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루군 May 12. 2024

우울증 환자에게 하지 말아야 할 말들

아무리 소중해도 조언은 참아주세요!!

*단순히 제 입장에서 쓴 글입니다. 모든 곳에 적용되는 정답도 아니고 전문가의 글도 아니라 그저 지나가는 중증 우울증 환자의 개인적인 입장에서 쓴 글이니 참고정도만 해주시길 바랍니다 ^^



중증 우울증일 당시

나의 상태


-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하루종일 울며 침대에만 누워있었음 (덕분에 웃기게도 피부는 꿀피부)

- 화장실에서 손을 씻는 것조차 힘들었음.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물도 나를 공격하는 느낌. 그래서 무지 약하게 틈.

- 그나마 빨래와 설거지가 나의 없고 없는 자존심을 연명해 줌. 그래, 이거라도 하는 인간이니 하루 더 살자.. 그런.

- 똥멍청이 같고 비루하고 비참하고 병 X 같은 나라는 걸 매일, 매시간, 매초, 매 순간 깨달음. 자기 객관화가 도를 넘음.

- 장을 보는 시간이나 억지로 끌려나가지 않는 이상 히키코모리 인생. 밖을 나가는 게 두려움.

- 힘이 없음. 숟가락 들 힘도 없어서 살이 막 빠짐. 식욕이 1-2주간 없음.

- 그러다가 어느 날은 폭식해서 하루 종일 먹음. 그리고 후회 및 자책. 또 1-2주간 살이 한없이 찌기도.


우울증이 깊었을 때 내가 느끼는 가장 큰 감정은 끝없는 죄책감과 끝없는 과거의 고리, 그리고 지독한 외로움이었다. 무기력은 기본 바탕이었고.


당시 나는 중증우울증 상태였고 (우울증 점수가 높아서 심각한 수준이었던) 담당의사는 약을 꼭 빼놓지 말고 복용을 하시라 강력하게 권고를 했다 (사회생활도 할 수 없었고) 그런데 약을 제시간에 챙겨 먹는 것도 일이었다.





들었을 때

퍽 힘들어지는 말들


"운동해"

"씻어"

"게을러"

"나가서 산책이라도 해"


몰라서 안 하는 게 아니다. 그래, 산책도 못하는 나는 진짜 똥멍청이구나 싶다. 실제로 나는 한 모임에서 운동하라는 말과 산책하라는 말을 들었는데 이후 한 달을 곱씹으며 울었다 (참고로 친구는 진심으로 도움을 주려 한 말이긴 하다. 하지만 분명 상처..^_ㅠ)



"힘내"


개중에 으뜸인 이 말이 제일 무섭다. 큰 과제로 다가온다. 회사에서 할 수 없는 일을 던져준 것 같은 부담감의 x 1000000000인 것 같다. 힘낼 줄 알았으면 진작 냈을 텐데, 이 말이 그렇게 무거운 무게의 말이었는지 예전에는 몰랐다. 우울증의 강도가 심각했던 나는 이 말이 진심 거북스럽다. 왜냐하면 나에겐 힘이 없으니까. 그리고 그런 힘이 없다는 나 자신이 또 원망스럽고 똥멍청이 같다. 그래서 이후로는 친구들과의 만나을 거의 나가지 않았다. 분위기 메이커가 축 쳐져 있어서 민폐인 것 같고 짐덩어리처럼 느껴져서.



"야 나는 더 힘들어"


진짜 이 말에는 할 말이 없다 ㅋㅋㅋ 미안하지만 1-2년간은 우리 보지 말자. 서로에게 도움이 안 되니 허허..(이 말을 우울증일 때 들었던 건 아닌데, 우울증 상태에서 들었으면 숨이 턱 막히는 느낌일 듯) 실제 이 말을 했던 친구와는 1년에 한 번, 많은 사람들과 모이는 장소에서만 보고 있다.



주변 사람들이 우울증일 때

도움이 되는 말들


"무슨 일이 있어도

널 사랑해"


이번엔 무조건적인 사랑이 필요했던 나에게 가장 필요한 말들이다. 나는 이 말을 극 T인 남편에게 며칠을 시켰다. 내가 해달라고 한 말인데 어이없게도 적지 않은 위로를 받아버렸다. 순수하게 이 말을 들어본 적은 여태 살면서 단 한 번도 없다 허허


"이건 네 잘못이 아니야"


위로와 공감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물론 툭 까놓고 보면 내 감정을 이렇게 끌고 온 내 잘못도 맞다. 하지만 그 감정을 생기게 만든 근본 문제의 원인은 나에게 있지 않다. 긴 시간의 고통을 충분히 공감해 줄 주변 지인이 꼭 필요하다 (어지간하면 전문가를 찾아가면 좋겠다/ 주변사람이 괜히 더 상처를 줄 수도 있고, 아니면 같이 지쳐버릴 수도 있으니)


"죽고 싶은 마음이 들면

꼭 알려줘. 난 네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면

마음이 정말 아플 것 같아"


이것도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이다. 역시나 한 번도 들어본 적 없지만, 이 말이 적지 않게 상대에겐 위로가 될 거다. 난 죽음이라는 단어가 떠오를 때 친언니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 지금 이런 감정이 든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언니 역시 전문가가 아니라 매끄러운 위로는 해주지 못했지만, 누군가가 나를 돌아봐주고 관심을 가져준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위로가 되었다.


그리고 우울증과 불안으로 힘들어하는 친구에게 죽고 싶거든 언제든 꼭 나에게 말을 해달라 당부했다. 친구는 무척이나 고마워했던 기억이 난다.




비슷한 어려움으로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시는 분들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자책이 들겠지만, '쉼'의 시간이라 생각하고 스스로를 모두까지는 잃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좋아질 수 있을까 싶었던 순간들이 무색하게 아무렇지 않은 편안한 일상으로 돌아올 때가 분명 있을 거다. 지금 내가 조금씩 편안함을 되찾고 있는 것처럼.


그렇다고 온전히 완전히 씻은 듯이 낫는 그런 병은 아닌 것 같다. 그저 그러지 않길 바라고 그러지 않게 나를 잘 운영해 가보려 노력할 뿐이다.



이전 13화 영원한 숙제, ‘엄마’라는 존재에 대한 나의 생각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