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닝 파트너
최근 달리기에 푹 빠졌다. 퇴근하고 집에 와서 쓸데없는 잡생각에 빠지고 싶지 않아서 운동을 시작했는데, 달리기만큼 효과적인 운동은 없었다. 가장 개운했고 뿌듯했달까? 그리고 내가 이렇게까지 달릴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도 새로웠다.
이번 연휴 때도 아빠랑 집 앞 공원에서 달렸다. 가볍게 5km 정도 뛰었다. 지금은 ‘가볍게’라고 표현하지만, 혼자 뛰라고 하면 5km는 무리다. 엄청 긴 거리는 아니지만 헬스장에서 러닝머신 위를 달릴 때 조금만 숨이 차도 포기했던 내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빠랑 함께라면 가능하다. 비결이 무엇인가? 아빠가 내 손을 잡고 끌어줘서? 아빠가 나만큼 느리게 달려줘서? 혹은 힘을 북돋아 주는 군가를 함께 부르거나 옆에서 포기하지 않도록 할 수 있다고 격려해 줘서? 그럴듯하지만 모두 정답은 아니다.
아빠랑 함께 달리면 끝까지 완주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이유, 아빠의 뒷모습을 보고 따라가기 때문이다. 나보다 먼저 앞서간 아빠의 뒷모습은 그 어떤 응원 한 마디보다 강력했다. 아, 이래서 혼자 달리면 안 되는구나!
목표만 바라보면 너무 멀게 느껴져서 쉽게 포기하게 된다. 사람 마음이라는 게 그렇다. 구름이 머리 위에 가까이 떠 있는 것 같아서 손을 뻗어보지만 절대 잡히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나는 목표를 설정해 두고, 그 다음부터는 그 목표를 향해 먼저 나아간 사람들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오늘은 5km만 뛰겠다고 목표를 설정해 두지만, 그 끝이 보이지 않을 때 먼저 달려가기 시작한 아빠의 뒷모습은 목표를 향해 나를 더 가까이 이끌어 주었다.
하루는 비가 온 다음 날 운동장을 뛰었다. 땅이 질퍽해서 곳곳에 웅덩이를 잘 피해 뛰어야 하는 구간이 있었다. 그때는 앞을 볼 수 없다. 땅을 봐야 한다. 그래서 나는 아빠의 발자국을 따라 뛰었다. 때로는 발자국만 보고도 그 길을 따라가고 싶은 열망이 생기는 사람이 있다. 조금 느리고 서툴더라도 발자국을 따라가면 언젠가 나도 목적지에 도착할 것이라는 소망을 품게 되는 존재 말이다. 이렇게 나는 달리기를 통해 인생을 조금이나마 배울 수 있었다.
따라갈 뒷모습과 발자국이 있는 사람은 안전하다. 뒷모습을 보고 가면 목표를 향해 포기하지 않고 잘 갈 수 있고, 발자국을 따라가면 나를 더럽히는 웅덩이를 피해서 갈 수 있다. 누군가 먼저 간 그 길을 잘 따라가는 것도 인생을 사는 비결 중 하나인 것 같다.
그러면서 내 삶의 모토를 다시 한번 더 돌아보게 됐다. 늘 마지막이 아름다운 사람이 되는 것이 내 삶의 모토 중 하나였다. 지금까지 공동체 생활을 멈춘 적이 없었다. 가정, 학교, 교회, 회사 모두 지금의 나를 만들어 준 공동체였다. 그리고 그 공동체에서 떠나는 날, 그동안 함께 했던 분들이 내게 전했던 마지막 문장들은 내 마음에 큰 자산이 됐다. 물론 시작도 중요하지만, 시작만큼 마지막도 중요하게 여겼던 신념 덕분인 것 같다.
어떤 길을 가든, 내가 남길 발자국이 다른 이들에게도 그 길을 따라가게 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 길이 끝날 때, 내게 전해지는 마지막 문장이 또 다른 자산이 되기를. 그렇게, 나도 누군가에게 뒷모습이 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