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도시' 시리즈 - 쿠알라룸푸르 이야기
지금도 여전하지만, 예전에 난 세상에 대해 무지하고 무식했다. 아니, 게을렀다는 게 더 정확하다. 세상은 공부할 것투성이였고 하면 할수록 어려웠다. 세계를 여행하며 그나마 견문이 넓어졌지만, 그 방대한 양과 어려움에 압도되어 난 종종 게을렀고 그럴수록 내 무지와 무식은 산이 되었다.
2019년 말 말레이시아의 수도 쿠알라룸푸르(Kuala Lumpur)에 도착했을 때도 그랬다. 나라에 대한 최소한의 기본 지식을 갖추는 게 예의였지만, 페트로나스(Petronas) 타워와 무슬림 국가라는 것 외에는 아는 것 없이 '가서 부딪히지 뭐'라는 게으른 배짱으로 입국했다. 아니나 다를까, 슬램덩크의 강백호가 농구공을 처음 잡았을 때처럼 무식을 사방으로 튕기며 놀라기에 바빴다.
어머, 영국처럼 자동차 운전석이 오른쪽에 있네? 아, 옛날에 영국의 식민지였다고? 그런데 중국인이 왜 이리 많아? 인도인도 많네? 동남아에서 이렇게 다양한 민족이 어울린 곳은 처음 봐. 그나저나 정말 화려하구나! 사방팔방 높은 빌딩과 쇼핑몰이네. 또 어디서든 영어가 통하니 나 같은 외국인도 쉽게 다닐 수 있구나. 하기야 다양한 민족이 같이 살려면 영어를 쓸 수밖에 없겠어. 쿠알라룸푸르, 너무 재밌다!
쿠알라룸푸르는 전체 인구 중 60%가 중국인이라고 한다. 영국 식민지 시대 당시 주석을 채굴하기 위해 이주해 온 화교가 클랑(Klang) 강을 따라 모여 산 게 시작이라고 했다. 왜 그리 중국인이 많을까 궁금했는데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쿠알라룸푸르의 발전 과정은 동남아시아 특유의 복합사회 특성을 나타낸다. 말레이 민족 국가의 수도임에도 불구하고 주민의 2/3가 중국계이며 말레이계는 15%, 인도계 10%이고 그밖에 유럽인도 있다. 이들은 저마다 역사적으로 거주 구역을 달리하고 종교, 언어, 직업, 생활 수준 등에서도 뚜렷이 구별되고 있다. 예컨대 상공업 종사자는 중국계가 압도적으로 많으나 하급 관리, 경찰, 군인 등은 말레이계, 교통 운수 종사자는 인도계가 많다."
백과사전의 이 설명처럼 실제로 말레이, 중국, 인도의 세 문화는 묘하게 섞여 있으면서도 눈에 띄게 구분되어 있었다. 차이나타운 한복판에 힌두 사원이 있었고 건너편엔 삼국지의 관우를 모시는 사원이 있었다. 그러다 코너를 돌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새까만 니캅(Niqab)을 입은 무슬림 여성이 있었다. 난 영어, 말레이어, 중국어, 힌디어의 모든 간판이 한꺼번에 번쩍이는 쿠알라룸푸르의 모든 것이 너무 신기하고 재밌어서 무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거리를 활보했다. 그리고 주변 국가와는 눈에 띄게 다른 분위기의 이 도시에서 이런 생각을 했다.
- 이 도시에선 딱히 '이민자', 혹은 ‘이방인’이라는 말이 적용되지 않을지도 몰라. 모두가 이민자고 모두가 이방인일 테니까.
그러자 마음이 편해졌다. 이런 꼬리표가 없다는 건 마음의 자유를 선사했다. 길거리의 인파 속에서 튀지 않고 자연스레 섞일 수 있는 물리적 자유도 선사했다. 최소 3개의 인종과 언어, 문화가 한곳에 어울려 산다는 사실은 이상하리만큼 깊은 안도감을 주었다. 하지만 이는 ‘언젠가는 떠날 여행자’가 가지는 얄팍한 관찰력과 순진한 안도감이라는 걸 그때는 몰랐다. 역시 난 무지하고 무식했다.
여러 역사적 사건들 끝에 말레이인, 중국인, 인도인 및 기타 소수 민족이 섞여 사는 상황은 말레이 토착민과 이민자들 사이에 경제적 불평등 및 여러 문제를 야기했고 이는 여러 분야에서 말레이인들에게 기회를 더 주는 ‘부미푸트라’란 제도를 만들게 했다는 사실을, 이 제도 때문에 민족 사이의 갈등이 끊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누구는 이를 ‘화합’과 ‘공존’으로 추앙하지만, 누구는 이걸 21세기에 버젓이 벌어지는 어처구니없는 ‘차별’로 규정한다는 사실을, 난 이 모든 걸 말레이시아를 떠나고 한참 후에야 알았다. 이래서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는 걸까? 맥락을 모른 채 돌아다닌 내 눈에는 그저 다양성이 공존하는 ‘화합’의 모습만 보였는데, 사정을 알고 나니 내가 느꼈던 안도감이 거짓으로 느껴졌다. 마치 어떤 영화 제목처럼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고, 혹은 그 반대라고 말이다.
그래서 중국계 말레이시아인 친구에게 질문을 퍼부었다. 제일 궁금했던 3가지는 이거였다.
1. 문화적 충돌은 없는가?
2. 서로의 언어를 다 아는가?
3. 자신을 말레이시아인이라고 생각하는가?
이에 대한 친구의 답변은 이랬다.
1. 충돌이 왜 없겠는가? 중국인은 돼지고기에 환장하는데 무슬림은 돼지고기를 안 먹는다. 하루에 5번 사방의 사원에서 울리는 기도 소리는 너무 시끄러워서 짜증이 난다. 제도적으로 말레이인이 이득을 볼 때가 많아 불만이 터지기도 한다. 그냥 서로 참고 사는 거다. ‘너희는 그렇게 살아라, 우리는 이렇게 살련다’ 하면서. ‘같이’ 사는 거지 결코 '섞여' 사는 건 아니다. 말레이+중국인, 말레이+인도인, 중국인+인도인 등의 다문화 커플은 드물다. 각자 고유의 문화를 지키며 살지만 하나로 통일된 ‘말레이시아’ 문화가 없는 걸 보면 알지 않겠나.
2. 말레이시아에서 자란 사람이라면 학교에서 기본적으로 말레이어와 영어를 배우기 때문에 두 언어로 대화가 가능하다. 그 외의 언어는 각자의 커뮤니티에서 배운다. 나도 말레이어를 학교에서 배웠고 중국어는 커뮤니티에서 배웠다.
3. 난 말레이시아인이다. 정확히 말하면 ‘중국계’ 말레이시아인이다.
친구가 내 질문 폭탄을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아 아쉽게도 넘쳐나는 질문을 멈춰야 했지만 그래도 이 대답으로 말레이시아인들이 어떻게 다름을 끌어안고 사는지 약간의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동시에 말레이계 말레이시아인과 인도계 말레이시아인의 의견도 같을지 궁금했다.
새로운 장소에 갈 때마다 ‘여기서 살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 내게 쿠알라룸푸르는 단연코 매력적인 도시 1순위로 다가왔다. 3개월이란 체류 기간 안에 돈 쓸 거 다 쓰고 나가주면 땡큐인 여행자일지라도, 이 도시가 구성하는 ‘다양성’이 다문화 가족인 우리를 따뜻하게 품어줄 것 같아서였다. 사실 관찰자일 수밖에 없는 여행자의 눈으로 단기간에 복합적인 면을 꿰뚫어 보기란 한계가 있다. 도시가 제공하는 최대치만 취하고 떠나면 모든 게 쉽고 편하겠지만 조금이라도 관계 맺기를 시작하면 낭만이라는 한 겹 뒤에 숨겨진 이면이 드러나고 종종 그 모습은 불편하다. 난 쿠알라룸푸르를 떠난 후에야 그 이면을 보았고 이내 불편해졌다. 이 도시의 절대 매력과 내가 느낀 안도감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조금 더 깊지 못한 내 ‘시선’이 아쉬울 뿐이다. 그래서 쿠알라룸푸르는 여행자로서의 내 시선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도시가 되었다. 과연 난 내가 보는 걸 어디까지 믿을 수 있을까? 이건 공부로 해결되는 걸까?
우리는 2020년 새해를 쿠알라룸푸르에서 맞았다. 페트로나스 타워 뒤로 펑펑 터지는 불꽃놀이는 타워 주변에 모인 모두에게 공평한 즐거움을 선사했다. 그리고 우와~ 넋을 놓고 볼 때만 해도 코로나란 바이러스가 공평하게 우리를 덮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