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인사
2017년 여름밤, 그날은 많은 비가 내렸다.
거리를 걸었다. 매일같이 바라보던 혜화동의 풍경이었지만, 모든 것이 낯설게만 느껴졌다.
축축해진 발끝으로 내려오는 까만 밤.
눈이 부시도록 반짝이는 별빛.
저 먼 하늘을 바라보며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아빠는 지금 당신의 별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문득 걸려온 엄마의 전화 한 통에 나는 직감할 수 있었다. 우리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나는 달려갔다. 동시에 아빠를 만나 당신의 딸로서 살아온 모든 순간들이 마치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이 세상에 태어나 나의 작은 몸을 아빠에게 안긴 첫 만남부터, 함께 기타를 치며 노래한 다락방을 건너, 평생토록 나를 세상에서 가장 예뻐한 사람, 그 한 사람을 이제는 떠나보내야만 하는 순간이 온 것이다.
작별의 방에 도착했다.
아빠는 그 순간조차 여느 때처럼 우리만을 생각했다. 혹 마지막 순간, 누군가 당신을 만나지 못한 채 헤어지게 된다면 가슴에 사무칠 것을 알기에 애써 의식을 붙잡으며 모두를 기다려주었다.
엄마와 오빠와 나, 그리고 평소 당신의 둘째, 셋째 딸이라고 여긴 친척 동생들까지 모두 도착하였고 우리는 모두 아빠와의 마지막을 함께 할 수 있었다.
아빠는 감은 눈을 뜨는 것조차 힘겨워했고, 우리는 그 어떤 대화조차 나눌 수 없었다. 하지만 나의 손을 꼬옥 붙잡아주었다.
떠나는 길 잘 가시어 부디 다음 생애에도 나의 아빠가 되어주시겠냐는 나의 바보 같은 질문에 아빠는 평온한 미소를 지어주었다.
나는 바랐다.
이제 머나먼 여행을 떠나는 아빠가 그곳에서는 더 이상 아프지 않기를.
부디 아름다운 기억만을 간직하며 떠날 수 있기를.
우리의 만남이 기적이었음을 잊지 말고, 가끔씩은 그리운 나의 꿈에 찾아와 주기를.
그날은 많은 분들이 귀한 발걸음을 해주셨다. 그들의 따뜻한 위로와 진심 어린 눈빛, 숨죽여 함께 흘리던 눈물과 어깨를 두드려 준 손길. 그 모든 장면들은 내 마음속에 깊이깊이 새겨져 있다.
내가 베푼 것에 비하면 과분하고 감사한 마음을 받았다. 나는 그들 덕분에 '그럼에도'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가끔 웃기도 했다. 하지만 그러다 예고도 없이 왈칵 울음이 쏟아질 때면, 그제야 실감이 났다. 더 이상 아빠가 내 곁에 없다는 것이.
그 여름밤. 비가 세차게 내리던 우리의 까만 밤을 기억한다.
그때까지 나는 남은 사람이 되는 방법을 몰랐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나에게는 또 다른 삶의 과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상실, 그 어두운 터널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