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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Ah Aug 10. 2020

신이 부여한 자유 의지란..

진화를 선택한 종들만이 살아남는다.


병걸려 굶주리고 잘곳없이 떠돌던 유기견이 마음 착한 인간주인을 만나 호화 전원주택에서 왼만한 인간들 보다도 더 걱정없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그야말로 '견생역전' 사례들은 많다. 한국은 생명경시 현상과 더불어 반려동물 문화가 그리 오래되지 않아 (자격미달 주인등) 부작용도 많지만 유럽과 서양에서는 반려 동물들이 인간과 동등한 가족 개념으로 자리 잡은지 오래이다. 


* 넷플릭스 에서 '효리네 민박' 보면 주거지옥인 서울에 사는 서민 인간들보다 효리네와 같이 전원에서 마음껏 뛰어 놀면서 사는 동물들이 더 행복해 보인다. 제주도 여행가고 싶은 마음을 참으면서 가끔씩 나눠 보고 있다.


넷플릭스 예능 '효리네 민박'


동물들이 인간들에게 가족으로 인정받고 인간 문명속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는것과 이리저리 쫒겨 다니며 굶주리고 학대받다 죽어 가는것.. 사주팔자 이런거 전혀 상관없이  그야말로 개들이나 길양이들 에게는 좋은 인간 주인을 만나느냐 아니냐에 따라 극과 극의 상반된 삶이 펼쳐진다. 



유기견들은 인간이 돌봐주지 않는 이상은 자신들끼리 아무리 별짓을 다해도 정해진 삶의 테두리를 벗어나기 힘들다. 음식을 도둑질 하면서 쫒겨 다녀야 하고 인간눈에 안보이는 구석진 곳을 찾아 지친몸을 쉬어야 한다. 싸이코패스에게 이유없이 린치 당하고 잡혀서 도축되기도 한다. 안락사가 그나마 좀 나은 최후다.


주인에게 버림받고 유기견에서 구조된 전과 후


인간들과 함께 생활 하동물들은 점차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고 알아 차리면서  가족의 구성원으로서 몫을 한다. 왼만한 이기적인 인간들보다 나은 의리있는 행동을 보이는 경우도 많다. (개만도 못한 사람들이 정말 많다.) 개들의 경우 사고나 위기 상황에서 주인을 구하는 경우도 많이 고 구조견이나 맹인견 처럼 인간에게 봉사하는 직업을 가지기도 한다. 


유기견이나 길양이 들이 착한 인간 주인을 만나 인간문명 속으로 들어가 가족으로 인정받고 그 안에서 자유를 누리려면 필수적으로 익혀야 되는 규칙이 몇가지 있다.


변을 가려야 하고 허락되지 않은 음식을 먹지 말아야 하며 사람들과 보살펴 주는 주인에게 적대감을 보여선 안된다. 인간들과 집안에서 같이 살려면 목욕도 해줘야 한다. 


인간과 함께 살기 위해 이런 기본적인 것을 지키지 못하면 행복한 '견생 역전'은 불가하다. 반려 동물들은 야만성을 버리고 젠틀한 인간 문명에 적응해야 자신들도 그 안락함을 누리게 된다는것을 깨닫는다. 



신성을 거부하는 인간 에고들의 삶은 유기견의 삶과 비슷하다. 치열한 생존경쟁 속에서 병마와 노화를 맞이해야 하고 운명이라 불리는 불행한 사고들에 있어서 속수무책이다.


모든 야생 동물들이 먹이를 구하기 위한 생존경쟁을 벌이듯 인간 사회는 '돈' 이라는 먹이를 차지하기 위해 끝없는 생존경쟁을 벌여야 한다. '돈'만이 행복을 보장해 준다고 믿기 때문에 대부분 에고들의 주인은 신성이 아닌 '돈' 이고 '돈의 노예' 란 표현이 에고들에겐 진실이다. 주인인 돈을 위해 진짜 주인인 신성에게 때를 쓰거나 부려먹을 발칙한 생각들을 한다.


반려동물들이 인간 주인의 보호아래서 안락한 삶을 누리듯 인간 에고들이 르마의 굴레가 아닌 신성안에서 행복한 삶을 누리려면 마찬가지로 신성이 요구하는 삶의 규칙들을 익혀야만 한다.


신성이 삶에서 무엇을 요구하는지 훈련을 통해 그 시스템을 파악하고 그 안에서 자신도 익숙해지고 편해져야 한다. 의식이 야만성을 벗고 신과 비슷한 수준으로 진화 해야만 그런것들이 가능해진다. 인간이 에고의 동물적 성질을 완전히 벗고 신이 되는것이 진화의 최종 종착지 이다. 점점 이기적인 작은 에고로 있는것이 갑갑하고 불편하고  신의 사랑안에 있는 규칙이 규제가 아니라 편해질수록 신에게 보다 가까이 다가갈수 있다.


지금 선천 세상은 인간 에고들에게는 진화를 받아들이게 만들려는 예비 신들의 훈련장 이라고 할수 있다. 입양된 유기견들 처럼 배변을 가릴줄 알고 탐욕을 절제할줄 아는 성숙한 에고들을 가려내 보다 진화된 문명으로 이끌려는 2천년간의 카르마 교육이 마무리로 접어드는  '수확' 시점이다. 그래서 '말세' 라고 한다. 


https://brunch.co.kr/@yemaya/632



먹이를 훔쳐가려고 도둑처럼 인간들의 부엌을 얼쩡거리는 길양이나 유기견들을 인간들이 쫒아 내듯이 에고가 지닌 욕심과 이기심, 동물적 성질을 지닌채 신들의 문명에게 다가설때 인간 에고 역시 마찬가지로 접근을 거부 당하게 된다. 유기견들 처럼 거친 카르마의 세계로 돌아갈수 밖에 없다.


인간들을 보면 적대감을 내보이며 인간의 손길을 거부하고 유기견들과 길양이들 사회에서 왕노릇 하겠다는 녀석들이 항상 있다. 이리저리 발길질 당하고  쫒겨다니는 자신들의 신세를 당연시 받아들이고 인간의 손길을 거부한채 먹이를 훔쳐 먹으며 거리를 숨어 다니는 버림받은 삶을 '자유' 라고 착각하무지와 어리석음은 어쩔수 없다. 동물로 태어난 자체가 본능 매트릭스의 감옥안에 갇혀 있음을 자각조차 할수 없어서다.  


동물들 중에서도 인간과 함께 어울려 살수 없는 종들이 있듯 인간 에고도 마찬가지다. 무지함에 고집을 더하면 그 마음을 바꿀 방법은 없다. 마음을 통해 스스로의 운명을 선택할수 있는 자유, 보다 나은 생물체로 진화를 선택할수 있는 권리, 그것이 창조주 신이 모든 생물체 들에게 부여한 '자유의지'  란 것이다. 


변화되는 환경속에서는 항상 변화에 적응하고 진화를 선택한 종들만이 살아 남는다. 살아 남아야 이기는 게임이 바로 진화의 법칙이다.


신성을 깨워 받아들이고 신인으로서 진화를 선택하는가  이기적인 동물적 에고의 방식을 고집 하는가..  모든 생명의 본능은 생존에 몰리면 극복하고 나아가느냐 도태 되느냐로 갈리워진다. 신으로의 진화냐 동물로의 퇴화냐 어느쪽이 편한지 각자의 선택이고 결과에 대한 책임 역시 각자의 몫이다. 남들이 그러하니 자신도 따라한다 라는 무책임한 집단 좀비의식에 휘둘리지 말라. 세상은 넓고 미친것들은 많다.


https://brunch.co.kr/@yemaya/98

https://brunch.co.kr/@yemaya/290


5년전, 내가 죽음과 마주섰을때 일년넘게 길양이들 먹이 대주면서 느꼈던 기록들이 지금 인간들 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것을 느낀다. 용기있는 에고들만이 신성의 깨어남과 사랑을 알아 차린다. 그러나 참거짓을 가리는 혜안이 없으면 42B 사냥꾼들의 먹잇감이 되기도 한다.


Dolore come amore:

https://youtu.be/pxbECwr00I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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