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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나비 Sep 28. 2022

05. 집

상실의 첫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나의 바람과는 달리 집 안에는 쓸쓸한 적막만이 가득할 뿐, 아빠는 계시지 않았다.












사실 나는 애써 그날을 떠올리려 해 보아도 어떤 또렷한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저 흐릿한 잔상으로나마 그 하루가 남아있을 뿐이다.

다만 여전히 잊히지 않는 장면이 하나 있다면, 집 앞 현관문을 열었던 바로 그 찰나의 순간이다. 그때 나는 마치 아빠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은 기분에 휩싸였다.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텅 비어버린 공기는 내가 듣고 싶은 그 어떤 말도 내뱉지 않았다.


삼일장을 치르며 거의 잠을 자지 못한 나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침대에 누워 잠을 잤다. 하지만 잠에서 깨어났을 땐, 온몸을 감싸 안는 슬픔과 밀려오는 공포에 왈칵 눈물을 쏟았다.

죄책감을 느꼈다. 이제 아빠가 없다는 현실에 대한 부정과 아무렇지도 않게 잠을 청한 스스로에 대한 원망이 볼품없이 뒤섞였다.

그러나 이는 앞으로 식사를 할 때에도, 휴대전화를 볼 때에도 일상으로 복귀하는 모든 과정에서 통과해야만 하는 감정의 절차라는 것을 그땐 미처 알지 못했다.


남은 사람들의 감정은 모두가 닮아 있었다. 엄마와 오빠와 나, 우리는 서로 눈이 마주칠 때면 한마디 말없이도 서로의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서로가 기댈 곳이었고, 위로 그 자체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각자 감당해야만 하는 추억이 존재했다. 우리는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모두가 연결되어 있었지만, 그 안에서도 아빠와 단 둘만의 연결고리가 존재했던 것이다.

엄마에게는 아빠와 연애하고 결혼하며 아이를 낳고 키운 40여 년간의 세월이, 오빠에게는 누구보다 친구처럼, 누구보다 어른처럼 곁을 지킨 남자들만의 추억이, 나에게는 아빠와 함께 다락방에서 음악을 듣던 잔상들이 존재했고, 그건 오롯이 각자가 감당해야만 하는 상실이었다.



오랫동안 마주 보고 앉았던 식탁이 허전했다. 우리는 27년의 세월 동안 함께 밥을 먹었다. 아빠가 먼저 숟가락을 들면 나도 따라 들었던 오래된 습관을 할 수 없게 된 것이 낯설었다.

아빠는 내가 아주 어릴 적부터 하루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나를 거의 매일같이 마중 나왔다. 익숙한 그 길모퉁이를 돌면 쉽게 찾을 수 있던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것이 허탈했다.

휴대전화 즐겨찾기의 맨 첫 줄을 누르는 습관을 버려야만 했고, 함께 마시던 커피 잔 중 하나는 쓰임을 잃었고, 하고 싶은 말이 생겨도 도저히 전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상실은 잔인하리만치 나의 일상을 앗아갔다.


하지만 나를 가장 무너지게 한 건, 이제는 더 이상 추억을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없다는 데 있었다. 함께 미래를 그릴 수 없다는 것.

그럴 때면 삶의 모든 것들이 무의미하는 감정이 밀려왔다. 아빠가 없는 나의 삶이 과연 행복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차라리 슬프고, 두렵고, 분노하고, 아파할 때엔 쏟아낼 감정이 있었는데, 무기력은 삶의 의지와 방향을 잃게 하였다.


가족이란 함께 한 시간만큼 서로를 닮아가고 채워준다. 그 과정에서 어쩌면 우리는 하나의 존재로 거듭나게 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나는 마치 ‘나'라는 존재를 하나에서 둘로 잘라낸 듯한 아픔을 느꼈다. 당연했다. 손가락에 조금만 피가 나도 아파서 눈물이 찔끔 나는데, 사랑하는 사람과 분리되는 고통은 마음이 찢어지는 경험과도 같았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이래 단 한순간도 아빠가 계시지 않은 날은 없었다. 그런 아빠의 존재를 당연하게 여겼던 것, 또 삶의 많은 부분을 아빠에게 의존하며 살았기에 빈자리를 더 크게 느낄 수밖에 없는 것. 그 모든 것들이 후회가 됐다.


그토록 오랜 세월을 함께 한 집이었다. 정든 집안 곳곳에는 아빠의 모습이 서려 있었다. 놓인 물건 하나하나, 순간마다 떠오르는 추억은 아름답고도 씁쓸한 아픔을 남겼다.








이처럼 한순간이라는 걸 그땐 왜 몰랐을까.

더 이상 집 안 어디를 둘러보아도 아빠의 모습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아픔은 상실의 터널, 그 문턱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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