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도시' 시리즈 - 뉴욕 이야기
당신은 ‘빅 애플’이라고도 불립니다. 큰 사과. 이 별명의 유래를 찾아보니 몇 가지 설이 있었습니다. 그중 하나는 1800년대 초 ‘이블린’이라는 프랑스 여자가 당신에게 가서 사교계 사업으로 성공한 후 그 회사에서 일하는 아름다운 여성들을 ‘멀리할 수 없는 나의 사과들’이라 불렀고 이 말이 널리 퍼졌다는 설입니다. 이는 후에 거짓으로 밝혀졌지만, 그래도 당신 별명의 밑바탕에 한 여성을 상상했다는 건 흥미로운 일입니다. 시간이 흐른 후, 한때 많은 여성이 당신을 생각할 때 ‘캐리’라는 여성의 이름을 떠올렸으니까요.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Sex and The City)’의 주인공 캐리는 이블린과는 달리 칼럼니스트였지만, 그녀가 유명해진 이유는 글이 아닌 패션이었습니다. 이블린의 여인들도 아름다움이 무기였다고 하니, 당신은 확실히 아름다움, 유행, 혹은 패션을 대변하는 힘이 있나 봅니다.
시작부터 러브 레터 느낌이 폴폴 나네요. ‘나의 도시’ 챕터의 마지막 글을 당신에 대해 쓰기로 한 이유는 평소 어느 도시를 찬양하는 건 한쪽 면만 보고 호들갑 떠는 세련되지 못한 행동이라 반응했던 제 냉소를 비틀고 싶었고, 제 인생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당신을 추억하며 자아도취 ‘라떼’ 타임도 가지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대놓고 ‘맨하탄’ 같은 영화로 구애한 영화감독 우디 앨런처럼 워낙 많은 유명인이 당신에 대한 사랑을 천명했으니 당신 시야에 제 글은 보이지도 않을 겁니다. 그래도 짝사랑 러브 레터를 쓰고 싶었습니다. 도시라는 크디큰 유기체가 개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당신만큼 잘 보여주는 예시도 없으니, 당신은 그야말로 ‘나의 도시’란 주제에 최적격이니까요.
제가 당신에게 간 건 아름다움이나 유행을 좇아서는 아니었습니다. 선배 한 명이 ‘연극 무대 디자인을 공부하려면 뉴욕으로 가야 해!’라고 툭 던진 한마디에 혹해서 날아간 거지요. 통 크게 ‘여기서 안 되면 그냥 짐 싸서 한국 간다’란 생각으로 열심히 토플(TOEFL) 공부하고 포트폴리오를 만들며 대학원 입시 준비를 했습니다. 다시 하라면 절대로 못 할 젊은 시절 객기였습니다. 대학원 이름으로 온 편지를 받은 그 오후는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편지가 두꺼우면 합격이고 얇으면 불합격이라는 얘기를 익히 들었던바, 잠자리 날개만큼 파르르 얇던 편지를 들고서 감히 열어볼 엄두를 못 낸 체 아파트 로비 한구석에서 한참을 서 있던 제 모습이 떠오릅니다. 하지만 부들부들 떨며 열어 본 편지의 첫인사는, ‘Congratulations!’ 상세한 내용은 후에 보낼 거라며 합격 축하 메시지부터 전한다는 그 편지를 들고 전 너무 좋아 그 자리에서 비명을 지르며 덩실덩실 춤췄습니다. 놀라 달려온 경비원 청년이 절 진정시켜야 했죠. 그 청년을 붙잡고 기뻐서 엉엉 울었던 걸 생각하면 지금도 얼굴이 빨개집니다.
학교에서의 3년은 제 인생에서 가장 ‘빡센’ 시절로 꼽습니다. 감당할 수 없는 숙제량과 산더미처럼 쌓인 책들. 며칠을 붙잡아야 겨우 끝낼 수 있던 셰익스피어의 어려운 영어 희곡들. 하루가 멀다고 학교에서 밤새워 숙제하느라 학교가 더 집 같았던 날들이었습니다. 한국의 친구들은 ‘뉴욕의 낭만’을 상상하며 절 부러워했지만, 막상 당사자는 학교생활에 치여 당신이 뿜어내는 힘과 낭만을 즐길 여력이 없었습니다. 그건 졸업 후 취직해서도 마찬가지였지요. 그래도 당신은 항상 감동을 선사했습니다. 숙제 때문에 일주일에 한 번씩 갔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과 다른 박물관도, 빌리지 72 가의 (지금은 없어진) ‘그레이 파파야(Gray Papayas)’에서 핫도그를 먹는 것도, 언젠가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를 디자인하리라 꿈꾸며 광장에 앉아 극장을 보는 것도, 현대 미술관 모마(MOMA)에서 학생 신분으로는 조금 비싼 입장료를 내가며 모딜리아니의 그림 앞에서 외로운 유학 생활의 피곤함을 달랜 것도, 스트레스가 쌓일 때 14가에 있는 레코드 가게에서 좋아하는 음악을 몇 시간이고 서서 듣곤 했던 것도, 모두가 감동이었습니다. 전 그렇게 평생 당신과 함께 할 줄 알았습니다.
그러다 2001년 9월 11일, 테러가 터졌습니다. 회사가 월드 트레이드 센터와 멀지 않은 곳이었기에 전 모든 걸 봤습니다. 불타는 것도, 솜사탕 모양으로 뿌옇게 솟구치던 먼지바람도. 제 인생에 그런 카오스는 처음이었습니다. 당신은 공황에 빠졌습니다. 저를 비롯한 모든 뉴요커가 공황에 빠졌습니다. 당신이 그렇게까지 아팠던 적이 있었을까요? 사방에서 성조기가 휘날렸고 티브이에선 ‘아이 엠 아메리칸!’을 외치며 애국심을 강요하는 선전이 잇달았습니다. 부시 대통령은 ‘악의 축(axis of evil)’이란 이름으로 적대국을 지정했고 마침내 이라크를 공격했습니다. 그때 당신 모습은 참 낯설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섞였다’는 의미로 쓰는 ‘용광로(melting pot)’란 당신 별명이 무색하게 당신은 많은 사람을 구석으로 몰았습니다. 테러의 타격으로 브로드웨이 공연이 취소되고 경제는 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 결국 제가 다니던 회사는 직원들을 해고하기 시작했고, 당연히 외국인인 전 그 첫 번째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죠. ‘미국인도 해고하는 마당에 왜 저 외국인을 데리고 있냐’고요. 회사는 재계약을 거부했습니다. 이는 취업 비자를 받을 수 없다는 말이고, 그 말은 더 머물 수 없다는 뜻이지요. 그때 전 당신을 떠나기로 결심했습니다. 당신과의 시간은 여기까지구나, 당신이 날 놓아주는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한국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JFK 공항으로 가던 새벽 풍경을 기억합니다. 공항까지 온다는 친구들의 배웅을 사양하고 혼자 조용히 브루클린 아파트를 나섰습니다. 전 지하철 대신 일부러 택시를 불러 브루클린 다리를 지나가 달라고 기사님께 부탁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당신 모습을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맨하탄 강을 따라 달리는 택시 안에서 전 창밖 너머 보이는 당신에게 고맙다고 말했습니다. 7년 동안 보듬어주어 고맙다고, 힘들 때도 잦았지만, 그래서 야속했지만, 많이 배우고 많이 컸다고. 당신에게 할 수 있는 마지막 예의였습니다. 당신 때문에 전 정말 많이 변했습니다. 뻔한 문장이지만, 당신 덕에 한낱 우물 안 개구리였던 제가 우물에서 뛰쳐나올 수 있었습니다.
20년이 지났습니다. 이제 당신은 ‘한여름 밤의 꿈’과 같은 어렴풋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지금의 당신 모습이 어떨지 솔직히 상상이 안 됩니다. 전통을 자랑하던 명소가 비싼 렌트비 때문에 사라졌다는 뉴스를 접할 때마다 당신은 더 이상 제가 아는 당신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첫사랑은 다시 안 만나는 게 상책이라는데, 제 기억 속의 당신만 고집하는 건 과거 속에 갇힌 제 아집이겠죠?
여러 이유로 마음이 심란하던 차, OTT 서비스로 ‘틱 틱 붐!(Tick Tick Boom!)’이란 영화를 봤습니다. 전설의 브로드웨이 뮤지컬 ‘렌트’를 만든 ‘조나단 라슨(Jonathan Larson)’이란 작곡가의 이야기입니다. 영화의 배경이 제가 있던 그 시절 당신이었기에, 오랜만에 당신을 추억했습니다. 잊고 지낸 이름과 장소를 보니 다시 심장이 뛰었습니다. 스스로 뼛속까지 연극인이라고 부르던 시절의 열정을 추억했고,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당신과 함께했다는 사실이 진정 축복이란 걸 깨달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그 시절의 당신, 참 멋졌습니다.
노스탈지아는 이래서 아름답지요. ‘그때 그랬더라면’으로 남겨둘 수 있으니까요. 지금의 저와 그때의 저가 서로 마주 보며 씨익 웃을 수 있으니까요. 가끔 생각해요. 그때 제가 어떻게든 당신에게 남아서 버텼다면 과연 난 브로드웨이로 진출했을까, 천정 부수로 뛰는 렌트비와 생활비를 어떻게 감당했을까. 이 모든 '만약들'을 떠올리며 허무한 웃음을 짓습니다. 새삼 인생살이 새옹지마라는 걸 느끼네요. 당신과 했던 경험을 곱씹으며, 앞으로 제가 할 수 있는 무궁무진한 일들을 상상하며, 그 힘을 바탕으로 제 인생을 더 사랑하렵니다. 참 지독히 오글거리는 결론이네요. 그래도 괜찮아요. 원래 뮤지컬이란 게 오버스럽고 오글거리잖아요.
이렇게 러브 레터를 쓸 수 있어 기쁩니다. 덕분에 ‘안물안궁’ 원성을 들을지언정 원 없이 옛날얘기도 할 수 있었습니다. 당신은 항상 제 마음속에 제2의 고향으로 남아있을 거예요. 언젠가 다시 당신과 함께 할 수 있기를 빕니다. 그때까지 별 탈 없이 잘 버텨주세요. 절 기다려주세요.
그럼, 다시 만날 때까지.
당신이 아주 그리운, 승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