 자신보다 자식들 가슴속에 새겨진 피멍을 더 걱정했으며 무엇보다 일어나지 않 것 아무렇지 않 바다.

눈물이 났다.우리는 마주보고 그냥 울 수 밖에 없었다.


어릴 때 아버지는 하루가 멀다 하고 화를 내셨고 엄마에게 깊은 상처를 남기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어린 나는 아버지가 약속이 있어 늦는 날에 해방감을 느꼈고 안방에 벌러덩 누워 아무것도 안 해도 기분이 좋았다. 엄마도 평안하고 느긋하였으며 자유로웠다. 하지만 애매하게 술을 먹고 와서 술주정을 하는 날이면 잠을 포기해야 했고 밤새 아버지의 연설을 들어야 했다. 당신이 얼마나 힘든지. 자식들 키우는 게 정힘들다는 얘기들을 무한반복으로 다. 때론 졸기도 했는데 잠결인지 현실인지 그냥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고 교화되거나 변화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무릎 꿇은 다리만 아플 뿐이었고 빨리 끝나기만 바랬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은 힘든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며 그건 엄청 행운이고 행복이란 걸 몰랐다. 아니 잊었었다.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보통의 삶이 돼야 한다. 일상의 삶이 평안 해질 때 비로소 자유를 느끼고 변화를 위해 새로움을 시작할 수 있다. 지긋지긋한 현실만 벗어나면 다 끝날 것에 아무것도 기대하거나 희망을 품지 않았고 새로운 시작보다는 재미있는 것으로 현실만 대체하면 되었다.


얼마 전에 자살한 공무원의 인생을 딸에게 들었다. 어렸을 때 너무 불우하게 자랐고 현실의 어려움이 공부로 대체되었다. 공부를 잘한다면 고통 속에서 벗어 날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언가 성취한다면 또 다른 삶에 기회가 주어지고 한 순간 과거는 사라지고 힘들지 않은 사람이 될 것이다. 하지만 어려움은 또 다른 어려움을 불려 일으켜 정말 중요할 때 나를 구렁텅이에 빠지게 한다. 어려움이란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일을 잘하면 인간관계에서의 어려움으로 대체될 수 있다. 명문대를 졸업한 사람들이 사회생활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는데 업무 능력에서만 출중하다고 인정받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사회에서는 업무의 능력이 다소 떨어져도 위기에 적절하게 대처하거나,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탄력성과 팀이나 조직을 잘 이끌 가는 리더십들이 많이 요구된다.


어려움을 대하는 태도가 다른 것이다. 무언가 성취되었을 때 어려움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더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이 주어질 수 있다. 자칫하면 자신을 몰아세워 더 독해질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건 먼저 인지하는것. 내가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알며 내 짐을 스스로 내려놓고, 잘하기보다는 열심히 사는 나를 잘 다독여줘야 한다. 힘들면 쉬고, 남들보다 잘 못해도 괜찮다고 해줘야 하며, 나의 결핍을 인정하고 받아줘야 한다. 헛헛한 마음을 물질이나 인간관계로 채우려하지 말아야 한다.


조금은 고요하고 잠잠히 나를 들여다보자.


"무엇을 하지 않아도 그냥 이대로 내가 좋다. 성취를 하지 않아도, 좋은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해도, 다른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는 넓은 아량이 없어도, 화려하고 예쁜 옷이 없어도, 멋진 집이 없어도,  나는 나다. 내면에 뿌리  박혀 있는 사랑 받기 위해 사람들 앞에서 온갖 재롱을 피우는 내가 아니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나는 사랑받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이전에 나 자신을 내가 먼저 사랑해줘야 다. "


사랑받아야 한다는 당위성을 모두 놓아버리자.


평범하고 평화로운 오늘,

그저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아 너무 감사하고 감사한 날이었다.


드디어 낮의 환한 빛이 사명을 다하고 얼마 지나지 않으면 모든 것이 밤의 품으로 스며들 것이다.  

오늘 하루 평범하지만 잘 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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