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안에 꽁꽁 숨어있다가 불쑥불쑥 툭 튀어나와 저를 힘겹게 하던 내면아이와 친해지려 노력한 지 어언 1년이 되었습니다.
그간 저는 "이 정도면 심리적으로 성숙한 찐 어른 아니냐."라고 생각하며 내심 자신 있어하던 오만에서 벗어나, 스스로 관계를 끊어내며 외롭게 만들던 내면아이를 발견하고, 이해하고, 달래주고, 안아주며 수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힘이 된 건 사랑하는 동생의 위로와 함께 시간이 지날수록 저를 가득 채워주시는 하느님의 사랑, 신부님과 수녀님들의 힘이 되는 말씀, 형제자매님들의 따뜻함 등 신앙생활였습니다.
6개월의 예비신자 기간 중, 초반의 제 간절함은 "나를 온전히 사랑하기"였어요.
그러나 3개월이 되어가도록 제 마음에 난 생채기는 아물지 않고 여전히 아팠고, 그것이 여전히 날 제대로 사랑하지 못하고 있다는 표징 같았습니다.
그러다 예수님의 이웃사랑에 대한 나눔 교리 시간에 문득, '아, 내가 남을 사랑하지 못해서 나를 사랑하지 못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원수도 사랑하라는 그 찐사랑의 마음이 없어서 그런 걸까? 하고요.
그때부터 타인을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기 위해 무던히도 애썼습니다. "사랑하자"를 되새김질하며, 욕하고 싶은 사람도 이해하려 노력했죠. 그러나, 정말 쉽지 않았어요. 미운 사람은 여전히 미웠고, 싫은 점도 여전히 싫었습니다. 그렇게 또 3개월을 보낼 무렵, 사랑이 어려웠던 진짜 이유를 알게 됐어요.
제 사랑이 성립하지 못하는 이유.
그것은 바로, "믿음의 부재"였어요.
'사랑은 현재, 희망은 미래, 믿음은 과거'라고 해요. 처음 본, 나와 일면식도 없는 사람을 사랑할 수 없는 건 그 사람과의 시간을 보내지 않았기 때문이겠죠. 과거가 있어야 믿음이 생겨나고, 이 믿음은 사랑의 기반이 됩니다.
믿음이 부재하니, 당연히 사랑이 어렵고, 그것이 또다시 저를 고립되게 만드는 악순환이 계속되었던 거죠.
비로소 전 제 마음속에서 마치 스케치북에 마구 난장판으로 덧칠한 검정뭉치 같은 것들이 조금씩 없어지는 것 같았어요. 그리고 늘 기도했어요. 이 믿음을 통해 사랑이 가득 찬 사람이 되어, 사랑의 빛으로 타인을 밝혀주는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요. 제 마음 한편에 늘 바라왔던 그런 사람이 되어.
늘 "대체 왜 저러는 거지?"라는 물음이 매일 생겨나는, 불신의 늪에 빠지기 쉬운 회사에서도,
"저 사람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이 하나의 문장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미움이 사랑으로 바뀌었죠.
정말 신기했고, 한결 편안해졌어요.
그. 러. 나. 자동적으로 떠오르는 생각들은 어찌할 수 없더군요. 퓨어한 사랑의 마음으로 24시간을 보내지는 못합니다.. 여전히 불신의 불씨가 치직 올라올 때가 많습니다. 달라진 점은, 이제 그 불씨가 타오르기도 전에 사그라든다는 거죠.
제 감정을 빨리 알아차리고, 객관적으로 상황을 바라보고, 내 생각을 관철시키는 것보다는 '상대를 이해하기 위해' 내 입장을 전하는 게 어느 정도 습관이 들어가면서 불씨가 쉬 사그라드는 것 같아요.
성경 구절에서는사랑이 으뜸이라 했지만, 저는 믿음이 제일이라고 생각해요. 믿는다면, 사랑은 절로 생겨나기 마련였거든요.
마지막으로 믿음, 소망, 사랑에 대한 것 중 최근에 깊은 울림을 준 깨달음이 있어요.
진정한 사랑은, 상대가 바라는 사랑을 해주는 것.
과습에 약한 식물에게 날마다 물을 주거나, 햇빛에 약한 식물을 해가 잘 드는 창가에 두면 아무리 사랑으로 키워도 금방 죽듯이,
내가 주고 싶은 사랑이 아닌 상대가 받고 싶은 사랑을 주어야 한다는 것.
생각해 보니 어떤 사랑을 받고 싶은지 저는 물은 적이 없더라고요. 대가 없이 챙겨주고 보살펴주고 따로 또 같이 행복하면서 의지되는 관계를 지향했고 그게 사랑인 줄 알았건만, 사람마다 내면아이가 가진 핵심감정이 다르니 그게 사랑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어요.
그래서 동생에게도 처음으로 물었답니다.
"ㅇㅇ 이가 생각하는 사랑은 뭐야~?"
여러분도 지금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에게 어떤 사랑을 원하는지, 물어보시는 건 어떨까요?
÷ "눈은 몸의 등불이다. 그러므로 네 눈이 맑으면 온몸도 환하고, 네 눈이 성하지 못하면 온몸도 어두울 것이다. 그러니 네 안에 있는 빛이 어둠이면 그 어둠이 얼마나 짙겠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